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신문지가 면접을 도운 썰

면접에 운이란 것이 존재할까!

by B군

쟌피엘

면접 때 입은 정장 브랜드다.

이 브랜드를 기억하는 이유는 동네 시장이 아닌 서울역 뒤 허름한 할인매장에서

어머니 특유의 흥정 기술을 발휘해 점원과 끈질긴 실랑이 끝에 샀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아버지가 입던 양복을 입었는데

대기업에 면접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님이 나름 큰 마음을 먹었다.

고급양복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그런가보다.


그 정장을 입고 삐까뻔쩍 한 태평로의 면접 장소로 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면접장에는 각 방송사 아카데미와 학교방송국에서 추천한 사람들이 모였다.

30~40명 정도가 면접을 보러 온 것으로 들었다)

별로 내키지 않은 면접장이었지만, 사람들 가슴에 달린 사원증 보자 왠지 모를 부러움이 생겼다.


인생이 참 신기한 것이

원하고 싶은 곳은 긴장하고 떨려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지만

별 기대가 없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자신감까지 나오게 마련인 듯하다.


두 명의 면접관 앞에 홀로 앉은 나는 거침없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술술 막힘없는 답변에 나조차 놀랄 정도였다.

아무런 긴장감도 없고, 업과 관련 질문들은 아카데미에서 배운 내용들로 충분히 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면접을 해치우고, 나는 다시 공공근로 사무실로 돌아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면접 본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고, 2차 일정을 위해 다시 회사로 와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런데 면접장에 도착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지만 2차 심층면접을 보는 자리였는데, 담당자의 실수였는지 아님 지원자들의 순발력을 보려는 것인지 특별한 안내가 없었다)

편안하게 평상복을 입거나 심지어 반바지를 입고 온 지원자도 있었다.

물론 나는 정장을 입고 갔지만, 그 자리는 2차 심층 면접이었고, 기획안과 구성안 테스트였다.


2차로 다시 면접을 보게 되자 1차 때와는 생각이 달라졌다.

번듯한 사무실과 파란색 사원증을 달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자,

갑자기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나도 저들처럼 되고 싶다.'

막연했던 호기심이 간절한 염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물론 부모님 또한 대기업이니 무조건 열심히 해서 들어가라고 성화였다.


시험 과제인 구성안은 3개의 단어 중 하나를 선택해 방송 구성안을 만드는 시험이었고

구성안 내용을 OHP(요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에 써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 당황했다.

일단 구성안 시험을 볼 줄 몰라서 당황했고, 주어진 단어들이 쉽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운이라는 것이 있을까!

면접장으로 가던 중, 갑자기 배가 아파 급히 들렀던 사무실 옆 화장실에서 읽었던 신문이 문득 떠올랐다.

주어진 단어의 정보가 담긴 기사였다.

'역시 대기업은 다르구나! 화장실에 신문도 있고!'

나는 그 기사의 내용을 더듬으며, 비디오와 오디오 부분을 나눠 프롤로그와 본문, 에필로그의

구성안을 작성해 발표했다.


그리고 몇 주 뒤 당산의 그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합격의 연락을 받고

그 공공근로 사무실을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이 나였다.


첫 출근 날, 나는 그 운명의 화장실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화장실에 신문을 비치해 두는 친절한 서비스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그날 누군가가 볼일을 보고 화장실에 놓고 간 신문.

그리고 하필 그 시간에 그 칸에 들어간 나!

평소엔 보지도 않는 신문을 긴장을 풀기 위해

본 것이 이렇게 내 운명을 바꿔 놓은 것 같다.


가끔 그날을 떠올리거나

술자리에서 술안주처럼 동료와 후배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마다 정말 인생에는 운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걸까!

만약 그날 배가 아프지 않았다면,

다른 칸에 들어갔다면, 내 인생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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