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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군 Nov 13. 2017

한적한 주말 잠시 떠나 만났던 서대문형무소

태어나서 처음 가본 서대문형무소


약속이 깨졌다.



  어느 한적한 토요일 치과 예약을 해뒀는데, 오전 일정이 빨리 끝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취소를 해야 했다. 게다가 병원 예약을 해놓은 상황이어서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비게 되었다. 어떻게 이 주말을 보낼까? 하다가 예전부터 가보기로 했다가 쉽게 가지 못했던 서대문형무소를 가보기로 했다.


  마침 외국에는 역사적 장소들을 찾아가곤 하는데 국내에 있는 장소들을 찾아가 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바로 서대문형무소로 향했다. 예전에 외국인 친구들이 다녀와서는 후기를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는데,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느낀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들도 다시 나면서 말이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게다가 교복을 입고 있는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많이 있었다. 만약에 내가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이 곳을 소풍장소나 체험학습 장소로써 와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봉사를 하는 학생들, 단체로 온 학생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대문형무소를 보기 위해서 줄을 서고 있었다.



  한참 동안 줄을 섰을까? 표를 구매를 했다. 마침 내가 갔던 10월 말은 할인을 하고 있어서 20% 할인 가격인 2400원에 입장료를 구매할 수 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들어왔다가 할인된 가격에 입장을 할 수 있어서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지도를 보면서 어떻게 구경을 할지 살펴보았다. 빨리 보면 1시간이 넘게 걸리고 천천히 봐도 2시간은 안 걸리는 동선이라고 생각이 된다.



  1907년부터 1987년까지 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이라는 내용으로 전시물들이 되어있었다.

과거에 일제강점기 시절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서대문형무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곳이기도 하다. 근현대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대문형무소는 그 시기의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상징하는 곳으로 남았다. 이를 기념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 서대문구에서 서대문형무소를 보존, 전시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잘 운영이 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3.1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의 독립을 선언하고,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 지배에 맞아 우리나라 조상들이 시행했던 만세운동이다. 이 운동으로 인해서 일제 식민정책이 문화통치로 전환되고 그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되었다.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는 수감자가 많이 늘게 되었고 민족 대표 33인을 비롯하여 3천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다. 그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결사, 사회, 문화 등등 다양한 분야의 독립운동가들이 수감이 되었고, 그중 상당수가 순국하여 독립운동의 역사 현장이 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유관순 열사의 초상화도 걸려있었는데, 여기서 사진을 같이 찍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한참을 보다가 지하로 내려가니 지하 고문실에 대한 전시물들이 있었다. 모형 인형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물을 부으면서 고문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있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눈으로 보면서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렇게 고문을 당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순국을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본의 악행에 대해서 더욱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임시 구금실이라는 곳인데, 취조 전 수감자를 임시로 구금하던 곳이라고 한다. 또한 배치를 하는 과정에서 고문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함으로써 독립운동가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곳이기도 했다. 기다리면서 들리는 비명소리와 폭언들을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했을지 말을 하지 않아도

떠오르게 되는 곳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고문 방법들이 있었다. 상자 고문이나 손톱을 빼는 고문이나, 나중에 하얼빈에 있는 마루타 부대를 가볼 생각인데, 여기보다 더욱 악독한 생체실험이 이뤄졌던 곳은 얼마나 지독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모로 힘이 없으면 이렇게 국민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금이 많이 들어갈지도 모르겠지만, 소 잃고 외양 갓 고치는 일이 없도록 미리미리 준비를 해서 우리나라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또는 외교를 통해서 지켜낼 수 있는 방법들을 여러모로 강구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보 안과 청사를 나와서 중앙사를 가보았다. 간수 감시대라고 되어있는 곳이 있었는데, 이렇게 간수들이 앉으면 전 옥사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빠져나와서 탈옥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누가 나오고 들어가는지 다 지켜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로만으로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곳저곳 옥사나, 공작사나 추모비 등 다양한 곳들을 둘러보았다. 옥사에서 나와서 보이는 태극기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옆에 걸려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요즘 들어서 생각하는 것인데 과연 나는 일제강점기 시기에 태어났었으면 이들처럼 독립운동을 위해서 열심히 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그 상황에 직접 맞닥뜨려야지 실제로 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시구문이다. 순국한 분들의 시체가 지나가는 문인데, 안쓰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매번 외국에 나가서 본 것들만 올리다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올리는 것 자체가 내가 그동안 올렸던 글들과는 다르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회사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서 보고 느낀 것을 적는다는 행위 그 자체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국제정치를 공부해왔던 사람으로서 국내의 관련 장소들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반성해야 할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이 된다.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면서 과거 우리나라는 이런 고난의 역사를 거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단기간에 독립과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고 발전을 이루어낸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더욱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덤으로 들었다. 시간이 된다면 가까운 곳들부터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먼 곳이던지 가까운 곳이던지 상관없이 어딘가를 떠나는 행위 자체로도 지친 일상에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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