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행 비행기가 텅 비어 있던 이유

막내 PD의 첫 출장 이야기

by B군


뉴욕!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도시.

누구나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그곳!

출장으로도 1순위인 도시!


하지만 그 뉴욕을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PD 2년 차,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어느 날이었다.

선배가 나를 급하게 불렀다.


"막내야! 뉴욕 출장 좀 다녀왔야겠다."

"네? 뉴욕이요?"


꿈의 도시 이름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왜 다른 선배들이 아닌 나에게?


"선배가 왜 안 가고?"


선배는 다른 제작 때문에 일정이 안되고 팀에서도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보통 PD마다 맡은 회사들이 있었고,

S전자를 맡은 피디 중에서는 내가 막내였다.

해외 출장 같은 굵직한 건은 베테랑 선배들의 몫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 앞섰다.

해외출장은 국내 촬영보다 3배는 힘들다는 선배들의 말도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사수가 까라면 까야하는 법.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맡은 제작과 함께, 출장 준비를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선배들이 그토록 뉴욕출장을 거절한 이유를.


그해는 2001년 가을이었다.

같은 해 9/11 테러가 뉴욕을 덮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테러 후의 미국을 가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지금 상상은 안 되겠지만

몇 번 서치만 해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미국 입국과 심사가 골치 아픈 데

테러 이후의 미국을 들어가는 것이 어떨지!


하지만 첫 출장에 설렌 나는 그런 생각을 못하고

긴 비행기와 해외에서 만날 사람.

그리고 쉽지 않은 촬영일정과 촬영에 대한 고민으로 테러나 입국에 대한

걱정은 할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비행기는 지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유령선처럼 텅텅 비어 있었다.

이코너미석은 4자리가 다 비어있어서 긴 비행기로 피곤한 몸을 눕기에 충분했다.

나는 속으로 '원래 미국행 비행기는 이렇게 여유로운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몇 년 뒤,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비행기를 타고서야

그날의 한적함이 얼마나 기이한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살벌한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입국 심사부터 쉽지 않았다

카메라감독의 큰 ENG카메라는 심사 때부터 엑스레이 검사와 함께 정말 검사를 하면서

혹시 모를 테러위협을 차단한 듯 작동을 해보고 꼬치꼬치 물었다.


선배들이 가지 않은 것 때문에 운 좋게 가게 된 뉴욕.

공포의 그림자가 도시를 뒤덮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뉴욕은 활력이 넘쳤다.

낮에는 뉴저지와 뉴욕을 오가며 촬영을 했고

일이 끝난 저녁에는 뉴욕 시내로 나왔다.

특히, 동행한 카메라감독의 지인이 뉴욕에 살고 있어서 어느 출장보다 다채로웠다

현지인들이 가는 장소와 로컬 식당을 갈 수 있었고

또 뉴욕대에서 영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만나고 자취방에 초대받아서,

그들의 사는 모습과 영화에 대한 그들의 고민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쌍둥이 빌딩의 잔해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희뿌연 먼지와 비릿한 쇠 냄새가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비극의 현장에서 나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가 두려워하던 그곳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삶의 빛나는 순간들을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출장이었다




이전 06화화장실 신문지가 면접을 도운 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