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아카데미는 MBC가 아니다 2

나는 그곳에서 반장이 되었다

by B군

그곳은 작은 사회였다. 지금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아카데미 안에는 말하진 않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SKY 출신들, 소위 '인서울'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 그리고 나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들.

그들은 다시 언론고시를 준비할 사람, 지상파 입사를 노리는 사람, 프로덕션이나 케이블로 방향을 잡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자기소개 시간.

정말 끼 많고 날고 기는 사람들이 다 모인 듯했다.

그 쟁쟁한 사람들 틈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군대 시절 내 소대장을 그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입대했던 터라 동갑내기였던 소대장. 첫 수업 시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그와는 군대에서도 별다른 갈등이 없던 터라, 수직적인 계급장이 떨어져 나간 사회에서의 재회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는 흔쾌히 말을 놓자고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INFP다.

모든 인프피들은 알 것이다.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 숨는 게 백배는 편한 사람. 하지만 자기소개 시간, 나는 소대장과의 재회와 내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놓았다. 무슨 용기였을까. 그런데 그게 터졌다.

50여 명이 모인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그 한 번의 자기소개는 얼떨결에 나를 연출반 반장으로 만들었다

.

반장이 되고 보니 좋은 점도 있었고, 이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하겠지만 수업 오는 선생님들과 연락도 맡아서 하게 되었다. 당시 수업을 오시던 분들은 방송가에서 이름을 날리던 스타 PD들이었다. 예능의 신 주철환 PD님,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님, <대장금>과 <이산>의 이병훈 PD님.(그 당시는 이 PD 님은 이 명작들을 하기 전이었고, 그냥 사극 만드시는 PD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스타 PD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기해서,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가는 그 시간이 너무 기다려졌다. 신방과나 대학 방송국 경험이 있던 친구들에게는 감흥이 덜했을지 몰라도, 방송 장비라곤 만져본 적도 없는 공대생에게는 모든 것이 신세계였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환상은 조금씩 깨졌다. 이곳은 꿈을 이뤄주는 곳이 아닌, 결국 취업을 위한 학원이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20대 때 순진한 나는 그냥 수업 때 오는 연기자분들과 셀럽들을 보는 것들이 좋고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동기들과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것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부족한 반장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우리만의 판'을 만드는 것이었다. 연출반 스터디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스터디를 구성해 사람을 모아, 영상공부를 하던지 언론고시를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직접 뭐라도 찍어보자." 나의 제안에, 나와 처지가 비슷한 지방 출신 친구들과 몇몇 아웃사이더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옆 반의 구성작가반 친구들까지 끌어들여 스터디 멤버를 결성했다.


그렇게 우리의 무모한 제작은 시작되었다. K2의 <잃어버린 너> 노래로 뮤직비디오를 찍던 날, 우리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어설프게 흉내 내며 카메라 셔터를 열고 신천 근처의 교회에 몰래 들어가 기도 씬을 찍거나 밤새 잠실 근처 골목길과 놀이터를 뛰어다녔다. 그리고, 종합운동장 앞에서 힙합 춤을 추던 학생들을 섭외해 그들의 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편집실은 친구의 자취방이었고, 최첨단 편집 장비는 집에 있던 VCR 데크 한 대였다. 카메라와 VCR을 케이블로 연결해 영상을 옮기고, 또 다른 VCR로 녹화 버튼을 누르며 한 컷 한 컷 이어 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잡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우리 모두는 피디였고, 작가였다.


3개월의 정규 실습 과정보다, 스터디를 하며 보낸 2개월의 시간이 내게는 더 값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정식으로 '큐' 사인을 외치기 전, 우리는 이미 우리만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큐 사인을 외치고 있었다.

그때 그 조잡하고 엉성했던 영상들이야말로, 내 25년 연출 인생의 진짜 첫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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