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라 Dec 27. 2016

혹독한 이별

박제말고 공유하는 센스



지독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두 사람이 연애를 약속하고 얼마간의 시간 동안 그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인데,

그 엄청난 일의 마지막 장을

그간 쌓아온 일들을 잊어나가는 일로 막을 내리는 것은 세상 모두가 겪는 일이라 해도 매번 쉽지 않다.


존재하고 기억되기 위해 온 힘 다했던 일들은 그만큼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좋은 일이었건 나쁜 일이었건 말이다.


최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이 기간이 비교적 수월하게 지나가겠지만

그 확신이 없을수록

이별은 그야말로 혹독하다.


하지만 머리를 흔들고 손을 저어봐도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고

더 이상 미움받고 싶지 않음에 무엇도 뜻대로 할 수 없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정말 모든 게 떠내려 갈까 봐 사방을 헤매는 마음도 함께 무너져간다.


때론 확신이 있어도 아프다.

내일을 위해 반드시 이 선택이 옳다는 걸 알지만, 더 이상 서로를 견딜 수 없고 우리에게 좋은 미래는 이제 남지 않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끝없이 무너져 가는 너 또는 나를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홀로 도망친다는 생각에 하루에도 열 번씩 눈물이 난다. 연민은 사랑이 아니라 아무리 머리 저어 보아도 저려오는 가슴을 부여잡으면 이 감정이 도대체 무엇일지 혼란스럽다.


연애가 소꿉놀이가 아니듯

이별은 사랑 or 안사랑의 문제가 아니다.


그간 지속해 오던 어떤 형태의 삶이 정리되는 일이고, 두 사람이 공유하던 수많은 감정과 생활이 분리되는 일이다. 제대로 연애를 했다면, '미련' 같은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생활의 분리'는 정말 거대하다.


이런 일련의 것들은 가슴을 후벼파는 고통으로 다가오고, 그 고통에 때론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 그냥 없었던 일처럼 지내고도 싶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행복만큼 불신과 상처도 쌓여버려 이제 남은 시간에는 더 채울 수 있는 것들이 없다는 것을. 우린 이미 너무 많은 일을 겪었고 서로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그랬던 만큼 그 소중함이 이제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편안했고 따뜻했던 한때가 그립고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두려워 다시 상대에게 달려가더라도, 잠깐의 감정 폭풍이 지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마저도 설 자리가 없이 서로 가슴만 답답해지는 순간이 또 오고야 말 거라는 것도. 이것들은 단순히 극복 가능한 특정 사건들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라, 너라는 사람과 나라는 사람의 밑바닥이 만나 만들어낸 평행선이기에 앞으로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지난 시간 동안의 수많은 경험들로 알고 있다.


그리움, 추억, 미안함이라는 감정들을 헤치고 돌아오면 다시 마주하게 될 매일은

영화 속이 아닌 여기 이 자리의 살아 숨 쉬는 현실이고 두 사람의 인생이 부딪치는 삶의 현장인 것이다.


그러나 낮 동안 외면하려 했던 기억들은

늦은 밤 꿈속을 침범해서 날 놓아주지 않는다.


죄의식과 추억, 괴로웠던 일들이 뒤범벅되어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면 깨어나는 것이 두려워 잠도 두려워진다.


부족한 잠이 가져다준 스트레스는 자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외롭고, 충동적이고, 궂은 눈물을 쏟아지게 한다. 몸은 고통을 말하고 마음은 굳세질 것을 말하는 이별 후 이런 시간들을 견뎌내게 하는 선택은 아마 각자가 인생에서 최선이라고 하는 무언가일 것이다.


내게 인생에서 최선은 사랑이다.

우습게도 내 모든 선택은 나의 사랑을 위해서였다.

더 이상 견디는 것은 정신적 학대에 이를 정도가 됐고 여기서 내가 더 사랑이라 고집하는 건 사랑이 아닌 파멸이었다. 

물론 나는 널 아끼고 너는 날 아끼는 사랑은 이 생에선 불가능한 것일까 생각하면 덜컥 두려움이 생긴다. 영영 혼자일 것 같고 혼자서 잘 살지 못하면 어쩌나 두렵다. 혼자가 아니라 해도 혼자 같다.


그러나 나의 이별의 데이터는

아무리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사람도

아무리 추억이 많았던 사람도

어떤 시점에서는 결국 잊혀지고

내 사랑을 찾는 먼 여행은, 지난 기억을 원동력 삼아 다시 시작될 거라는 걸 안다.


그저

머리가 말해주는 것들과 감정이 받아들이는 것들의 간극을 채울 일정한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번민과 슬픔 속에서 보내야 할 뿐이다.


그 시간들을 보낸 뒤 어느 날


누군가는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그 사람에게로 돌아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부질없음을 되새기며 새로운 하루를 향해 걸어나갈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각자의 행복에 최선인 무언가를 하면 될 터이다.


어떤 혹독한 이별 뒤에도

그 이별 동안 영혼이 산화되는 것 같아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여전히 살아야만 한다.


누구도 이때에 우리를 도울 수 없다.

나를 나 스스로 해치지 않고

신의 가호를 기도하며 하루씩 살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