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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 Oct 11. 2016

sns 시대에서 연애의 기억과 공생하기

삭제가 주는 자유: 망각도 항마력도, 삭제에서 시작한다



            사실 sns 염탐은 재밌다.

그리고 난 지금도 주기적으로 그들의 sns를 보곤 한다. 애틋했을 때는 흔적 하나라도 더 쫓고 싶기도 했고, 습관처럼 보기도 하고, 잘 살아 보이면 잘 사는대로 욕하는게 재밌고, 망해가고 있으면 그거대로 흉보는게 재밌다. 세상에나 인터넷 없던 시절에는 얼마나 재미 없고 아름다웠을까. 되씹을 기억이라고는 주고 받은 편지들과 사진들 뿐일테니 기억은 참으로들 애틋하고 세상은 지금보다 30%는 아름다웠을게다.


1. sns, 우린 이미 생동하는 지옥에 놓여있다

이제 더이상 정보 차단은 불가능하다.

제목이 '삭제가 준 자유'이지만 실질적으로 완벽한 삭제는 이미 포기해야한다. 접속 가능한 정보가 너무 많고, 내 선에서 차단해도 친구의 좋아요로 공유로 불쑥 불쑥 내 세계에 심장이 쿵하게 갑자기 상대의 정보가 들어온다. 우린 이미 망한 것이다.

올라오는 온갖 사진들의 배경을 확대해보며 거기가 어딘지 추측하고, 뉴페이스의 댓글을 보며 건너가고 건너가 사진을 확인한다. 페이스북 접속 시간을 살펴보며 '오늘은 술을 먹었겠군' '오늘은 일찍 자는군' 추측하고, 남이 찍어줄 수밖에 없는 각도에서, 친구끼리는 절대 안갈 것 같은 식당에서 찍힌 사진을 보며 새로운 연인이 생겼음을 누구보다 빨리 파악하게 되기도 한다. 갑자기 예뻐진 모습에 새벽에 전화기를 불쑥 들게도 하고, 때론 sns를 통한 폭로전과 테러 등의 불상사가 일어나기도한다.

조선시대였다면 생기지 않았을 온갖 종류의 미련과 고뇌를 우리는 정보와 맞바꾼 것이다.

그뿐이랴 끝도 없다.


구애인이 새로운 애인을 만나고 내가 소개해준 곳에서 신나는 데이트들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내가 너의 성장의 발판이 된 것에 매우 분한 생각이 들 수 있다. 하나둘씩 결혼도 할테고 아이도 낳을테고, 만약 본인이 결혼을 원하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면 상대가 못생긴 배우자와 촌스럽게 찍은 웨딩사진들 포스팅과 그를 똑닮아 하나도 안귀엽게 생긴 애기 사진에도 약이 오를 수도 있다. 여전히 내가 찍어준 사진 프로필로 해놓고 그 계정으로 결혼사진 올리는 모습에 기분 더러울 수 있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거나, 사업이 잘 되거나, 새 앨범이 대박난 연인을 보며 축하하는 마음 한켠에는 씁쓸한 마음이 밀려올 수도 있다.


내가 지워진 곳이 무언가로 빠르게 채워져가는 것들이 보기 싫어도 보이는 건, 당연한 세상의 이치이지만 속상하다. 심지어 상대가 밉고 싫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면 여러모로 더욱. 내겐 이제 우습고 짜증나는 사람이라도 어느 곳에선 또 다시 사랑받고 존경받음을 새삼 보게 되는건 sns의 또 다른 저주 중 하나일 것 같다.

알고싶지 않아!!!!


2. 잠깐 상식: 일단 알고는 가자 인터넷 염탐법

제일 어려운 상대가 아예 sns를 안하는 사람.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안했던 사람. 하지만 드물다. 대부분은 글 한 자라도 남아있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대학시절 팀플 까페에 남아있던 멍텅구리 같은 레포트라도 하나 건질 수 있다.

1) 페이스북 메신저 활용


페이스북의 경우 메신저에 들어가면 상단에 일단 최종 접속시간이 뜬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기본 정보다. 꿀은 따로 있다.

마지막 대화가 내 대화로 끝났을 경우, 마지막에 내가 쓴 문장을 길게 누르면 상대가 그 대화를 다시 읽었을 때 읽은 시간이 뜬다. 예를 들어 우리가 대화한건 2016년 10월 2일 오후 3시인데 상대가 그 대화를 다음날 새벽 1시에 또 읽으면 읽음 시간이 '10월 4일 am 1 읽음' 으로 뜨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상대가 나와의 대화를 읽고 또 읽는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면 이모티콘 하나만 보내더라도 대화를 내 말로 마무리 지어놓으면 된다.

*장단점: 온갖 쿨한척하고 사라졌던 상대가 매일 새벽마다 나와의 대화를 되새김질 하는 흔적을 발견하고 매우 꼬시다 느낄 수 있지만, 전혀 읽지 않는 걸 보며 되려 상실감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상대가 자주 읽는다해서 그게 미련이라는 보장도 없으며 꼬수운 것은 잠깐이고 긴 허무만이 남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던 당신이 어떤 메신저 대화를 되새김질을 했다는걸, 마찬가지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상대가 이제 알아챌 것이다.


볼테면 보라고 하세요 뭐 죄 지었습니까!

2) 구글링


구글은 무섭다. 본인도 까먹은 본인의 신상 관련 정보를 구글은 기억하고 있다. 구글링을 처음 알게 된건 대학 시절 소개팅 때였는데, 그때 만난 남자가 대뜸 날 구글링 해봤더니 눈썹반영구화장 사이트에 질문 올린게 나오더라고 깔깔거릴 때 구글의 무서움을 느꼈고 그 남자는 역겨웠다.


상대의 이름만으로는 나처럼 이상한 이름의 뮤지션이 아닌 이상 별다른 정보를 찾기 어렵다.


이를 대비해 이름+전화번호, 이름+학교 또는 학과, 이름+주민번호, 이름+학번, 자주 쓰는 아이디(추천)나 이메일 주소, 등의 조합으로 검색을 해보다보면 의외의 정보가 나올 수 있다. 동아리 시절 흉하게 머리 기르고 기타 치던 사진, 혼자 몰래 일기 쓰던 트위터 계정, 대학교 입학 때 합격자 까페에 쓴 백문백답 등이 내가 찾아냈던 귀여운 정보의 일부.


자 어서 가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자

+] 난 이미 포기했다



3. sns는 현실이자 현실이 아니다: 상대는 대체로 '아무 생각이 없다'

sns 염탐으로 그저 웃기기만 하다면 차단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계속 속상하다면 결국 차단은 필요하다.


물론 어렵겠죠.


그래서 제가 당연하지만 절실한 이야기를 좀 늘어놓으려 합니다.

사실 어떤 특정 게시물을 올릴 때 상대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글 하나 사진 한장 올리고 지우고에 이걸 읽는 상대를, 그 상대가 아무리 한때 사랑했고 중했던 상대라도 의식하는 건 잠깐이고 내가 아닌 남의 심리 상태 하나하나까지 매번 생각하며 게시물을 관리하지 않는다. 상대는 아무 생각 없이 올리는 것들에 오로지 어떤 생각을 갖고 보고있는 나만이 궁금하고 괴로워질 뿐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 정보의 최종확인은 현실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난 현실에서 이제 상대와 접점이 없으니 정보에 대해 불완전한(그리고 보통 부정적인) 나의 판단만 남을 수밖에 없다, 혹여 상대가 진짜 날 '저격해' 올리는 특정 게시물이 있더라도 그것을 현실에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고민할수록 병이 깊어질 뿐이다. 이거 힘들다.

귀여운 예시로 상대가 엄마랑 피자집 갔다가 어떤 설명도 없이 피자 사진 하나만 덜렁 올려놓았어도, 내 선에선 대관절 그 피자를 누구랑 먹었는지 알 수 없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아무래도 새 애인이랑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너 피자 누구랑 먹었니?" 라고 문자를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난 "너 어제 그 파스타 누구랑 먹었어? 거기 내 단골집이니 가지마 기분 더러워" 하고 문자를 보냈었고 씹혔다. 깔깔)

아무리 "이제 누구랑 뭘 먹든 무슨 상관이냐" 라고 생각해보아도 한번 꽂히면 불편한건 불편한거고, 상상은 멈추지 않는다. 이건 비단 연애가 끝난 이후 뿐 아니라 ing 기간일 때도 과도한 sns 정보 파악이 독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온갖 찝찝한 정보들이 다 나올 수 있고, 그에 대해 하나하나 묻는 건 스토커 같아 보이며 설령 물어본다쳐도 시원한 설명을 듣기 어려울 때도 태반, 무엇보다 사생활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영역이다. 이쯤되면 '진실'이란 거 개별 사건들의 헐거운 접착 사이 어딘가를 떠다니는 개념이고, 상대의 말과 나의 뇌로만 파악해야 되는 영원한 주관적 개념이기에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것이다.


4. 일단 차단해보면 차단하지 않고도 평화로워질 수 있다.

sns 정보에 파닥파닥 울고 웃는 날 보며 친구들은 제발 좀 그만 보라고 날 말렸고, 비슷한 sns 중독자 친구들 중 득도한 몇 몇은 빠른 차단으로 모든 정보를 일찌기 원천봉쇄해 평화의 세계로 도망치는 것에 도가 텄다. 심지어 그중에는 연애가 시작된 순간부터 상대의 sns를 차단하는 독한 녀석들도 있다.

나 또한 손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안그러다 내가 죽겠다는 심정에 밑져야 본전으로 차단, 차단, 그의 친구들까지 차단한 뒤 얼마 안지나 기적처럼 찾아오던 평화를 맛보며 이래서들 다 눈 감고 귀 막으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맨날 숨어버리던 족속들의 마음마저 조금 이해될 정도.

왠지 마지막 실낱같은 인연의 끈마저 끊어버리는 것 같고, 너무 모진 모습 보이면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고, 그나마 이런 정보라도 쥐고 있어야 할 것 같고, 차단하면 더 괴로울 것만 같고 차단한다고 하나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만 같으며, 혹은 미련 따위 없어도 그냥 설명할 수 없는 그 염탐욕구에 쉬이 차단이 어렵다.

하지만 차단은 무조건 평화이다.


당장은 어렵지만, 인간의 감각은 때론 허무하리만치 단순하다. 임 소식 알 수 없어도 임을 그리워하던 우리 선조들과 우린 다르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특정 정보를 원천 차단하고 계속해서 다른 정보를 접하면 거짓말 같은 망각의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처음 2주 어렵지만 정확한 시간의 정비례로 기억은 무뎌지고 울고 웃던 댓글과 사진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온다. 그리고 이걸 몇 번 경험해보다보면 결국 sns의 모습이란거,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하나의 가상세계라는 인식이 내게 완전히 박혀 뭘 봐도 웃고 넘어갈 정신력까지 가질 수 있게된다.



5. sns 시대에서 연애하기: 무얼 봐도 그리 속상하지 않을 마음의 근육을 기르자


이 시대는 악의 시대이다. 사방에 정보가 넘치고 모든 것이 스트레스 요소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에 긍정할 수 있고, 생에 '감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 이루신 훌륭한 정신력의 소유자들께서는 sns에 울고 웃는 우리를 어리석다 꾸짖지만 악의 시대에 우리는 한낱 연약한 중생일 뿐이다.


유니텔 미니홈피 염탐하고 싸이월드에서 나랑 동시에 만나고 있던 여자의 비밀방명록 글을 확인하고 꽈실에서 정신 놓았던 날들을 지나 페북과 트위터에서 테러 당해 경찰 신고 소동까지 겪으며 격동의 '인터넷 연애' 20년을 보냈다. 포맷이 바뀌어가며 스트레스 요소도 진화발전 해오고 있지만 우리의 삶 또한 계속되어간다. 그 속에서 우린 잡초처럼 끈질기에 살아야한다. 이왕이면 행복한 마음으로.



sns를 보며 구애인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나만 비참한 것 같은 마음이 드는건 그들이 진짜 행복하고 내가 진짜 비참해서가 아니라 못난 정보 과잉탓이다. sns만으로는 절대 누구의 행복도 완벽히 짐작할 수 없으며, 역시 누구의 불행도 완벽히 짐작할 수 없다.


해보지도 않고 무심함이 생긴다면 그건 그냥 쿨병이리라. 달관이란 닳고 닳은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실컷 염탐할 만큼 염탐해보자. 실컷 상상하고 울고 웃어보자. 그리고 과감히 모든 걸 차단해보자. 돌고 도는 바람개비 속에서 어느날 무얼 봐도 비웃고 넘어가고 편히 잠잘 수 있는 날 만날 것이다. 진짜 생은 인터넷이 아니라 여기 살아 숨쉬며 아등바등 살고 있는 나니까.





다음주에는 애인에게서 엄마를 찾는 애정결핍자들을 낱낱이 분석해보는 시간, <애정결핍자들의 A-Z까지: 엄마같은 사랑을 찾는 이들의 악함 > 이 이어집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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