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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성민 Mar 26. 2023

좋은 관계에 첫걸음은 '인정'

아버지와 벚꽃놀이를 하다 깨달음을 배우다

아내가 얼마 전 운전면허증을 땄다.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전하니 아버지가 대뜸 "축하해. 합격기념 축하파티 해야지 김해로 한번 오시게!"라는 톡을 보냈다. 나는 운전면허증 땄다고 파티하면 도대체 1년에 파티를 얼마나 해야 한다며 툴툴거렸다. 거절할 수는 없어 주말에 가겠다고 했다.


주말에 늦잠을 반납하고 일찍 김해 부모님 댁에 넘어갔다. 아버지는 이미 축하파티 일정을 다 짜놓으셨다. 점심때 초밥 먹고 동네 벚꽃 축제가 있어 같이 놀고 저녁도 간단히 먹고 가는 일정이었다. 아내가 운전면허증 땄다고 하니 하루종일 칭찬하며 비행기를 태웠다.


"운전면허 그거 생각보다 쉬운 일 아니다. 정말 대단하고 운전면허증 있으면 조금 더 많은 곳에 가서 다양한 경험 할수 있다. 잘했다!"


점심을 함께 먹고 김해 북부동 벚꽃놀이 축제에 참가했다. 축제에 가면 다양한 부스에 물건과 음식을 가지고 판매하거나 홍보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님은 모든 부스를 다 방문하고 벚꽃을 구경할 생각이었다. 난 물건 홍보하는 부스를 왜 이렇게 자세히 보냐며 빨리 벚꽃이나 보러 가자고 보챘다.


하지만 부모님은 차 시음 부스에서는 차를 마시고, 음식 부스에서는 시식을 하고, 수제가공품 액세서리 부스에서는 직접 착용해 보는 등 벚꽃보다 부스를 보러 온 사람 같았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마음에 안 들면 대충 보고 인사 없이 휘리릭 간다.


아버지는 다른 태도를 보여줬다. 차 부스에서 시음 후 맛있다며 칭찬하며 비행기를 태웠다. 당장 사고 싶지만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아 못 산다는 빈말도 함께 말이다. (알고 보니 살 생각은 없었고 고생하는 사람 격려차 했던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네축제를 위해 하루종일 준비하신다고 고생 많다며 격려도 해주었다.


아버지는 모든 부스 운영자들에게 물건 잘 봤다며 고생이 많다는 인사를 빠지지 않고 하셨다. 또한 동네 아는 사람들이 축제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자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햇빛이 강해 눈을 뜨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인정이 넘쳐서 흘러내릴 정도였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 조금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가게에 사지도 않는 물건을 상세히 물어보며 점원과 거리낌 없이 지내는 모습이 안 살 거 왜 이렇게 까지 하시나 싶었다. 그리고 음식점에서도 가게 직원들이 바쁜데 잡아두고 음식이 너무 맛있다며 비행기를 태웠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서 이런 모습을 보니 오지랖이 아니라 고생하는 노동자와 주변 사람을 인정하는 태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힘들게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작은 칭찬은 힘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는 동네 가게에서 친절한 단골손님으로 직원에게 늘 환대를 받았다.


평소 아버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잘 끼지 못하신다. 스포츠, 음식, 트로트 이야기 이외엔 말씀이 없으시다. 겉보기와 달리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다른 한국 사회 남자 어른과 같이 빰을 비비며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하진 못하신다. 그리고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도 잘 먹지도 않으신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고 주변사람들과 관계가 좋았다. 어릴 적 김해를 벗어나 여행을 가도 아버지 지인을 만나는 일이 흔했다. 도대체 인맥이 어느 정도가 되길래 여행지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나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결혼식 때도 축의금 명부를 보니 도대체 경조사를 얼마나 많이 다니셨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조금을 냈는지 놀라웠다.


최근 지인들에게 "배성민 드라이하고 인정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내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정이 없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코로나19 이후 나 또한 사람들과 모임을 줄이고 술을 마시는 일을 자주 하지 않게 되었다. 일을 할 때도 일을 잘 해내기 위한 노력이 먼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후순위였다. 최근 한계에 봉착해서 어떻게 하면 일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 중이다. 유튜브를 보니 사람들을 '인정' 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아버지를 보니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아내의 운전면허 축하 파티날에도 주인공도 아닌 나에게 "배작가, 사하구에서 북토크 하셨데? 멋지더라!" 라며 첫인사를 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축하파티가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아버지의 인정이 넘치는 모습에 대해 극찬을 했다. 그리고 배운 것은 바로 써먹기 위해서 김해미술협회에 분과장이 된 어머니에게 "박 분과장님 요즘 분과장 되더니 스타일이 더 세련되지셨네!"라고 말했다.


벚꽃놀이 팔씨름 부스에서 아버지와 팔씨름을 했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시작하자 말자 졌다. 60대 중반을 넘어서지만 힘은 30대보다 좋았다.


"건강히 오래오래 함께 합시다. 오늘도 하나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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