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격 01] 야만의 시대, 타자기 소리와 습관성 야근
30년도 더 넘은 예전,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게 낯선 첫 시작이었다.
지금과는 모든 게 달랐다.
당시에는 사무실에 컴퓨터가 놓여 있는 책상은 서넛에 불과했고, 그것도 쓰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산망 연결은 꿈도 꿀 수 없었으며, 컴퓨터는 그냥 다른 버전의 워드프로세서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하긴, 아직 인터넷도 나오지 않았던 시점이니 더 말이 필요 없겠다.
문서를 만드는 일은 모두 손으로 써준 글을 ’ 타이피스트’라고 불렸던 동료(편의상 ‘행정직’이라 하자)가 양식에 맞춰 깔끔하게 타자를 쳐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 오타’를 점검하고, 결재 과정에서 내용을 수정하고, 고친 내용을 다시 타자 치고 하는 과정이 끝도 없이 반복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열 번도 넘게 같은 취지와 내용의 문서를 고치고 또 고쳤다.
예외 없이 전원 여성이었던 행정직 동료는 팀 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어쩌다 퇴근 시간이 넘어 야근을 해야 하는데, 문서를 만들어 줘야 할 행정직 동료가 일찍 퇴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비상이 걸렸다.
대개의 경우 행정직 동료는 개인 사정을 포기하고 같이 야근을 했다.
그들이 업무 사정을 이해한다고는 해 줬겠지만, 나머지 동료들이 행정직 동료의 개인 사정을 헤아려 주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아도 쥐꼬리만 한 월급에 얼마나 더 초과근무 수당이 주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망쳐버린 기분과 희생된 개인사가 금전적으로 충분히 보상될 리 만무했다.
같이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해결한 이후 본격적으로 야근을 하자고 한다.
당시에는 야근을 하면 팀 내 남아 있는 모두가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 게 당연한 거였다.
심지어 야근을 할 필요가 없는 동료도 ‘의리상’ 식사를 하고 눈치껏 자리를 지켜야 했다.
그런데 행정직원이 ‘식사를 같이 하지 않을 테니 얼른 다녀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분명 기분이 많이 상했을 동료를 두고 나가서 식사를 하는 사람이나, 잡쳐버린 일과 후의 삶 때문에 화를 다스려야 하는 사람이나 서로 고역인 건 마찬가지였다.
아예 노골적으로 ‘개인 사정없이 시키는 대로 야근하는 행정직 동료와 같이 일하면 좋겠다 ‘는 말이 오가기도 했다. 그런데 개인 사정이 없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때 같이 식사하러 나가지 않은 행정직 동료는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시에는 야근 때문에 남아 있다고는 하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야근을 필요로 할 만큼 급한 일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습관성 야근‘**이라 불리던 악의적 업무 관행이다.
팀 내 동료끼리 야근을 핑계로 ’ 법카’ 들고나간 저녁 자리, 반주랍시고 걸친 소주 한 잔이 두 잔, 세 잔으로 늘어나고, 자리에 없는 상사 흉까지 안주로 보태질라치면 야근하려던 이유나 급한 사정쯤은 쉽게 잊히고 술자리는 밤이 깊도록 이어지기도 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전화를 걸 수도 사정을 물어보러 문자를 보낼 수도 없었다. 남아 있는 행정직 동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상하 간 권력관계가 명백했던 분위기에서 그들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나마 이런 비참한 상황을 막아 보려는 수단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양심에 호소할 수밖에.
굳은 얼굴로 저녁도 마다하는 동료를 사무실에 앉혀 두고 자정이 가깝도록 저녁 자리를 이어가는 횡포를 막으려 식사 자리를 마다하고 기다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아무도 문제제기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상명하복식 권력관계와 성차별적 업무 역할이 선명하게 드러나던 **’ 야만의 시대‘**였다.
나는 그 낯설고 어색한 시대에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야만의_시대 #습관성_야근 #타이피스트
다음 글에서는 밥값 못한다는 질책 속에 '복사기 요정'으로 살았던 신입 시절의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