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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ul 26. 2020

영어는 망할까?

언어에는 우월성이 없다


영어의 시대는 지났고, 이젠 중국어의 시대이다!

사람들이 많이 배우지 않는 외국어를 (아랍어, 베트남어 등) 배우면 희소성의 가치가 생긴다

특히나, 미국계 회사로 취업을 원하면 스페인어를 배워두면 좋다

분단을 극복한 독일을 벤치마킹할 일이 머지않았으므로 독어는 더욱 유리하게 사용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의 모든 얘기는 영어가 기본이라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나는 대학에서 외국어문학을 전공했고 내가 다닌 대학 학부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러시아어 전공이 있었다. 학과제(입학부터 학과를 정함)가 아닌 학부제(입학 후 1년 뒤 학과를 정함) 입학생이어서 1학년 내내 교양수업을 들었는데 이때 친해진 친구들과 각자가 교양 수업에서 듣는 외국어의 전망에 대해 자주 얘기했었다. 말만 들으면, 모두가 다 영어를 이길(?) 언어들이다. 특히나 내가 신입생일 때는 중국어가 뜬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지만 중국어는 10년째 뜨고 있는 중일뿐 영어의 위상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외국어를 배울까? 대부분 경제적·정치적인 이유로 유행하는 외국어를 배운다. (언어를 배우는 재미 자체가 전부인 경우는 제외.) 그래서 각자가 배우는 새로운 외국어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어필하고 싶어 하는데, 이는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고자 하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해외 기업에 취업을 준비한다면 당연히 영어가 아닌 기타 언어를 잘해야 하겠지만, 모든 이점상의 디폴트는 '영어가 기본'이라는 전제다.


언어는 자체의 우월성을 따질 대상이 아니라, 복잡하고 유기적인 관계가 섞인 도구이다.  그 관계는 대표적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와 연결된다. 중국어가 유행하게 된 이유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이전보다 막강해지면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힘이 증가되고, 그들의 언어가 실용적인 우위를 선점하며 사회적·문화적 파급력 또한 자연스럽게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의 유행은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위상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어 화자가 영어 화자의 수보다 많다고 하더라도 사용역의 한계를 넘기가 어렵다. 데이터가 집약적으로 모인 '구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정보가 영어라는 언어로 '정보화' 되어있다. 그래서 영어는 쉽게 망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언어가 그 위상을 대체할 일도 현재는 희박하다.

 

언어 덕택에 인간은, 설령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도, 단일 목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언어를 통해 서로 결합한 덕분에, 수많은 인간이 마치 단일한 사회 유기체처럼 활동할 수 있었다. (...) 우리를 한데 모은 세계 모형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들어맞아야 했다. 그것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정보가 생길 때마다 우리의 모형을 지속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p.38-39


영어가 국제어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유는 영국과 미국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세계 강국은 그리스, 로마, 프랑스, 스페인, 영국 그리고 미국이라는 순서로 큰 연대기를 그린다. 전근대 역사상 영국의 침략 활동으로 영어를 모국어 혹은 제2언어로 쓰는 국가가 많아졌고 (영국, 미국, 캐나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아프리카 등) 결정적으로 미국이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해진 것이 그 이유이다. 세계화로 인해 물리적 국경이 약해지며 전 세계인들이 쉽게 유대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언어는 연결과 유대를 만드는 필수 도구이며, 현대 인류는 생존과 공존을 위해 영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초래했다고 말할 수 없다. 두 가지 현상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일어났고, 분명히 상승 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p.437

영어는 진짜 안 망할까?


현대 영어가 생성된 시초는 노르만 정복(1066)부터였다. 정복자 윌리엄은 영국을 침공했고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영어를 거의 사용할 수 없는 프랑스어 화자들이었고 이로 인해 게르만 언어인 영어에 라틴언어인 프랑스어가 섞이게 되는 역사가 발생한다. 불어 사용자의 지배가 400년간 이어지며 순수 고대 영어는 거의 사라지게 되고, 중세 영어가 출현하게 된다. 어찌 보면 불어가 영어를 침략하며 순수 영어를 망하게 하고(!) 새로운 영어를 탄생시키게 된 것인데, 현대 영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망하지 않고 세계어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것 같다.


역사를 다룰 때는 인과관계를 논하기보다 파급효과를 염두에 두는 편이 낫다.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p.437


[세계어로서의 영어 1. 영어 사용자 수는 계속 늘어난다]


영어권 국가에 태어난 모국어 화자이든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학습자이든 영어를 말하는 화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사용 지역 또한 줄어들 기세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자료와 정보가 영어로 기록되고 말해지고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즉, 영어를 필요로 하는 사용자의 숫자와 영어 사용자가 만드는 정보의 양이 계산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공용어로서의 위치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어로서의 영어 2. 정치적 부담이 적다]


이제 영어는 특정한 한 국가에서만 사용되는 언어라는 인상이 없다. 그래서 정치적 연관성이 타언어보다 적은 편이다. 정치적 의도를 더욱 줄이기 위해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인공어(대표적으로 에스페란토어)가 있었지만, 자연어를 대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세계어로서의 영어 3. 배우기 쉬워서 접근성이 좋다]


영어는 상대적으로 배우기 쉬운 언어에 속한다. 예를 들어, 독일어의 경우 주어에 따라 동사의 끝 부분(어미)을 바꾸어야 한다. (Ich liebe dich, Du liebst mich, Er liebt dich) 하지만 영어는 주어가 3인칭 단수일 때만 동사의 끝을 바꾸면 된다. (I love you, You love me, He loves you). 독일어의 경우 각 명사마다 성(gender)이 존재하므로 명사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중성인지 구분하는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모두 다르게 쓰며 각 명사의 대명사도 성에 따라 모두 다르다. 하지만 영어는 대명사에만 성을 적용하므로 (He-him-his, She-her..) 일반 명사를 사용할 경우 관사는 the 나 a/an 만 사용하면 된다. 원래 영어도 독일어만큼이나 규칙성이 높고 동사마다 변화도 존재하던 언어였으나 노르만 정복 이후 하층민의 언어로 전락하면서 규칙성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학습 초보자는 학습 내용에 있어서 양적 부담이 적어야 배움을 시작을 할 수 있다. 관사가 28개인 독일어보단 3개인 영어가 배우기 쉬우므로, 처음 외국어를 배우는 화자에게 접근성이 좋은 언어는 영어이다. 영어는 접근 장벽이 낮기 때문에 쉽게 교육이 가능하고 쉽게 전파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언어의 기능과 필요성을 생각한다

각 나라의 언어는 내부적인 사용에 따라 기능이 변화되었고(형태, 소리, 단어 등) 외부적인 영향에 따라 필요가 변화되었다. 영어와 모든 언어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므로 먼 미래엔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첫 번째 국제공용어가 될 수도 있다. 언어의 본질은 소통에 있다. 언어는 너와 나 사이의 우위를 결정짓는 도구가 아닌, 우리가 서로 소통하기 위한 연대의 도구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참조 도서>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타밈 안사리

「The History and Linguistic Changes of English」- 이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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