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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성민 Apr 19. 2024

누구보다 집요했던 홍세화 선생을 떠나보내며

故홍세화 선생님 추모글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홍세화샘을 처음 접한 것은 책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답답한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라는 고민만 하는 청소년이었다. 당시는 저항할 방법 그리고 이후를 도모할 방법도 몰랐다. 단지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무시하고 딴짓하는 게 저항인 줄 알았다. 


하지만 2003년 홍 샘의 강의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학벌없는사회에서 활동하시면서 학벌의 문제에 대해서 열강을 하셨다. 강의 후 어떤 청소년은 학벌주의 사회가 너무 답답하고 대학을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 시선과 부모님과 갈등이 두렵다고 했다. 홍 샘은 질문자에게 대학거부 운동에 나서라고 부추기기보다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말하셨다. 학생이 어느 곳에 있든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대학에 가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학벌없는사회 운동이 투철한 개인만 대학을 거부하는 운동이 아니라 누구든 힘을 모아 학벌 구조를 바꿔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에게 홍 샘은 저항하는 법을 모르는 청소년을 사회운동이라는 길을 안내한 분이다. 


그 후 홍 샘과 몇 번 강연과 노동당 활동을 통해서 만나는 일이 꽤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홍 샘은 따뜻하고 겸손하며 차분한 어르신이다.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지만 내가 받았던 강렬한 이미지는 집요함이다. 


샘은 늘 소박한자유인,  노동당 등 가입서를 가지고 다니셨다. 친구나 주변 지인들 만나면 꼭 들이 밀어 후원자로 만들려고 한다는 말씀 하셨다. 처음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다. 주변에 활동을 하는 관계도 있고 아닌 관계도 있는데 활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내라고 하면 관계가 깨질까 두려웠다. 그리고 내가 하는 활동이 주로 나를 빛내는데 초점이 맞춰있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한 집요함이 부족했다. 


시간이 지나고 샘의 행동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 줌과 같은 진보좌파 운동의 확장을 위해서는 생활 속의 조직화가 몸에 베여야 했다. 내가 바꾸고자 하는 세상을 혼자 생각하기보다는 주변에 널리 알리고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 부끄럽다고 이 작업을 피하면 우리는 영원한 소수파로 머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활동을 하면 할수록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내 생각이 바뀐 것을 꼭 홍 샘에게 티를 내고 싶었다. 2019년 노동당 부산시당 위원장 때 재정 마련을 위해 가방을 제작해 당원들에게 판매한 적이 있다. 때마침 서울에 회의가 있어 가방을 몇 개 들고 가서 주변 동지들에게 집요하게 가방을 팔았다. 홍샘도 당시 오셨는데 한 개 말고 두 개 사시라고 강매했다. 흔쾌히 5만 원짜리 한 장 꺼내시면서 "배 위원장 집요함에 한 개 가지고 안 되겠네요 두 개 주세요." 라고 하셨다. 덕분에 완판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뵈었을 때 '소박한 자유인' 가입을 집요하게 강권하셨다. 부산에서 KTX 타고 온 나에게 가입하면 책을 한 박스 주겠다고 하시며 집요하게 설득했다. 지난번 내가 가방을 샘에게 집요하게 팔아서 이렇게 다시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겁니까라고 농담을 던지며 가입서에 사인을 했다. 


홍 샘의 집요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홍 샘 강의엔 넓은 스펙트럼에 속하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홍 샘이 진보정당과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시면 꼭 청중 중 한 명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보통 강연자로 난감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고 넘어가기 일쑤인데 샘은 달랐다. 질문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이해시키기 위해 차분한 어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회자가 '시간이 좀 모자랍니다'라는 제스처 줘도 소용없었다. 선생님은 설득에 있어서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집요하게 좌파 사상과 활동에 해 이야기하셨다. 결국 그 자리에서는 설득이 잘되지 않지만 청중에게 충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셨다. 샘의 집요함을 볼 때마다 나는 저만큼 치열하게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는지에 대해 늘 반성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2023년 소박한 자유인 <현장의 힘> 북콘서트를 통해서였다. 내가 쓴 책을 선물했는데 샘은 자신의 모임에 나를 초대했다. 만나자 말자 하시는 말씀이 '배 동지 책 리뷰 못 써줘서 미안해요'였다. 

<현장의 힘> 출간하자 말자 홍 샘에게 선물하고 꼭 리뷰를 써달라고 부탁드렸다. 보통 동지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분인데 리뷰가 올라오지 않는 걸 보고 섭섭함보다 걱정이 되었다. 역시 샘은 몸이 조금 좋지 않다고 솔직히 털어놓으셨다. 그래도 북콘서트 자리를 끝까지 지키셨다. 당시 경외 하는 사람 앞에서 강연을 해야 해서 엄청 긴장했었는데 샘은 뭐가 그리 좋으신지 강의 내내 넌지시 웃으셨다. 뒤풀이 자리도 처음에는 못 가겠다고 하셨으나 배 동지 왔으니까 밥이라도 먹고 간다고 하셔서 간단하게 식사를 함께 했다. 샘은 만날 때마다 환대를 받는 것 같아 힘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연락을 한 번 했어야지 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홍세화 샘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슬픔과 아쉬움보다 그가 동지들과 함께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이다. 소박한 자유인을 시작하실 때 했던 말씀이 기억에 남아 마지막으로 옮겨 적는다. 


"내가 젊음 이들에게 완전한 자유인보다 소박한 자유인이 되라고 주문하는 것은 이 세상의 잡초를 모두 없애겠다는 큰 뜻을 품었다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잡초 뽑기조차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스스로 잡초가 되는 사람을 우리는 충분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혁명이니 진보정당 집권이니 등 거대한 목표보다 지금 당장 내가 딛고 있는 현장에서 무엇을 해나갈지 그리고 그 힘들을 어떻게 모아나갈지 고민해 봐야겠다.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ps. 부산은 책방감(부산광역시 연제구 교대로24번길 10 2층)에서 분향소를 마련했다고 한다. 오늘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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