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만 생활하는 편입니다. 여행을 간다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일이 드뭅니다. 기껏해야 양가 부모님 댁에 가는 게 전부입니다. 재미없는? 부모 만난 세 자매도 여행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사전답사를 합니다. 코로나 이전,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방학을 맞이할 때마다 여행을 갔었습니다. 현장체험학습과 직원 여행을 다녀온 뒤, 가족과 같은 곳을 한 번 더 가보는 게 집 밖을 나가 이동하는 기회였지요. 김해에서 가까운 경주와 거제를 몇 번 가본 것 같습니다. 터울 나는 아이 셋 데리고 다니다 보면 내 집이 낫다고 느낍니다. 3번 나들이할 거 2번이나 1번으로 줄어드는 거지요.
작가로 생활하면서 이동이 많아졌습니다. 처음 서울 간 날을 기억합니다. 공저 작가로 참여하면서 출간 계약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비행기로 김포공항에 처음 가보았고요, 서울 지하철도 처음 이용했습니다. 하루를 꼬박 보냈지만 잠시 만났던 작가님들 덕분에 또 책 쓰고 공저 계약하러 서울 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잠실 교보문고 사인회도 집 밖을 나가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작가님 사인회를 축하하기 위해 서울에 가게 되었지요.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김해에 살고 있지만 서울은 가까운 곳이 되었습니다.
행사에 많이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열차 타고 이동하는 경험이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었습니다. 남들은 자주 다니는 길일지는 모르겠지만 서울행 열차에 오른다는 건 저에게 여행입니다.
라이팅 코치로 활동하면서 주말이나 공휴일을 이용하여 공저 계약식을 위해 대전에 갔었고, 오프라인 무료특강을 위해 서울과 창원에 갔습니다. 집에만 생활했던 제가 행사를 주도하기 위해 이동을 하는 거지요.
어제 전화 준 코치는 저에게 백길동 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대전에서 만난 작가는 활동이 대단하다는 말도 해주더군요. 작가가 되기 전까지는 그려지지 않았던 모습입니다.
왜 저는 좋은 날들 많았을 텐데 집 근처에서만 생활하고 있었을까 돌아보니 집 밖을 나가는 게 두려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유치원 때로 기억합니다. 온양에서 길을 잃었거든요. 기억은 다 나지 않습니다만 경찰서에서 울었던 모습, 외삼촌이 데리러 온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이후 동네에서만, 학교 등 가야 할 곳만 다녔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길치입니다. 방향 감각도 없습니다. 어제도 대전역 성심당 못 찾아서 대전역 대합실을 가로질러 왔다 갔다 했습니다. 대전역 다섯 번 넘게 왔었는데도 말입니다. 서울역에 가면 들르는 카페가 있습니다. 그곳도 다섯 번은 간 것 같은데 어디에 붙었더라 찾지 못합니다. 서울역 안에서 내비게이션 도보로 설정합니다. 내 위치를 찍은 점과 카페가 가까워지는지를 보면서 이동합니다.
대구교대 5학기째 공부하러 갔습니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 찾는 것도 2년이 지나서인지 찾을 줄 압니다. 그런데 어느 방향으로 타야 하는지 몸이 기억하질 않습니다. 지하철 노선도와 안내 표지판을 다시 봐야 하지요.
길도 못 찾고, 방향감각 없어도 스마트폰의 도움으로 잘 댕깁니다. 길 잃어버려서 경찰서 갈 일도 없고요.
오늘과 내일은 김해, 모레부터 일주일간 대구에 머뭅니다. 일정에 변수가 있을 땐 열차표도 상황에 맞게 잘 예매합니다. 대구-창원-김해-대구 이런 일정이 반복될 것 같습니다.
여름방학! 연가를 쓰고 대전에서 강의하고 서울 가서 하룻밤 머물 생각입니다. 서울 오전 강의가 이어지거든요. 그리고 며칠간 김해에서 생활하다가 방학 마지막 날에는 광주 찍습니다. 평생 글 친구 보러 다니면서도 길치 티 나지 않습니다. 이젠 집을 자주 나가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과거의 기억으로 주저하는 사람 있지요.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씩이라도 개선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보지 않은 사람인 거지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어제보단 오늘 한 발자국 나선 것에 대해 자뻑합니다. 스마트폰은 잘 사용하니까 그걸로 잘했다고 해주면 되지요. 점점 더 이동할 일 많을 겁니다. 전국을 누비며 강의하는 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