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콤플렉스에 빠진 이들의 생존법
박제 말고 공유하는 센스
이상하지 않은가
당신은 그리 착하지도, 바보 같지도 않은데 못되고 못된 애인에게 똑같이 갚아주지 못하는 것이. 그냥 딱 잘라 이별하면 되는데 그거마저 못하는 것이.
왜 그럴까
1. 당신이 너무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바람 펴도 맞바람 못 피우고, 거짓말해도 같이 거짓말 못하고, 툭하면 잠수 타고 약속 어겨도 똑같이 못하고 화도 크게 못내는 당신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도 이 마음과 행동이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사랑 또는 미련이라고 생각하거나 스스로를 애정결핍자 또는 트라우마가 있어서 못 헤어지는 병에 걸린 사람으로 취급하고 자포자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애정결핍자도 바보도 사랑꾼도 아니다.
당신은 그저 많이 상처받아서 같은 아픔을 반복하기 싫을 뿐이다.
상대의 파렴치한 행동들에 매번 충격받고 상처받은 당신은, 상대에게 강하게 대응할 경우 상대가 옳다구나 하고 예전보다 더 뻔뻔한 행동을 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너무 아팠던 당신은 이 상처가 반복될까 봐 최대한 그 모든 가능성을 차단시키고 싶어 하고, 하루하루 그저 참고 큰일이 터지지 않게 숨만 쉬며 살고 있을지도
2. 당신이 진짜 원하고 있는 건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일지도 모른다
이별 or 사귐으로만 머리 터지게 생각하는 당신.
이별은 어쩐지 너무 '쉽고' 상대만 편할 것 같다는 생각 가득한 당신이 원하는 건 사실 상대가 뼈저리게 후회하는 모습을 보는 것과 명예회복일 것이다.
당신을 상처 입히고 뻔뻔했던 그 사람에게 입은 내상은 다음 연애뿐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무리 건강하고 빛나던 정신의 소유자도 비참한 연애를 겪고 나면 일시적이라도 상당히 어둡고 부정적이고 피해의식 가득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과 스스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과를 할 인간이면 진작 했을 것이라고".
"사과받아서 뭐할 거냐고 미안하다고 하면 다시 잘 사귈 거냐고 미쳤냐고"
"뭐가 그렇게 분하냐고 그렇다고 똑같이 진흙탕 싸움해봐야 망하는 건 너라고"
아니다.
이별 or 사귐의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자. 이 마음속 분함을 어느 정도도 해결 보지 않고 이별을 위한 이별 해봤자 악순환이다.
시작처럼 끝마무리도 너무나 중요하다.
당신은 지속적으로 자존심에 큰 손상을 입었다. 모두가 당신이 문제 상황에 빠졌다지만 스스로는 자꾸만 괜찮다고 하는 건 이미 문제가 너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마저 괜찮지 않다고 해버리면 너무 슬프니까.
인정하자, 당신은 현재 힘들다는 것을.
앞으로 행복해지면 되는 것이고 행복해져야 한다. 이 명예와 자존심은 물론 결론적으로 스스로 회복시켜야 하고 시간도 중요하지만 상대와 관련해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상대가 반성하고 내 명예가 조금이라도 회복될 수 있을까
모 스님처럼 상대를 더 사랑하고 이해하라는 조언 따위 난 못한다. 패주고, 맞바람 피고, 잠수 타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은
아래와 같이 한번 해보자
4. 가장 현실적인 방법: 단계적 관계 뜯어내기
이별이 필요한걸 머리로 알겠는데, 그것으로는 사과와 명예회복 없이 그냥 끝일 것 같다는 등 여러 이유로 망설여지는 당신이라면 조금 다른 이별을 해볼 필요가 있다
아주 단순한 건데 "헤어지자"는 말부터 하고 남남이 된 채로 행동을 정리하던 기존의 이별이 아니라, 이별 이후에 할 행동들부터 먼저 천천히 다 해보고 마지막에 이별을 말로 꺼내는 것이다.
즉, 헤어지자는 말부터 하는 대신 상대 모르게 상대가 사라진 일상에 먼저 천천히 적응해나가는 것
이건 좋은 애인에게는 쓸 방법이 아니다. 나 혼자 준비 다 하고 통보만 하는 거니까. 상대는 벙찌고 놀라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우린 지금 이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당신이 최대한 상처받지 않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복수'도 해야 하기 때문에
순서는 보통 이 정도가 적당하다
1) 집에 있는 관련 물건들 한 상자에 모아 보이지 않는 곳에 두기(아직 버리지는 않는다. 급하게 굴어봤자 슬퍼져서 아 이별 못해! 하고 감정적이어진다. )
2) 핸드폰에 저장된 대화와 사진 기록 하루에 몇 개씩이라도 지속적으로 지우기
3) sns에 있는 댓글, 사진 같은 것들 오래된 것부터 지우기
4) 특별한 용건 없이 하던 연락부터 서서히 줄이기
일단 여기까지는 상대가 웬만큼 예리하지 않은 이상 잘 모른다. 달라진 공기 정도가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이별을 체감할 수 있게 해준다. 여러 기억이 많고 만난 기간이 길다면 만감이 교차하고 많이 슬프고 힘들 수 있다. 울만큼 울자.
재밌는 건 이미 이때부터 명예는 상당 부분 회복이 일어난다. 상대 모르게 나 스스로 관계의 큰 부분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걸 보며 위험 부담은 적지만 만족감은 꽤나 높다.
이제부터는 상대가 느낄 정도로 서서히 이별의 징후를 드러낸다. 이미 눈에 보이는 행동들을 하지 않아도 이쯤 했을 때 당신에게 풍기던 분위기 자체가 슬슬 달랐을 것이다.
5) 최근 sns 기록을 지우기 시작한다. 지우기가 괴로워서 계정 폭파를 하거나 비공개 전환 등을 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중요한 건 조금씩이지만 '진짜 삭제'를 해보는 것이다
6) 이른 저녁 시간 때부터 연락을 하지 않는다. 피곤하다, 일찍 잤다 정도로 얘기한다. 당연히 상대의 압박이 들어오지만 싸우지 않는다. 반나절, 하루 정도씩 잠수도 탄다. 아팠다고 한다. 딱히 거짓말도, 격한 싸움도 하지 말고 조개처럼 입 꽉 다물고 있는 게 중요하다. 상대가 전혀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그건 그거대로 좋다 그대로 서서히 이별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시간이 차이만 있을 뿐 반드시 이 문제로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여기까지
2주 정도까지 해본다.
여기서 상대의 밑바닥이 나온다.
아직 그래도 양심과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만 해봐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과하고 당신을 조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둘이 해결할 문제이다. 당신은 차근차근 모든 준비를 했고, 상대방을 동등한 입장으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올 수 있었다. 고민해보고 서로를 위해 건강한 관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힘을 내보자
하지만 상대가 양심과 영혼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만으로도 분노하고 당신을 탓하고 소위 당신이 두려워했던 보복성 행동을 할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당신 마음은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밑바닥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끊어내자.
그러나 복수심에 도저히 이별은 안 되겠는 당신이라면, 남은 건 진흙탕 싸움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진흙탕 싸움은 나를 걸고 해야 하는 싸움이다. 그래서 혹여 '승리'해도 뒷맛이 더 씁쓸할 수도 있다. 각오해야 한다.
최후의 방법이다. 정서적 위험 부담이 커 그리 추천하지는 않는다.
6. 바람을 피운다
모든 애인을 가장 괴롭히는 방법은 결국 바람이다.
"내 애인은 나 질투도 안 해"라고 하지만 당신은 상대가 진짜 질투할 짓을 여태 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건수를 만들라. '실제로 어떤 관계'까지 이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못 만나던 애매한 관계의 친구, 전 애인, 소개팅 뭐든 좋다. 세상으로 나가고 기회를 만들자. 정신을 분산시키고 사람을 만나자
초반에 언급했듯 당연히 이게 초강수라는 걸 알지만 못하는 이유는 바람피우면 상대가 똑같이 굴까 봐 무서워서였다. 또는 당신이 연락을 끊고 빈자리를 만들면 외로워진 상대가 진짜 딴 데로 새 버릴까 봐 분하고 싫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게 있다
외로워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성실했던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당신의 애인이 불성실했던 건 당신이 소홀해서가 아니었다. 당신은 평균 이상으로 따뜻했고 성실했지만 상대가 모든 걸 자기 멋대로 했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일시적으로는 미친 짓의 몸부림을 치고 보복성 태도를 취할 수도 있겠지만 이내 매우 비굴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반드시
사실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당신에 대한 성실함은 없이 소유욕만 있어서 당신의 빈자리가 느껴지거나 혹여 당신이 바람이라도 피우면 눈이 돌아가 다른 게 손에 안 잡힐 것이다. 배신감과 분노, 쌓여온 모든 걸 폭발시키고 "날 그렇게 달달 볶더니 니가???!!!!" 하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
매우 당황한다. 평생 소심하고 절대 모질지 못할 것 같은 당신의 반항(?)에 정말 많이 당황한다.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들이 당신이 평생 안 해본 행동이었듯 그들도 당신 같은 애인들만 내내 만나며 이런 역공격은 처음 당해본 것이다.
결국 여기까지 가면
당신의 마음이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상대가 무너지고 고통스러워하고 비굴해지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행복해지고 속 시원해질지, 아무런 미련 없이 앞날이 편안해질지는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즐겁고 속 시원했다. 내가 원한 건 정말 조금도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고 죽도록 상처만 주는 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후회하지 않는다. 가끔 괴로운 꿈을 꾸고 눈을 뜨면 내가 그 사람에게 준 상처를 생각하고 다시 편안히 잠들 수 있을 정도이다.
착할 만큼 착했던 당신. 이제 조금만 더 모질어지라, 당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