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심리학 교재에서 본 칼 융의 문장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온전한 사람이란 도대체 뭐지?
이후의 삶은 '온전한'이란 단어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2018년, 퇴사를 하기로 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들 했는데.
예닐곱 번째쯤 되는 퇴사는 어려웠다.
5년 이상 한 사무실로 출근을 한 일. 이 일은 내 인생 최장수 근면했던 기록이기도 하다. 곳곳에는 나를 많이도 재촉하고, 성장시켰던 지난날의 흔적이 가득했다.
언제나 아침 9시부터 나의 공간이었던 1개의 책상. 이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물건을 채워놓을 곳. 후임자를 구했고, 그녀를 위해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다 놓은 슬리퍼가 보일 때, 나는 겨우내 신었던 갈색 털 슬리퍼를 버렸다.
때마침 봄이 오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쓰던 소지품은 대부분 버렸다. 그리고 빈손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5년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 2년을 공부한 대학원 학자 대출금과 맞먹었다.
빚 청산과 잠시 동안의 자유. 그 사이에서 나는 고민했다.
여느 퇴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직과 쉼 사이 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은행 잔고와 매달 나가야 하는 통신비 그리고 최소한의 품위 유지비... 그러면 다시 이직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나는 돈이라는 요소를 극복, 아니 못 본 체하고 쉼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퇴사 이후, 표시할 일이 없어 달력은 2018년 3월에 멈춰있었다. 한국 나이 마지막 30대의 3월. 3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친구 같고, 10년째 사귀면서도 여전히 좋았다. 그러나 3은 나를 떠나려 한다. 같이 퇴사하는 30대 초반의 동료 J와 나는 말 그대로 처지가 달랐다. 그녀는 3과 한창 연애 중이고 나는 헤어지는 중이었다.
2018년 4월, J와 동반으로 퇴사 여행을 다녀온 직후, 왼쪽 아랫배에 수포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대상포진이었다. 39살에 대상포진이라니. 덕분에 나는 매일 놀고먹으며 휴양을 즐겼다. 아픈 배를 부여잡으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마음껏 아파할 수 있다는 것은 ‘온전한’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2018년 9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다.
“우리는 이제 20대가 아니잖아. 앞으로 뭐 먹고살지 걱정할 나이라고”
20대에 처음 만난 그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현실이 무서워지는 나이. 나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현실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나를 눌렀다.
퇴사, 대상포진, 실연. 아픔의 종합세트를 쓰리 콤보 상실로 경험한 나는 따뜻한 지혜와 냉철한 이성을 머릿속에서 쫓아냈다. 빈자리는 화, 분노, 절망, 자책의 감정이 차지했다. 나는 기꺼이 그 자리를 내주었다. 울면서 밥을 먹는 날이 이어졌다.
2019년 2월.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 내 나이 40.
마흔.
“40살입니다.”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직업도, 돈도 없는 40살의 나에게는 출구가 필요했다.
외국에 가면 39살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20대로 되돌아갈 물리적인 방법은 없지만 39살은 가능했다.
내가 외국에 나가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
다시 39살을 살아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