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삐삐에 찍힌 의문의 호출 번호
꿈같았던 MBC아카데미 6개월의 시간이 끝나고,
나는 다시 현실로 내동댕이쳐졌다.
사회에 나왔지만 내게 붙은 꼬리표는 여전히 백수였다.
프로덕션과 케이블 등 방송과 관련된 곳이라면 어디든지 이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내 삐삐는 침묵했다. 면접을 보라고 연락을 오라고 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집에도 너무 눈치가 보여서)
일이라도 하기 위해 간 곳은 당산역 근처의 한 사무실이었다.
IMF 여파로 생긴 공공근로였는데, 나라에서 지원하는 곳에 잠시 취업을 했다.
사무실 문을 열자 파티션이 없는 휑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운동장만 한 사무실에 수십 대의 책상과 컴퓨터가 줄지어 있었다.
운 좋게 공공근로에 합격한 나는 1940년대와 6.25 시절 도서관 자료를 문서화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 당시 취업난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내 옆에 같이 온 또래는 서울대를 졸업하거나 성균관대생이었다.
우리는 명문대 간판도, 방송 PD라는 꿈도 잠시 잊은 채
하루 종일 기계처럼 타자를 치며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주머니 속의 삐삐가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찍힌 번호는 MBC 아카데미였다.
쉬는 시간에 공중전화로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PD 자리 면접 볼 생각 있니?"
아카데미 담당자의 목소리였다.
아카데미 졸업생 중 5명 정도에게 면접을 볼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회사 이름을 듣고 실망했다.
프로덕션이나 방송사, 케이블 TV가 아닌 기업의 사내방송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내방송이라고 하면 라디오방송이나 학교방송국 같은 저퀄의 방송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지만) 그런 사람들을 뭐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과거의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사내방송이요?"
아카데미 담당자의 질문에 내가 뜨뜻미지근하게 답을 하자
담당자는 대기업이야! 일단 가서 면접도 보고, 다른 곳 갈 때까지 준비하라고 했다.
지상파 방송국을 꿈꾸던 나는 6개월 정도의 백수 아닌 백수 생활에 지쳐서 일단 면접을 보기로 했다.
며칠 후, 나는 아무런 긴장감도, 일말의 기대도 없이 태평로에 있는 한 건물 앞에 섰다.
단 한 번도 내 인생의 목적지가 될 것이라 상상해 본 적 없는 곳.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통유리 건물, 그 위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푸른색 로고가 박혀 있었다.
그 건물이 앞으로 25년간 나의 일터가 되리라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조금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