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습득 도전 2
영어 도전기 2
영어 책을 구입하고 매일 30분씩 순서에 따라 공부했다.
책은 영어 회화에 필요한 꼭 필요한 문법에 대한 책이었다. 매일 30분씩 팟캐스트에 녹음된 방송을 듣고 따라 하며 6개월 정도 공부를 했다. 중고등학교 때와 같이 읽기를 위한 영어공부가 아니라 회화에 필요한 실용적 방법이라 스스로 만족을 하며 공부했다. 때론 바쁘다는 핑계로 일주일에 1~2번 밖에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6개월 연속공부를 했다.
나름 영어에 자신감을 붙였고 슬슬 외국인을 만나면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는 자만에 빠졌다. 내가 일하는 노동조합에 영어를 가르치는 원이민 강사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처음에는 내가 담당하지 않아 영어 강사들과 소통하는 일은 담당자의 몫이라 치부했다. 그래도 가끔 외국인 조합원과 마주치는 일이 있었다.
올해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외국인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화는 어려웠다. 문장 하나 완성하는 것조차 못했고 아는 단어를 가지고 소통하는 수준이었다. 해외여행 나가서 물건을 사기 위해 손짓 발짓 다해가며 소통하는 수준이었다. 참담했다. 지난 6개월 동안 그래도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자부했는데 실제 소통에서는 이야기가 들리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외국어가 한 번에 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소통할 일도 별로 없는데 천천히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영어를 빨리 배워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하반기부터 외국어 강사들 모임을 담당하게 되었다. 무턱대고 생각 없이 담당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영어를 배워야 했다. 앞이 캄캄했다.
그 후 영어를 잘한다는 유튜버 영상을 보고 공부의 방법을 바꿨다. 넷플릭스를 켜고 '퀸스 갬빗' 드라마를 시청했다. 영어 자막과 한글 자막을 동시에 보면서 눈으로 대화를 읽어나갔다. 그 시간만은 각을 잡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2주 정도 했다. 들리지 않는 영어를 반복해서 들었고 눈으로 읽어나가며 뜻을 이해했다. 또한 직접 써보는 게 효과가 있다는 유튜버의 이야기에 대사를 듣고 직접 써보기도 했다. 그야말로 영어를 각 잡고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는 내용도 조금씩 들렸고 모르는 단어는 표시해 가며 반복해서 암기하려고 했다. 잘 암기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보았다. 그러나 2주 정도 하니 생각보다 각을 잡고 공부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흥미가 늘지도 않고 공부를 해야 하니 집중도도 필요했다. 일이 많지 않은 날은 그래도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날은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3주 차부터는 매일 하지 않고 일주일에 2~3일만 공부했다.
업무 이외에 내가 하는 취미활동과 스포츠 등 하루 일과를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MBTI 'J(계획형)' 형이기에 빡빡했다. 영어 공부를 추가했지만 다른 활동보다 우선되지 않았다. 왜냐면 공부를 하는 건 집중도가 높아야 가능하다는 생각에 집중되지 않을 때는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한 달째가 되자 영어 공부에 흥미가 확 떨어졌다. 외국어 강사 조합원들과 소통은 카톡을 이용해 번역기를 돌리고 오프라인 모임 할 때는 영어를 잘하는 한국 조합원을 끼워서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반포기 상태로 이번 생에는 영어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반포기 상태에서 외국인 조합원이 '영어 수업'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영어를 배우고 싶은 한국인들을 모아서 진행하자고 했지만 지원자가 나 혼자 밖이라 1:1로 진행하기로 했다. 원어민과 수업에 기대가 컸다. 영어를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첫 수업은 미국의 노동운동가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영어에 '영'자도 모르는 내가 미국의 노동운동가의 이야기를 읽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강사는 나에게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게 자신의 수업스타일이라며 앞으로도 '사회운동'의 주제로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했다.
반신반의했다. 기초도 모르는데 내가 관심 갖는 주제를 배우는 게 가능할까 했다. 강사가 미리 보라고 준 영상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번에도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할까 불안했다.
첫 수업은 예상보다 수월했다. 아직 문장을 완성해서 말하지도 못했고 강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동일한 관심사로 이야기하다 보니 공부에 대한 의욕이 생겼다. 그리고 강사는 예전에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공부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고 했다. 추천해 주는 영상과 글을 틈날 때 편안한 자세로 보라고 했다. 영어 단어도 각 잡고 외우지 말고 시간 될 때 그냥 쓱 보라고 했다.
제대로 각을 잡고 공부를 해야 했던 나에게 강사의 방식은 충격이었다. 아마 강사는 영어를 공부하려 하지 말고 습득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공부와 습득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은 한국 사람들은 외국어 공부할 때 공부라고 생각한다. 모든 문장을 이해해야 하고 단어도 달달 외워야 제대로 배운다고 생각한다. 문장 구조를 하나하나 분석해서 이해할 때까지 반복한다. 하지만 우리의 외국어 실력은 몇몇을 제외하고 형편없다.
한국어를 익혔던 경험을 떠올라보았다. 처음부터 문법을 공부하지 않는다. 단지 부모님이 쓰는 이야기를 듣고 흉내 내며 언어를 배운다. 그 후 무슨 단어인지 모르지만 귀가 열리면 그제야 '엄마', '아빠' 등과 같은 단어를 말하기 시작한다. 언어가 습득된 후부터는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국어를 공부한다.
영어 공부 또한 습득의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 무슨 뜻인지 해석하는데 초점을 맞추면 귀를 깨우지 못한다. 우선 틈날 때마다 듣고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을 외국인 조합원을 만났을 때 해보면서 귀와 입을 깨워야 한다.
무작정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무자막으로 시청을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영어와 친해지는 기분은 들었다. 하지만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다. 계속 듣는다고 안들리는 내용이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3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