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뉴욕이 아니고 우리는 사만다가 아니다
들어가며
지난주 1탄을 보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네 물론 그렇지요.
이 연재를 시작하던 프롤로그에서도 그 점에 대해서 자학했구요
더불어 다음주에는 스스로에 대한 얘기만 한다고 마지막에 따로 칸막이(?)까지 쳐서 예고글 써놨는데 끝까지 읽기에는 제 글이 너무 지루하셨나봐요.
그래서 기다리셨던(?) 2탄 시작합니다.
이곳은 뉴우욕이 아니고 우리는 사만다가 아니다.
대부분 이 불명확한 관계를 불안해하고 좋지 않게는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금 이 관계를 주도하고 있는 건 나 자신이라고 여긴다. 이 밥 안먹어도 쌩쌩한 '자존심'은이 관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면 내가 '이용 당하는 사람'이 돼버린다고 여기며 생각을 틀어버리고 마는데 나의 경우 그 과정은 아래와 같았다.
아무리 따져봐도 그 사람의 말의 앞뒤가 안맞는다 -> 불안하고 화가난다 -> 아무래도 내가 '이용 당한다는' 생각에 작아진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작아짐을 느끼는 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급의 놀라운 정신승리가 일어난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거고 난 언제든 이 관계를 끝낼 수 있다 -> 단지 지금은 끝낼 때가 아니다. 아직 그 사람을 단정지을 수 없고 상처가 많은 사람이니 내가 더 사랑을 줘보겠다 -> 나는 자비로운 사랑의 신이다. 그리고 난 지금 행복하다. 자야지
또는
그러나 내가 선택한거고 난 언제든 이 관계를 끝낼 수 있다 -> 딱히 만날 다른 사람도 없고 나도 별로 마음이 헌신적인건 아니고 그냥 몸 즐거우니 됐다.
그러면서 동시에 갑자기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별별 연애 사례를 찾아내고 이렇게 별 인간이 다 있으니 우리도 그런 많은 사랑의 형태 중 하나일 거라고 끼워맞춘다
타임머신 어딨나요?
망치는요?
저때로 가서 제 뒤통수 때리게요
언제부터 그렇게 자비로웠다고. 엄마한테 소리나 지르지마..
언제부터 그렇게 자유연애주의자였다고. 남자친구나 쥐잡듯 잡지마
물론 위에 두 결론이 '진짜'인 사람이라면 go on 일지어다.
여기서 진짜라함은 자신의 천성과 맞아 몸과 마음이 진정 편안함을 말한다. 윤리적, 도덕적, 영혼의 건강함 관련 문제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말할 문제는 아니기에.
그럼 과연 나는 어떤 인간이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들을 나도 똑같이 생각하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오히려 모두가 "OO는 이랬대" 라고 하면 되려 의심할 때도 많았고, 똥인지 된장인지 반드시 내 입으로 먹어보지 않으면 믿지 않았다. 결국 그 결과가 모두가 말하던 그것이라 할 지라도 내가 직접 경험해보고나서야 동의했다.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고 보살피는 것이라 여겼고, 연애에서의 성역할을 너무나 불합리하다고 여겨 남자 일 여자 일 가리지 않았다. 대가를 바라고 잘해주는 것은 진정한 잘해줌이 아니라 믿어 내 마음 끌리는대로 했고, 합리적인 선택과 따뜻한 선택 모두에 부합되는 선택을 위해 늘 고민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위의 상황들과 전혀 반대의 선택과 경험을 할 때 또한 있었다.
단지 그 모습이 구려보여서 내가 인정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나만 잘해주는게 지치고 억울해서 분노에 터져 허우적거렸고
내 피로와 억울함과 슬픔을 알아주지 않고 공감하지 않는 상대에게 징징거릴 깜냥도 못돼 주눅만 들었다.
페이스북에서 멋있는 애인과 재미난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못본척했고
남들의 '은근한 인정'이 없고 가오 떨어져 보이는게 죽도록 굴욕스럽고 싫었다.
어둑해진 얼굴로 거울 앞에 섰다가 내 외모의 빈곤과 주머니의 빈곤, 영혼은 더 빈곤함에 밤새 울었으며
매번 괴로워하며 매번 똑같이 어리석은 선택을 또 하고
집에서는 한심한 인간, 친구들은 혀를 내두르는 싸이코, 불쌍한 자존심 하나만 남아서 '난 후회하지 않아!' 라고 외칠 뿐이었다.
두 가지 모두 나였다.
단지 '이상한 만남'을 할 때는 유독 '멋있(어 보이)는 나'만 부각시키고,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 자위하며 그 만남을 긍정했다.
여자라고 '떠받들어지기만 하는' 건 나도 역겹고 싫다 해서 사랑이 하고 싶지 않았던 거 아닌데.
금은보화 명품백 필요없다 해서 만날 시간 마저도 내 뜻대로 하나 못하던 걸 원한 건 아닌데.
너의 원하는 것을 존중하지만
나도 원하는 것이 있고
맨날 만나자는 거 아니지만
만남 자체에 의구심과 비참함까지 가져야 하는 건 아닌데.
뻔한 연애가 싫다해서
미친연애를 하고픈 건 아닌데.
그때의 난 어떻게든 얼굴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강아지 같은 마음과, 비참해지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절박함이 블라인드가 되어 이 지극히 당연한 마음마저 탁 닫고 컴컴하게 외면했다.
두 달까진 나도 재밌었다. '무겁지'않고 불안하지 않고 바라는 것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었다.
근데 두 달여 지나니 우울해졌다.
이런 내가 싫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난 "너도 알고 만났잖아" 앞에서 "그래 나도 재밌었으니..." 하고 '두 달 동안 즐겼던 나' 만 생각하며 자책하고 주눅들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나의 선택이기에 즐기던지
이 모든 것이 결국 나의 선택이기에 나를 미워하던지
이 두 가지 말고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날은 나를 보부아르로 생각해 세상에 다시 없을 존중을 하는 지적 만남 중이라 여겼고
어느날은 나를 사만다고 생각해
세상에 다시 없을 뉴욕의 자유연애자라고 생각했다.
그들도 '평범하고 고달픈' 인생살이에 비틀거릴 때도 있었음을 외면하고 생존을 핑계로 내가 만든 역할극에 심취했다.
그땐 재밌었어도 지금은 우울하고 괴롭다면 괴로운거다.
멋있고자시고를 생각하기 전에 내 감정에 솔직해져야 아픔도 건강하게 지나가게 할 수 있고,
결국 찌질이 같아 보이던 내 모습까지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게 차라리 멋진 것이란걸, 두달의 즐거움으로 지금의 내 감정을 자책하고 부정할 필요 없다는 걸
이 바보는 몰랐다.
물론 괜찮으니 괜찮기도 했다.
하지만 안괜찮기도 했다.
그리고 안괜찮음이 괜찮음을 진작 넘어섰음에도 괜찮다 믿었다.
알량한 내 자존심이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하지만 거기 '불쌍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저 상반돼보이는 여러 모습이 한 몸에 존재하는 내가 있을 뿐이었고
여기 그리 악하지는 않은 우리네 개돼지들 모두 소나무 같이 한결같지 못하다.
부족하고 모순적이지만 괜찮아지려 애쓰고 살 뿐이다.
솔직하지 못한 만남에서 누구도 '멋있지 않다'
비겁한 누군가와 허세가 있던 누군가가 있었을 뿐이고 각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치졸한 방법을 적극 사용했다.
하지만 여기서 "너도 잘못했고 나도 잘못했다"는 훈훈한 양비론으로 마무리짓고 싶진 않다.
이 연재는 어디까지나 '편협한 연애 생존기'이고 난 나와 비슷한 동지들이 연애에서 좀 더 재미나고 즐겁길 바라기에.
조심하자.
당신이 만나는 사람은 단지 지금 상처로 당신과 오피셜한 관계를 맺기 힘들다 하겠지만
사실 그 사람은 지금 당신같은 사람이 여럿이거나,
아니면 늘 이런식으로 사람을 만나거나,
아니면 멀쩡한 애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밤마다 피곤하다고 전화기를 꺼놓는게 진짜 애인과의 데이트 시간일 수도 있고
주말마다 가는 출장이 지방에 있는 약혼자를 만나러 가는 길일 수도 있다.
그 정도까지 사실을 목격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보게될 일이 있다.
당신에게는 '사랑에 대한 불신뢰, 바쁨, 인생 피로'를 핑계삼아 피했던 많은 '공식적' 만남을
어느날 별 달라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꽁냥꽁냥 뉘집 연애보다 더 닭살돋게 하고 있는 것이 그것
그 장면을 만약 관계 청산 직후 마음이 좋지 않을 때 보게 되거나
내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있는 시기에 보게 됐을 때 불쾌감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것은 흔히들 말하는 배신에 대한 슬픔도 무엇도 아니다.
이 뻔한 장난에 혼자 소설을 쓰던 내 자신에 대한 절망과 분노이다.
그 사람의 '연애놀이'에 나같이 '생각많은 척'하던 인간이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자기 혐오이다.
지키고 싶고 보존하고 싶었던 나의 좋은점이 '이용당하기 좋은 소재'가 됐었단 생각에서 오는 인생의 허탈함이다.
사실 그 불쾌함 마저도 또 지나갈 것이고, 엎어진 물 주워 담을 수 없고, 여러분의 좋은점 따뜻한 마음은 어디 안가고, 우리는 반드시 행복해진다.
못믿겠다면 연재 끝까지 읽어보시라.
그러나 모오든걸 알아도 선택이 어찌 그리 쉽겠냐.
선택하지 못해서 내 인생이 이미 여기까지 밀려왔다 좌절할지라도
그래도, 혹시나, 혹시나 자꾸만 망설여지고 불투명해보일지라도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이 두 편의 연재의 구절구절이 아무리 봐도 다 그 사람 같고 다 자신의 이야기 같다면
다 필요 없습니다.
일단 튀세요.
21세기라 스마트폰에, sns에 자꾸만 자꾸만 정보가 밀려오고
싫어도 연락 끊기 너무 어렵다구요?
그런 당신을 위해 다음주,
<삭제가 주는 자유: 사이버 공간에 떠도는 구애인 망령을 지우지 못한 이들에게>가 이어집니다.
공유한다고 여러분이 이 글의 주인공이라 손가락질 받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