대화를 차단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도. 어른도.
오늘 내가 그랬다.
급식소에서 나에게 상황을 설명하려는 학생에게
다른 반 자리에 가서 대화를 하고 있는 자체에 대해 지적을 했다.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 했는데.
내 식판 정리하고 뒤따라가니 아이는 하교했다.
보건실에 아픈 학생 챙기러 들러야 하는 상황이라 더 이상 대화하지 못했다.
내가 정한 원칙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학생 얘기를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경험이 전부는 아닌데
내 생각을 얘기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터놓고 대화할 시간도, 대화할 마음도 없을 때
소통하려는 마음보다 입 다무는 게 편하다.
오늘은 특히 말조심해 해야 될 것 같다.
뉴스 보면 좋은 소식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과 생각 다 알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 상황 모르니까 입 다물어야겠다.
교실에서 쓴 글을 발표하게 했다.
몇 명의 친구 글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너만 쓸 수 있는 글이다!"
칭찬했다.
특히, "완벽"에 대한 글에서
상대방에게 먼저 사과하는 아이가 완벽한 아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놀라웠다.
그랬더니
다른 학생들이 자기 글은 어땠냐고 물어보더라.
칭찬도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애들이 잘 써서 자기 글이 초라해 보인다는 말도 한다.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몇 편의 글을 칭찬한 바람에
초라하다는 표현까지 하는 것 같다.
작가이자 라이팅 코치로 살면서
교실에서 생산되는 글에 나도 모르게 평가하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글 쓰는 삶을 전달해 주려고 시작한 글쓰기 교육인데
작가랍시고 한두 마디 한 조언 때문에
아이들이 눈치를 볼 것 같다.
잘한다. 잘한다.
골고루 칭찬하는 방법밖에 없다.
앞서 말한, 급식소에서 마주친 아이랑은
내일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많이 직설적이다.
급식소에서 바라보고 있는 몇 명의 학생은 나를 보고 있었을까
나보다 먼저 나간 학생을 보고 있었을까
나의 뒤끝 없는 지시가 통하는 학생도 있고
그렇지 않고 마음이 긁힌 학생도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