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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시리뷰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나의 기록 방법

by 백미

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일주일이 통채로 흐르는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 같다. 가끔 세월의 속도감이 무섭다고 느낀다. 비행기를 타는 정도의 일탈이 아니면 이젠 어지간한 경험으로는 새로움도 느낄수가 없다. 재미도 흥미도 무감각해져가고 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도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마음이 떨리는 것도 새로움에 대한 떨림도 귀여운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도 잠시잠깐일뿐 금새 0으로 수렴된다. 30대, 거대한 안정의 블랙홀에 빠져든 것 같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큰 자극은 ‘일’이며, 업무가 주는 묘한 도파민이 현실적으로 가장 경제적인 흥분이라는 판단아래 허용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올 해 초, 나는 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또렷이 기억하진 못해도 특정 사건이나 누군가의 다양한 말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아, 기억에 남는 건 요즘들어 ‘깜빡, 깜빡‘하는 일이 잦은데 일기를 쓰는게 치매에 좋단다. 그게 시발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자극에도 좋다고 하고, 일기장을 보면 내 사라진 시간들을 움켜쥐고 가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일기를 쓰기로 했다.


한 페이지에 숫자 하나씩, 365일이 적혀있는 일기장을 샀다. 귀찮거나 바쁠땐 넘어가고, 쓰고 싶은게 있으면 365일 중 해당하는 날짜에 페이지를 펼쳐서 글을 쓴다. 유치하고, 문장도 엉망이고, 딱히 의미도 없는 글을 가득 채워본다. 2월까진 그렇게 했다. 다행히 올 해는 1월 3일을 넘겨 바로 어제인 2월 22일까지 꾸준히 일기장을 펼치고 있다. 여전히 내가 쓴 일기를 다시 보는 건 괴롭다. 글을 쓸 때는 나름 진지하게 감정을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쓰고 나서보면 얼마나 하찮고 별 볼 일 없는지. 언젠가 내가 쓴 일기를 보고 과거의 그 때를 마음편히 넘나들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록’하기를 인스타그램에도 담고 싶었다. 매 번 전시회를 갈 때마다 인증샷처럼 올리던 계정이 있는데, 그 계정을 좀 본격적으로 살려보고 싶었다. 내가 다녀온 전시회 사진들을 다시 꺼내 사진을 올려보기도 하고, 유명 미술관의 예정 전시도 기록해보고, 미술관 굿즈 구매내역을 숏폼으로 만들어 올려보기도 했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내가 가진 일개 취미 관람자의 정보로는 전문적인 채널의 콘텐츠를 따라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어떤 콘텐츠가 좋을지 고민하던 차, 차라리 내가 그린 그림을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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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이는 태권도, 여자 아이는 피아노. 나도 동네 피아노 학원을 꽤 열심히 다녔다. 남들은 연습 페이지를 1번 치고 포도 2번 색칠 할 때, 나는 3번 치고 1번 색칠 했다. 그만큼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는데, 난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내 손 끝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음악적 재능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림은 달랐다. 수업 듣기 싫어서 교과서 모서리 어디에 그린 캐리커처는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의 관심도 끌었다. 아, 나는 별 노력 하지않아도 남들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미술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미대 입시를 준비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다. 난 미대를 가려면 별도의 입시를 해야하는지 그 때 처음알았다. 집에서는 미대 입시를 반대했기 때문에 수학학원, 과학학원을 다닌다고 거짓말 하고 미술학원을 다녔었다. 당시엔 엄마한테 현금을 받아 학원비를 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술학원을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피아노를 칠 때 처럼 손 끝에서 본능적으로 느꼈던 게 있다. 난 절대 미술을 업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


미술학원엔 미친 친구들이 많았다. 배워서가 아니라, 그냥 감각적으로 잘하는 애들. 프린트 하듯 소묘를 한다거나, 온갖 색상 조합을 펼친다거나. 그래, 그런 기술적인 테크닉은 둘 째 치고 결정적인 게 있다. 바로 ‘메시지’. 난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게 없었다. 주변에서는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니라, 형식적인 입시미술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게 너무 답답하다고 우는 소릴 했다. 하지만 나는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무엇’이 없었고, 그건 어른이 돼도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너가 어려서 그럴거야 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예쁜 사람을 보면 예쁘다고 느끼는건 배워서 느끼는 게 아닌 것 처럼 내가 예술가가 아니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뭐 요즘 세상에 미대 졸업생 중 전업 화가는 20%도 안된다고 하는데, 입시 미술을 하면서 화가를 꿈꾼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붓을 들고 물감을 칠하는 사람이라면 가져야할 ‘어떤 것’이 나에겐 없다고 생각했고, 미술을 그만뒀다.


세상은 참 우연스러운게 많다. 아니, 어쩌면 아주 겹겹이 쌓여진 마음의 층에 감춰져있던 ‘진심’이 나이가 들면서 닳고 닳아 드디어 형태가 보여지게 된 걸지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아주 별거아닌 내 일상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전시회를 다니며, 그리고 미술에 대한 채널을 고민하며, 취미로 미술사 공부를 하며- 비로소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이 내 머리와 마음에 꽂혀 들어올 때, 나의 세상은 바뀐다. 그건 바로 세상을 뒤흔드는 메시지를 전하는 위대한 작품도 있지만, 소소한 것에 대한 공감과 즐거움을 주는 그림도 있다는 것이다. 또 작가는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과 살아있음을 느끼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림의 가치를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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