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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y 31. 2020

유럽을 만든 하나의 단어는 OO 이다

시간안에 실존하는 문화



독일을 만나기 전 나에게 독일은 그냥 유럽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을 만들어 유로화라는 통일된 화폐를 쓰는 나라이고, 미국인이 아니면 독일인이든 프랑스인이든 다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유럽은 국가 간의 경계가 낮은 지역의 이미지가 컸다. 유레일을 타고 국경을 넘는 자유를 누리며, 이체에(ICE)를 타고 357,578㎢의 면적을 자랑하는 독일을 쉽고 빠르게 다닐 수 있는 그곳. 여권의 의미가 약해지는 듯한 분위기에서 28개의 국가가 '유럽'이라는 한 단어로 이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을 만든 하나의 단어는 <연결>이다    


[연결1] 유럽을 철도의 연결은 기차뿐만 아니라 문명을 연결했다 


(출처: pixabay)


마차의 시대에서 철도의 시대가 열린 유럽은 기찻길을 따라 각 나라의 예술을 쉽게 전파한다. 그 첫 번째는 음악이었는다. 음악은 감정을 동요시키고 감동을 준다. 순수하고, 거칠고, 강력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는 인종과 출신에 상관없이 관객들이 열광하는 시간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함께 모여 있는 장소를 무색하게 만든다. 유럽인들이 유럽만의 공통된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열광하는 음악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폴린의 오페라 공연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유럽 전역에 퍼진 여러 민족의 가치와 사상을 연결하는 지점이었다. 철도를 통해 만난 유럽인들의 시간에는 유럽인들의 감각과 예술적 특성이 존재했고 유럽의 문화는 넓은 땅덩어리가 무색하도록 모든 나라를 축소시켰다.  


예술은 니체가 제시한 유럽의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개념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종교나 정치적 신념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유럽 대륙의 사람들을 통합한다고 믿었다. 「유러피언」p. 819





이 곡의 제목과 작곡가를 아시는 분 있나요? ( 구독자님의 댓글 : Andre Rieu 의 Second Waltz 라는 곡입니다^^)



독일은 어딜 가나 길거리 공연이 열렸다.  악기를 매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피아노까지 설치해서 버스킹을 연다. 관객석도 구색도 갖추지 않은 공연이지만 그냥 지나칠  없는 퀄리티의 연주가 쏟아진다.

이렇게 악장이 있는 클래식부터 친구들이 직접 꾸리는 공연까지 독일인에게 음악은 그저 생활이었다.

잘생긴 요한은 여전히 공연하며 산다.

작고 큰 공연문화가 생활에 스며있는 문화는 이제 막 유럽 땅을 밟은 나에게는 매우 신선한 모습이었다. 공연을 듣고 나서 1유로씩 두고 가는 팁 문화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경험을 직접 체험했다. 어디서든 음악을 즐기는 그들의 자유로움과 취향에 반했던 시간이었다. 등에 악기를 매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찾아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문화, 유럽 문화는 시간 안에 실존한다.


(출처: pixabay)


인쇄술의 혁신을 도모했던 구텐베르크(1397 ~ 1468)의 금속활자가 일차로 유럽 전역을 뒤흔들었던 것은 지면에 써내는 뉴스, 정보 그리고 여론 형성의 파급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지 측면,  자유로운 토론을 금지하려는 권력의 사슬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인간 정신이나 각종 제도가 이룩한 모든 발전은 바로 이런 역사의 직접적인 결과인 것이다. 「자유론」 p.73


음악뿐만 아니라, 책마저 철로를 따라 전파되니 출판사의 철도 노선 독점은 곧 세계적인 출판사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책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고, 정보의 공유가 쉬워지자 통합된 유럽 문화를 이해하는 '유럽인' 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유럽 문화는 철도를 통해 의견·정보·사상이 공유된 역사이다. 


철도는 19세기의 낙관주의와, 과학과 기술을 통한 도덕적 진본에 대한 믿음을 뒷받침했다. 사진술 및 기계 기술과 함께 철도는 현실에 대한 근대적 이해, '지금 여기' 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 냈다. 동시대의 리얼리티를 반영하려면 신선한 예술 양식이 필요했다 예술은 낭만적 판타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보여주어야 한다. "낭만주의는 이 지상에서 끝났고, 철도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 「유러피언」 p. 107




[연결2] 강을 따라가라. 여유와 휴양이 줄지어 연결된다.


1) 여유

그들은 라인강을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자유로운 독일인의 라인강을. 「유러피언」 p.419



강을 따라 산책하고 강을 보며 앉았다. 추운 날씨에 불구하고 테라스에서 카푸치노를 마셨다. 유럽의 하늘은 한국보다 높았고, 저녁 하늘에 보이는 구름과 노을의 조화가 기가 막혔다. 강을 바라보는 시간은 고요했다. 복잡하고 치열했던 일들에서 벗어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정리하고 생각에 살을 붙여내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고요한 여유는 강이 있는 일상에서 가능했다. 왜 독일이 철학 하기 좋은 나라인지 알 것 같았다.



2) 휴양

특히나 유럽에 흐르는 큰 줄기, 라인강을 지도에서 따라가다 보면 조금 더 고요한 휴양이 가능한 곳을 볼 수 있다. 온천수가 폭발하는 곳, 이름 그대로 목욕(das Baden)인 도시 바덴바덴이 그 대표적인 휴양도시이다.


 '유럽의 여름 수도'라고 불리는 바덴바덴은, 라인강을 지나는 지점과 프랑스 국경을 근처에 두고 있는 도시이다. 순회공연을 마친 예술가, 여러 나라의 왕후나 정치가, 여럿 문인들이 피서를 겸하여 온천을 즐기러 온 고급 휴양지인 바덴바덴은 독일이 북쪽에 위치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온난한 지역이다.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인 브람스는 (1865~1874)는 10년간 바덴바덴에 머물면서 <교향곡 1번> 등을 작곡한다.

https://youtu.be/EGRqIGOAPcE

브람스 교향곡 1번


바덴바덴의 휴양은 발리나 보라카이와 같은 활발한 해양 액티비티가 기대되는 곳은 아니다. 온천 시설에서 온천을 즐기고 근교 산책이나 시가지 구경, 그리고 카지노와 쇼핑을 즐기는 휴양이 가능한 곳이다. 휴양이라기 보다는 요양의 분위기가 강하다. 최근 바덴바덴시에서는 거주 인구의 노령화를 걱정하여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찾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카지노와 쇼핑 등 활발한 분위기를 도모하는 중이다. 가장 유명한 프리드리히 온천은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 같은 고급스럽고 화려한 온천이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각 온천을 시간에 맞게 도는 코스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수영복을 입지 않은 채로 남녀 혼욕이 주를 이룬다. 

실제 독일에 거주하는 내 친구들이나 함께 유학했던 분들, 그리고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바덴바덴으로 관광을 가는 것을 독일에서 꼭 해봐야 할 필수 코스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천장을 바라보며 웜타월(따뜻한 수건으로 몸 전체를 감싸주는 서비스) 을 느끼며 귀족이 된 듯한 우아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반드시 추천한다. 코로나가 잠식된 여름의 어느 날, 바덴바덴으로 풍미 깊고 자유로운 휴양을 떠나보자. 음악가가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인 후 더욱 감동적인 공연을 만들어 냈던 것처럼, 휴양 후 철로를 타고 유럽인의 문화를 만들어낸 것처럼, 바덴바덴이 선사하는 진한 휴식은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호모 유로파에우스(Homo Europaeus) : 괴테는 유럽 여러 국가의 문화적 교류와 교환이 늘어나는 것을 통하여 혼합형 유럽 문화가 형성될 것으로 생각했다. 「유러피언」 p.817



철도로 전파 된 문명, 강으로 전파 된 문화- 유럽은 현재 진행형이다.


유럽인들은 살아있는 리버노마드(River-nomad) 이자 레일노마드(Rail-nomad) 였고 강과 철도를 기반으로 유럽 문화를 만들어냈다. 선량한 유럽인, 집 없는 유럽 시민은 유럽을 강성하게 만드는 핵심 역량이었다. 현재 유럽이 보여주는 비통합적이고 비협조적인 모습을 하루빨리 잠재우고, 시간 안에 실존하는 2 통합 유럽의 모습이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Die Reise nach und durch EU, 유럽으로 향하고 유럽을 관통하는 여행!

독일 바이에른주를 어디든 여행 할 수 있는 주말 원데이 티켓. 31유로를 내면 5명이서 6시간 이용가능하다. 


** 이 글은 유럽의 문화와 관련하여 독일의 사례를 중심으로 담은 서평입니다.

** 유럽의 철도국가는 대표적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이며 독일 철도는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덴마크까지 노선이 연결되어 있어 유럽 전역의 철도 이용 승객이 DB를 이용하고 있으며 독일 철도의 화물등 다른 철도 선진국에 진출하여 유럽 대다수의 철도 화물 수송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출처 : 위키디피아 '독일철도')

** 2011년~2012년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거주했으며 사진에 담긴 정보는 해당 연도 기준입니다.  



<참조도서>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지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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