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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 Sep 29. 2016

약속되지 않은 관계의 지저분한 지점 1탄

이곳은 파리가 아니고 그는 에단호크가 아니다


박제말고 공유하는 당신은 센스쟁이


1. 사귀자는 말에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개소리

그러니까 썸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한 애매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던 어느날, 대로변(특히 홍대)에선 손 잡지 않고 걷고 캄캄한 곳에서만 애인이고 여보였던, 헤어지면 또 언제 그랬냐는듯 연락 하나 하기도 눈치보이던 그러한 때가 지속되다 우중충한 얼굴로 결국 뱉어냈다.

"우리 관계 뭐야?"

피곤한듯한 얼굴. 이내 난 안그래도 피곤하고 바쁜 사람에게 부담 주는 소리를 했다는 생각에 쩔쩔매고, 이러다 이마저도 보는게 힘들어질까봐 걱정되고, 무엇보다 내가 '구질구질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겁이났다.

"난 이제 사랑을 안믿어. 예전에 나라면 너랑 정말 재미나게 연애하고 같이 여기저기 다니고 했겠지만 지금 난 사랑을 안믿고 그래서 사귈 수 없어"

네네 지금 주먹 올라가는 분들 번호표 뽑고 줄 서세요.

바로 이 '난 사랑을 안믿어'와 자매품

"연애는 이제 하고 싶지 않아"
"연애를 하게 되면 서로 구속하고 더 좋지 않아 지금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등이 있구요, 옵션으로 실패한 예전연애 핑계, 파혼, 이혼 또는 가정 환경에서 받은 상처 운운이 있습니다.

이 에로 비디오에나 나올 3류 이야기가 당시에 놀랍도록 진지하게 오갔고, 다 클만큼 다 큰 어른들 사이에서 오고 간 대화입니다.  저 말에 분하고 화나도 심층에서는  '그가 사랑을 믿게 할 순 없을까...' 생각하고, 친구들에게 "오빠가 이상하단거 알아, 하지만 상처가 많아" 라고 열심히 변호하던게 나이올시다.


2. 팩트 폭력: 너도 안사귈 거 알고 만났잖아

팩트폭력이 되는 말의 문제가 뭐냐면 그 문장 하나만 떼놓고 볼 땐 틀린말이 아니지만 그 말이 언제, 어디에서 내뱉어지는지에 따라서 명백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작이 상호 합의였다해도 우린 로보트가 아니고 이건 생동하는 사람 사이에 관계이기에 언제든 마음과 상황이 변할 수 있다. 그건 계약위반도 뭣도 아니며 차라리 비극에 가깝다.


'너도 안사귈 거 알고 만났는데 이제 와 왜 나만 개새끼 취급하냐'는 논리가 누군가에게 팩트가 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대단히 상처받았다는 것 또한 팩트이다. 그토록 팩트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한가지 팩트만 보나. 그건 사실 팩트를 중시하는게 아니라 그냥 나만 개새끼된 것 같은게 불쾌하고 분한거잖아.

여기서 상대를 구질구질한 사람 취급하는 건 당장에 자기방어는 돼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선 그냥 치사한 것임을 이제 인정하자.
쿨한척 말자.
막 자유연애 하고 바람같이 사는 뮤지션처럼 되고 싶으면, 관계 '피곤해지면' 도망부터 칠 게 아니라 얼굴과 연주력부터 지미 페이지가 돼보는건 어떨까. 그릇이 작으면 어떠랴, 답게 살아야지. 그릇도 작으면서 큰그릇인척하고, 그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을 작은그릇 취급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는 큰그릇이라 자위하는 그릇따위 깨져버리는게 낫다.

3. 어른다움의 시작은 세상만사 피곤한척이 아닌 공감능력

"내가 개새끼입니다" 하고 빌라는게 아니다. 사실 인간끼리 끌리고 만난다해서 무조건 '오피셜'한 관계를 가져야 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건 서로간의 마음의 정도가 얼마나 공평하고, 얼마나 최소한의 매너를 지키는가의 문제이다.

오피셜한 만남일 수록 더 많은 '책임'이 뒤따르는게 사실이다. 혼자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둘을 생각하며 사는건 행복만큼 피곤함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게 귀찮다면 그 뜻이 맞는 이들끼리 만나, 그 뜻이 맞을 때까지 만나야하지 않을까.

처음에 가볍고 편하고 좋았을 잠깐을 지나면 반드시 한 사람이 기우는 순간이 오게된다. 이때 자신이 없으면 이 만남의 가벼움을 인정하고 순순히 관계를 끊어야한다. 상대가 썩어간다는걸 외면하고, 상대가 먼저 자신을 끊어버리지는 못할 것임을 무기로 상대의 시간과 육체와 정신적  재화를 앗아간다면 당신은 감정도둑, 감정폭행범이며 이게 정도가 심해지가면 감정살인자까지 갈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앗아간게 아니니 죄가 없다 스스로를 합리화하겠지만 인생이 참 재밋어서 남을 피눈물 흘리게 한 대가는 반드시 치루게 된다.

쉽지 않다는 거 안다. 옷 하나를 사도 깎아주면 좋아 날뛰는데 사람 마음 하나를 얻었는데 요만큼의 내 마음의 값을 치루지 않으니 얼마나 좋으랴. 나 만나고 싶을 때 (주로 새벽) 불러내고 나 연락하고싶을 때(역시 주로 새벽) 연락해서 헛소리 할 수 있고 좀 귀찮아지면 전화 씹어도 애인 아니니까 덜 미안하고 나쁜놈 안같고 얼마나 편하겠나. 이런 만남에 익숙해지고, 이런 관계가 주는 값싼 즐거움에 맛들린 인간들은 이걸 못끊는다.


4. 사람이되자: 책임의 무게가 다르다해서 책임이 없는게 아니다

'책임'하면 "내 인생 책임져!" 로 생각하고 쫄기부터 하지 말자. 서로 좋았는데 왜 나 혼자 책임져야하냐고 짜증내지 말자. 혼자 대단한 짐이라도 지란게 아니라 우는 얼굴을 닦아주진 못할망정 침은 뱉지 말라는 거다. 울며 관계 확실히 하자 했을 때 그러기 싫으면 난 못하겠다하고 싹뚝 그 관계 끝내자. 상처니 뭐니 운운하며 귀찮은건 싹 피해놓고 새벽에 술취해서 빌빌대며 불러내 만지지 말고.

적어도 지금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 상태일지 공감이라도 해보려하는 것, 우리 다 큰 성인끼리 이 정도의 마음자리는 갖고 만나면 안 될까? "넌 날 이용하니" 하며 우는 사람 앞에 두고 자기식대로의 팩트만 주장하며 법정 공방 하지 말고 그냥 입 다물고 상대 심정을 공감이라도 해보자. 어차피 상대와 마음의 합치는 이룰 수 없고 관계는 망했다. 그렇다고 아이고 귀찮아하고 청소도 안하고 도망가면 5세 조카랑 다를게 무언가. 장난감은 물건이기라도 하지 여긴 사람 관계잖나. 이제 나이 먹을만큼 먹고 연애 할만큼 했다면 쓸데없는 미사여구 버리고 가장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보자. 귀찮지도 않은가, 좀 더 창의적일 수 없나?


이제 기만은 그만

인생 한번인데 억대 기부는 못하더라도 주변 사람 마음 훔치는짓까지는 좀 안하고 살아보자. 당시에는 눈먼 사람들도 결국 나중엔 정신차리고 여기저기 당신의 졸렬함을 소문내고 다니고, 영원히 비밀일줄 알았던 둘의 침대에서의 이야기가 제자에 제자한테까지 소문나 속으로 다들 당신을 비웃는 날이 금방 온다. 이미 왔을지도.


화이팅




다음주에는 저 고리짝 레퍼토리를 믿고 스스로를 값없이 사랑과 온정을 쏟는 여신이라 정신승리했던 그날들과, 그에 대한 통렬한 자기 비판 '약속되지 않은 관계의 지저분한 지점 2탄 <이곳은 뉴욕이 아니고 난 사만다가 아니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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