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조심해! - 바르게 말하며 살기(3)

붕어빵 팥앙금처럼 쌓이는 불편한 말들

by 백제웅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도 되지만 끝내 마음 한구석에 남는 말들이 있다. 붕어빵의 팥앙금처럼 묽은 반죽 위에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좋기만 했던 관계의 옆구리도 툭, 하고 터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호의라는 이름으로 던져진 무심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소화제 없이는 삼키기 힘든 덩어리가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우리 주변에 노골적이고 불편한 대화는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두고 차별하는 것도 많이 줄었고, 조직 내 성별 직원 수 격차도 많이 줄어들면서 서로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많아졌다.


일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혼인을 통한 가족 구성이 더 이상은 보편적인(정상적인?) 가구 구성이라 할 수도 없어졌다. 2020년부터 22년까지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 탓에 이제는 혼자 식사하는 문화도 자연스러워졌고, 개인의 사생활을 더욱 존중해 주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여전히 귀에 걸리는 말을 듣게 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어색하고 긴 자리를 뜨고 싶은 긴 대화를 오래 하는 건 아니고, 그저 툭 걸리는 느낌이 드는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 자리에서 느낄 때도 있고 시간이 지난 뒤 목에 사레들린 듯, 걷다가 좁은 길 틈에 신발 걸린 듯 비틀하는 기분이 든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흐름으로 지나가기 어려운 느낌.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도 되지만 약간의 앙금이 남는 것 같다.


모두가 나 같지는 않을 수 있다. 실은 그런 말들은 대화의 핵심이 아닐 수도 있다. 말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기억도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말들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이 귀에 걸릴 때가 많다. 머리에 남아 차곡차곡 쌓인다. 상대에 대한 나의 인식과 평가나 감정에 파일로 저장하듯 말 한마디씩을 쌓아 둔다. 붕어빵 팥앙금처럼 묽은 반죽에 얹힌다.


팥앙금이 너무 쌓이면 붕어빵도 터지지 않을까? 좋기만 할 수 있는 관계를 작은 말 한마디로 금 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들은 몇 가지 사례를 정리해 본다.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 말들, 얘기한 사람과 들은 사람 간의 친한 정도나 권력관계에 따라서 받아들여질 수도,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것들을 모아 보았다.


1. 성별을 특정 짓는 말들


사례 1


모처럼 여유가 생긴 동료들 몇 명이 하루 시간을 빼서 서울 도성 일대 순례를 다니기로 했다. 예정된 날은 그 겨울 가장 추운 날로 예고된 날이었다. 산행을 주관한 중년 남성 동료에게 ‘추운데 산행에 가까운 순례길이 괜찮을지'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싸나이가!”

였다.


같이 가기로 한 동료 중에는 여성도 있었다. 여성은 “가시나가!” 해야 하는 건가?


'남자가!'도 아닌 '싸('사'도 아닌) 나이가'였다 (오래전 동료 중 한 명은 말끝마다 “남자가!”를 입에 달고 다닌 분도 있었다. 그 역시 안 쓰니만 못한 말이다).


’ 사나이’라는 말은 유명한 군가 ’ 진짜 사나이’를 통해 더 보편적으로 쓰인 말일 터. 성별을 거론하는 말인데 거기다 군사문화가 가미된 말이어서 더 걸렸다. 점심 먹은 게 얹혀 소화제 찾을 뻔했다.


사례 2


직장마다 상황이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남성 대비 여성 고용비율이 많이 올라갔다고 믿는다. 아직 남녀가 평등하게 노동시장에 참여한다고 말할 수 있기에는 갈 길이 멀고 제약도 많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적어도 비전문가인 내 눈으로 보기에 여성이 일자리에 많아진 것 같기는 하다.


내가 속한 조직도 그렇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부서 내 여성 비율이 더 높은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어떤 부서는 한 명 빼고는 모두 여성인 경우도 보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부장님은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부장 단위까지 여성이 들어가는 데는 아무래도 시일이 좀 더 소요될 걸로 보인다.


여성 비율이 매우 높은 부서에 부장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남성 동료는 한 명뿐. 몇 주간 적응 기간을 거친 부장님께서 모처럼 한가한 오후에 자리를 만들어 부서 내 모든 직원들과 다과회를 가졌다.


부장님의 의례적인 인사말을 거쳐, 뒷자리에 엉거주춤 서 있는 혼자밖에 없는 남성 동료에게 부장님 눈길이 간다.


“ㅁㅁ님, 팀 내 혼자만 남자네요?”

자명한 사실을 왜 물어볼까?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ㅁㅁ. 이어지는 부장님 한마디,


“많이 힘들죠?”

뭐가 힘들다는 걸까?


그 팀은 하루 종일 무거운 물건 옮기는 일을 하는 것일까? 무거운 짐을 옮긴다고 해도 그렇다. 여성은 짐 안 들까? 여자가 많은데 남자 혼자 사무실에 있으면 힘든 것일까?


30여 년 전 처음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남성이 절대다수였다. 사무실 내 여성은 많아야 두 명, 대부분 한 명이었다. 그 많던 회식자리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예외 없이 여성은 소수였고 절반 이상의 회식자리에서는 다수 남성 사이에 여성 한 명인 경우였다.


‘홍일점’이라는 말이 언론에도 예사롭게 거론되던 시절이었다. 그 혼자인 여성은 힘들었을까?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혼자라 힘들다는 것을 당시 부장도 알았을까? 부장은 고사하고 그 많던 남자들 단 한 명이라도 알았을까? 고백한다. 나는 몰랐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그 어느 누구도 ‘여성 혼자라서 힘들지 않으냐’고 챙겨 묻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여성이 절대 소수인 상황에서 ‘힘들지 않으냐 ‘는 얘기를 했거나 들어본 적 있는 분들은 알려주면 고맙겠다.


남자든 여자든 성별상 모임 내에 소수여서 힘들지 않느냐는 말은 옳지 않은 말이고 조심하는 게 낫다고 본다.


사례 3


남성 중간 관리자가 여성 동료가 많은 상황이 불편(?)하여 새로 오는 신입 직원은 남성으로 해달라고 인사부서에 요청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다른 사례로 여성 중간 관리자가 이번에는 팀 내 한 명밖에 없는 남성 후배만 챙기고 돌봐주며 평가가 후하다는 다른 여성 동료의 뒷담화를 몇 차례 들은 적도 있다. 이런 얘기가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한다.


사례 4


새로 신입 직원 두 명이 내가 일하던 팀에 합류해서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다. 두 신입의 멘토 두 명까지 네 명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별말 없는 신입보다는 멘토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돌아오는 길,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선배분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신입 직원들을 인사시켜 드리니,


“난 또 누가 꽃밭에 둘러싸여 가고 있나 했지.”

하시는 거다.


그렇다. 신입과 멘토까지 네 명 모두 여성이었다. 내 손이 여덟 개라면 네 명 모두의 귀를 틀어막아 주고 싶었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여서 더욱 안타까웠다. 지긋하신 연배를 생각해도 용납이 안 되었다. 그러지 마시지…


"편한 자리라며 던진 불편한 말은 결코 우리를 잘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 지내던 관계에 금을 낼 뿐이죠. 외모 품평부터 사생활 참견까지, '친함'을 무기로 내 공간을 헤집는 말들의 실체를 파헤칩니다. 제4편: 외모 평가와 사생활 침해, 그리고 가짜 충고. 개인 사정이 생겨 다음주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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