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습득 도전1
영어를 다시 시작하였다.
중고등학생 때 영어 공부를 좋아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호기심이 많기에 외국어는 신기했다. 학교 수업도 열심히 듣고 '굿모닝 팝스'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매일 카세트테입에 녹음해 들었다. 음악 듣기를 좋아했기에 '굿모닝 팝스'는 영어와 더 가까워지게 했다. 고등학교 때는 더 욕심을 내서 원어민 강사 수업도 들었다. 일부러 관광지에 찾아가서 처음보는 외국인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이런 행동이 외국인들에게는 무례한 행동인지 나이들어 깨달았다. 이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조던 영어에 미쳤네' 라며 놀렸다. (중고등학교 때 별명이 매일 농구를 하며 살아서 영광스럽게 마이클 조던이었다)
즐기면서 꾸준히 한 결과 성과도 있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부산 동아대에서 주최한 영어 말하기 대회를 나가기도 했다. 유창한 수준은 아니었기에 예선을 통과하면 다 주는 장려상을 받았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다는 것이 뿌듯했다.
하지만 고2이 되자 영어는 수능 시험을 위한 도구로 전략했다. 수능을 위한 영어 공부 수업이 문제라는 뻔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나름대로 나는 영어 수업과 별개로 즐기면서 팝송을 통해 영어를 공부했으니 말이다. 더 큰 이유는 '사회운동'이었다.
고2부터 나는 학교 수업 대신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빠리의 택시 운전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등 2000년도 초반 논객들의 책을 보며 '사회운동가'의 꿈을 꿨다. 꿈을 꾸는 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는 삶을 꿈꿨다는 게 문제였다.
사회운동가가 되기로 마음에 먹고 세상이 필요한 스펙보다 구조를 바꾸는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보니 지금까지 열심히 했던 영어 공부 또한 중요성을 잃게 되었다. 사회과학 서적 한 자를 더 읽는게 내 미래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그 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노동운동가 배성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이라 후회할 일을 만들고 만다.
20대 ~ 30대 중반까지 사회운동에 올인하면서 살았다. 그렇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식이나 외국어 공부 등은 등한시 했다. 오로지 사회과학과 인문학 책을 읽고 말하는 것에만 흥미가 있었다. 점점 영어와도 멀어졌고 외국인을 만나면 무턱대고 말을 걸던 영어에 미친 조던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순진하게 20대의 배성민은 영영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사는데 크게 지장 없을 거라고 확신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활동을 하면 할수록 일국에 머무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나라 사회운동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 라는 궁금증을 가기게 되었다. 무턱대고 영국 노동당 홈페이지와 미국 신문에 나온 노동운동가들의 소식을 읽었다.
하지만 19살 이후 손 놓았던 영어가 잘될리가 없었다. 수능 영어 2등급 받았지만 15년 뒤 나는 영어 뉴스기사 하나 읽지 못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2023년 새해가 되고 겸심했다. 올해는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지 라고 말이다.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하나 사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