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 중 사재기를 하지 않았던 5.18 광주 시민

광주를 오랜만에 다녀오며

by 배성민

20년 전 광주에 처음 갔을 때 윤상원 열사와 같이 앞장선 열사들의 이야기가 푹 빠졌었다. 윤상원은 전남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생계가 어려워 서울 주택은행에 취직했다. 독재 정권의 탄압을 모른체하고 살지 못해 그는 다시 광주에 돌아와 위장취업을 하여 노동해방을 위해 투신한다. 그리고 광주 항쟁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사망한다.


매년 광주를 오면 윤상원 열사를 생각하며 작은 것 하나 나누지 못하고 운동에 헌신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성찰했다.


노동운동가가 되어 다시 광주를 방문했을 때는 광주 항쟁 당시 시민들이 보여준 행동이 눈에 띄었다.


광주항쟁 당시 약탈이 일어나지 않았다. 항쟁기념관 해설사는 약탈보다 사재기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 시기 군부의 통제로 물자가 통제된 상태에서도 시민들은 사재기를 하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 쓰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눴다. 그리고 약탈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은 물건에 제값을 치르겠다는 확인서도 작성했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름답게만 포장된 광주 코뮌의 역사가 새롭게 다가왔다. 시민들은 당시 항쟁 당시에 서로 생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뭉쳤던 것이 아니었다. 항쟁을 통해 군부를 물리치고 그 이후 개개인의 삶에 대해서도 고려했던 것이다.


시민 모두 함께 싸운 광주항쟁을 통해 학생운동가들만 민주화운동에 참여한다는 한계를 뛰어넘었다. 80년대 이후 역사는 노동자, 농민 민중 모두가 함께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싸웠다.​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와 같이 언제라도 다시 민주주의는 위협받을 수 있다. 아니 각자의 현장에선 늘 위협받고 있다.


윤석열 탄핵 투쟁을 통해서 몸소 배운 것은 단결하여 직접행동해야 세상은 전진한다는 것이다. 영웅 같은 인간은 세상을 구할 수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항쟁이 이를 증명했다.


이제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쟁을 넘어 확장을 위해 함께 투쟁할 때다. 광주 항쟁 당시 사재기를 하지 않고 제값을 치렀던 시민들처럼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서로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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