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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ul 14. 2020

책,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번역의 힘

언어적 요소와 비언어적 요소

저자 캐럴 드웩이 TED에서 했던 강연이 유명한 것처럼, 그녀의 책 「마인드셋」은 성공 심리나 처세술 분야에서 순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태도의 힘'이라는 부제를 강조하듯 이 책은 고정 마인드셋과 성장 마인드셋이라는 개념을 매우 유익하고 재밌고 따뜻하게 설명한다. 읽기 쉬운 문체 덕분에 빨리 읽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지만, 매 챕터마다 곱씹을 내용이 많아서 속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말을 천천히 써보기로 했다. 대략 12일에 거쳐서 이 책을 읽었는데 기존의 사고를 깨트리는 메시지, 부족함을 반성해보는 계기, 내가 잘하고 있었던 것 등을 정리하는 등 꽤나 유익한 시간 보냈다.


어쩜 이렇게 메시지가 쏙쏙 부드럽게 머리에 잘 들어올까? 저자는 노련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며 마음속으로 극찬을 하는데 문득 저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아차, 이 사람 외국인이지. 그럼 이건 번역서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깨달았다. 이 책은 내용만큼이나 번역이 훌륭하다는 것을.



'입이 짧다'을 직역할 수 있는가?

책 하나에는 저자의 인생이 들어있다. 나는 책을 출간해본 적이 없으므로 그 과정이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건지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단편 글 하나를 쓰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을 알기에 책은 더 노력해야 출간이 가능하다. 그렇게 인생이 담긴 책 하나가 나오고, 그 영향력이 세계로 뻗어 가면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이 이루어진다. 나는 통번역을 공부한 적이 있지만, 그와 별개로 번역을 생업을 하는 분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번역가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낀다. 내가 마인드셋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책의 번역가는 저자의 문자인 '언어적 요소' 오역이나 오류 없이 번역하려고 했던 것뿐만 아니라 저자의 말투나 성격, 분위기와 같은 '비언어적 요소'도 글에서 느껴지도록 노력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통역가도 변역가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독자가 느끼는 점을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배움의 과정입니다. '나쁜 나'와 '좋은 나'사이의 전쟁이 아닌 거죠.

이것은 바로 배움의 과정이다. '나쁜 나'와 '좋은 나' 사이의 전쟁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배움의 과정이며, '나쁜 나'와 '좋은 나' 사이의 전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움의 과정이므로, '나쁜 나'와 '좋은 나' 사이의 전쟁은 아닙니다.


조사, 쉼표, 모음, 동사의 어미만으로도 문장의 느낌이 달라진다. 네 가지의 문장 중 하나는 김준수 번역가의 문장이고, 나머지는 내가 문장을 보고 임의로 바꾼 것이다. 캐럴 드웩의 직업과 실험 내용, 교육자라는 직업 그리고 그녀의 가치관을 책에서 보고 난 후 나는 머릿속에서 그녀의 모습과 말투를 상상할 수 있었고, 다행히 TED를 보니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거의 일치했다. 특히나, 그녀의 말투와 분위기는 책에서 만난 그녀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번역가의 문장이 만들어낸 온도가 그녀의 성격을 짐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연찮게 내 생각이 맞아 들어간 경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외국서적의 번역본에서 느끼는 묘한 언어적 차이를 오래전부터 느껴왔기 때문에 이 책의 번역이 더욱 감사했다. 위 네 가지 문장에서 번역가님의 문장은 첫 번째이다. 내가 쓴 아래의 문장은 문법적으로 오류가 심하다거나, 원문의 의미를 훼손하는 흐름은 하나도 없다. 다만, 캐럴 드웩이라는 저자의 음성은 첫 번째 문장에 가장 가깝다.


우리나라 고전 및 전현대 문학이 그 우수성에 있어서 부족함은 없지만, 노벨상과 같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의 정서가 담긴 언어적 표현을 번역하기가 어려워서이다. 대표적으로, 정(情)이라는 단어는 그 어떤 영어단어로도 한국인들이 표현하는 느낌을 직역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입이 짧다"는 한국어 한마디를 한국인이 느끼는 그대로 미국인에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점에서 번역가의 고뇌와 어려움을 짐작해본다. (물론, 모든 언어는 각 국가마다 특유의 문화와 정서가 드러나므로 한국어를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있는 것처럼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나는 소비자이다

책을 구매하는 소비자이자 독자로서 가장 빠르게 언어의 불편함이 드러나는 책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철자의 오류가 하나라도 있다.   ex) 당신은도

단어의 순서를 바꾼다.   ex) The red, yellow and blue banana → 노랗고 붉은 파란색 바나나

의미가 다른 단어를 쓴다.   ex) 위버멘쉬를 'Overman'으로 쓰지 않고 'Superman'으로 쓰는 경우


수많은 노력과 손길이 거친 책에 저런 오류가 있다는 것은 사소하다고 치부하는 것이 결코 사소한 게 아님을 말해준다. 의미만 전달되면 된다고? 그것은 독자의 해석 영역이다. 오차는 있을 수 있다. 다만, 출판의 과정 중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오차를 줄이지 않았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판매에 급급한가? 인력이 부족한가? 하지만 어떤 독자가 그 과정을 고려하며 책을 구매하는가? 글에서 오타 하나가 보이면, 다음 문단을 읽는 독자는 또 오타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즉, 책을 믿지 못한다. 나는 책을 번역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하는 사람이다. 그들의 노력과 수고에 도움을 받기 위해 책을 구매할 때 돈을 지불한다. 하지만, 문장 단위가 아닌 구 단위에서 실수가 생긴다는 것은 문장을 이루는 문단까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힌트이다.


저자의 모국어와 독자들의 모국어 사이의 난해한 격차를 줄이고, 오류 없이 전달하면서도 원문의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는 번역이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마인드셋」의 한국어판 번역본은 기계적인 실수는 당연히 없거니와, 원저자의 메시지를 오류나 과도한 의역 없이 우리 정서에 맞게 번역한 웰메이드 책이라고 평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번역가 덕분에 매우 잘 읽었다.  한국에서 「마인드셋」이라는 책이 빛을 냈던 이유는 번역가의 섬세한 감수성과 꼼꼼하고 전문적인 노력이 뒤편에 있어서였다.



<참조 도서>

「마인드셋」- 캐럴 드웩, 김준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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