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할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할까?"
이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까!
방송을 하고 싶어서 PD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다면
하고 싶은 일이 일이 된다면 그건 다른 일인 거 같다.
방송이 좋아서 PD가 됐다. 하지만 내가 만드는 방송은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 되는 순간, 그것은 전혀 다른 일이 되어버렸다.
방송은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다. 정보를 주던지, 웃음을 주던지, 감동을 주던지.
원하는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춰 구성을 짜고, 필요한 그림과 인터뷰를 따낸다.
소위 '악마의 편집'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만든 영상은 철저히 PD의 의도로 재단된 세상이었다.
3년 차가 되기 전까지, 나도 그런 PD였다.
출연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마이크를 들이밀었고,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질문을 반복했다. 그렇게 얻어낸 인터뷰를 조각내어 필요한 부분만 썼다.
정작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에게는 방송이 어떻게 나갔는지 알려주는 피드백도 하지 않은 채.
밤을 새우며 편집하던 어느 날, 이런 제작 방식에 회의감이 밀려왔다.
나조차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싫은데, 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출연을 강요하고 있을까.
내가 듣기 싫은 말을 남에게 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물론 월급쟁이 PD로서 만들어야만 하는 영상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기획하는 방송에서만큼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고민의 끝에서, 나는 방송을 만드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을 그만두고. 대신, 사내방송을 보는 직원들이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로 했다. 답을 정해놓고 떠먹여 주는 대신, 질문을 던지고 각자 답을 찾게 하는 방송.
물론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그들을 설득하며 '생각하는 방송'을 만들어 나갔다.
이런 시도를 위해 심리학을 통한 실험적인 부분을 가져왔다.
그리고 내 생각에 날개를 달아줄 전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2010년 2월, 대학가는 방학이라 학교를 비운 교수님들이 많아서
홈페이지에 있는 집무실에 전화를 해도 교수님들과 연락이 닿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촬영 마감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거의 포기 상태였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는 엉뚱한 방법을 떠올렸다.
'가장 가까운 대학 심리학과 교수님 명단을 보자. 그리고... 가나다순으로 전화를 돌리자!'
그렇게 첫 번째로 전화를 건 분이, 당시 아주대학교 심리학과에 계셨던 김경일 교수님이었다.
운명이었을까.
마침 연구실에 나와 계셨던 교수님은 내 다급한 섭외 요청에 너무나 흔쾌히 인터뷰를 허락해 주셨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교수님과의 인연은
'김 PD가 고릴라를 보지 못한 까닭은?', '빨간 풍선을 찾아서' 등 수많은 심리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교수님은 단순한 출연자를 넘어, 내 기획의 훌륭한 제안자가 되어 주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지심리학자로 너무나 유명해지셔서 섭외조차 어려운 분이 되셨지만,
'가나다순' 전화 한 통에 기꺼이 응해주셨던 그날의 친절을 나는 잊지 못한다.
이 자리를 빌려, 나의 어설펐던 변화에 기꺼이 함께 해 준
교수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힘을 얻어
나는 새로운 기획을 시작했다.
조용하고 근엄해 보이기까지 한 S전자의 사무실에
댄스곡이 아침에 흘러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