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대의원대회 바꾸기

지루한 회의 의미 있게 만들기 6

by 배성민

사회운동 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대의원대회에 매년 참가했다. 전국단위 단체에서는 수백 명에서 수십 명이 한 자리에서 회의를 했다. 조직의 중요한 결정을 다루는 자리였기 때문에 분위기가 엄숙했다. 논쟁거리가 없는 회의는 의장이 일장 연설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첨예한 논쟁거리가 있는 날은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20년째 대의원대회에 참가하면서 의장이 일장 연설하는 것도 싫고, 합의 없는 치열한 논쟁도 싫었다. 특히 두 번째의 경우가 최악이다. 집행부에 대한 비판과 논쟁 자체는 필요하고 생산적이다. 각자 입장에 서서 한 치 앞도 양보하지 않는 논쟁이 소모적이다.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 각자의 입장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함께 가기 위해서는 타협도 필요하다. 하지만 늘 논쟁이 치열하게 붙으면 합의점이 없었다. 또한 치열한 논쟁이 시작되면 사소한 질문을 하고 싶었던 참가자들은 침묵을 지키게 된다. 늘 회의가 끝나면 똥 누러 갔다가 중간에 끊고 나오던 느낌 같이 찝찝했다.


올해 노조 대표자를 맡고 대의원대회를 3월에 진행했다. 특별한 이슈가 없어 내가 일장 연설을 하고 끝났다. 첫 대의원대회였기 때문에 순조롭게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늘 대의원대회가 이렇게 끝나면 집행부만 좋을게 뻔했다. 대의원이 회의에 참석하는 의미와 조직활동의 세부적인 부분도 챙겨가는 자리로 바꿔야 했다. 간부들과 치열한 논의 끝에 하반기 대의원대회는 조별로 진행하기로 했다.


조별 대의원대회를 결정까지 치열한 논쟁을 했다. 기존에 대의원대회는 대의원 각 개인이 안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질문과 토론을 전체 회의에서 하는 방식이다. 변화된 방식은 조별로 먼저 토론을 하고 전체 토론을 통해 안건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일부 간부들의 우려는 형식을 바꿔봤자 이야기하는 사람만 하는 것은 똑같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형식과 함께 내용을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방식은 두 가지로 나눠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회의 시작 전 사전 미팅을 진행하여 아이스브레이킹, 현장 보고, 회의규정, 안건 구성 설명 등 배치하여 참가자들이 미리 내용을 알게 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자신이 활동했던 현장 이야기와 회의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계획을 설명했다. 사전 미팅을 40분쯤 배치하고 대의원대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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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 토론을 진행하는 만큼 조장 역할이 중요했다. 대의원대회 때 늘 오피니언 역할을 맡고 있던 오래된 현장 간부들을 조장으로 배치했다. 조장들에게 미리 매뉴얼을 배포하여 진행 방향을 공유했다. 대회 1시간 전 현장에 모여 다시 한번 대회 방식에 대한 최종 점검을 했다. 예상대로 조장들은 대의원대회 내용 숙지가 잘되어 있었고 진행 방향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다.


대의원대회는 상집 간부들이 전체 안건에 대한 발제를 하고 조별 토론 시간을 부여했다. 조별 토론을 새롭게 도입했지만 이번 대회는 쟁점이 없기 때문에 별 이야기가 안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부적인 질문과 솔직한 의견이 많이 나왔다. 아마 조별 모임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할 이야기였다. 참가자들은 지엽적 내용까지 30명이 되는 자리에서 질문하기 주저했지만 소규모 조별 모임을 하니 쉽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현장 조직화를 위해서 법적인 소송에 휘말린 사건에 노조 희생자구제기금을 지출한 것에 대해 조합원들은 노조의 재정이 사용되는 만큼 법률 검토를 잘 받아 법을 어기지 말았어야 했다는 지적을 했다. 반면 베테랑 대의원들은 노조라는 게 법을 다 지켜가면서 할 수 없다며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의장인 나는 두 의견을 절충했다. 법률 검토도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하며 그럼에도 법을 넘나들며 바꾸는 것 또한 노조의 역할임을 강조했다.


기존 방식은 주로 문제제기 한 사람과 집행부가 합의점 없이 논쟁만 하다 끝이 났다. 하지만 조별 토론 방식을 통해 미리 문제를 고민했던 대의원들이 너도 나도 의견을 제출했다. 몇몇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절충안이 나왔다. 그 절충안에 대해서 처음 문제를 제기한 사람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의장이 문제제기를 방어하는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의견을 절충해 나가는 방식이 유효함을 느꼈다.


평소 대의원대회와 다르게 풍성한 논의를 통해 안건을 하나하나 통과시켰다. 각 조별로 미리 발표자를 정해 조장이 혼자 발표하는 것을 지양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의원들 중 평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잘 끼지 못했던 사람들이 논의에 치고 나왔다. 집단 지성을 모아가는 민주주의를 새로운 실험이 성공한 것만 같았다.


마지막 조별로 돌아가면서 후기를 나눴다. 앞서 글에 언급한 대로 기존 방법보다 조별 토론을 통해서 풍성한 논의를 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 절반 넘게 나왔다. 오피니언 리더들 외에도 대의원들 중 뛰어난 논변가들이 많았다. 반면 여전히 말을 꼭 해야 하는 방식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대의원도 있었다. 보통 대의원대회는 이야기만 듣고 귀가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없지만 조별 방식은 달랐다. 숙제로 남았다. 여전히 토론을 어려워 하는 대의원에게 다음에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었다.


또한 조별 토론을 하는 만큼 넓은 공간을 확보하여 서로 간의 소음도 줄여 집중도를 높이자는 의견과 안건이 양이 많아서 주요 포인트를 미리 정해두고 논의를 집중했으면 하는 의견도 나왔다.


아직 보완해야 할 내용은 많았지만, 그 보안점을 대의원 스스로 의견을 제출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보통 행사를 하고 평가는 간부들의 몫이다. 이번 조별 토론을 통해서는 스스로 참여했던 행사에 대한 평가를 남기는 의미가 있었다.


<지루한 회의 의미 있게 만들기> 연재 글을 통해서 회의를 바꾸는 것이 조직을 바꾸는 변화임을 실감한다. 조직이 운영자 의견에만 자지 우지 되지 않고 벌떡 거리는 물고기처럼 구성원들이 활동적이기 위해서는 회의를 바꿔야 한다.


PS. 노조법 2, 3조 개정이 임박한 만큼 민주노총 안대로 통과하기 위한 인증샷을 대의원들과 남겼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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