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난중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라 Jun 01. 2017

자아비판의 시간

나를 죽임으로써 나를 살린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간다  

1. 나는 차선책의 삶을 살고 있다


내 인생은 최선의 선택으로 이뤄진 것이 없다.


최고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사실 알 수가 없었고 혹여 원하는 것이 있어도, 언제나 그 '비슷한 차선의 것'을 쉽게 얻는 방향으로 쉬이 옮겨갔다.


최선을 위해 죽음과 가까운 인내와 투자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정말 이 이상 더 할 수 없었노라고, 더 후회 없다고 할 만큼 값진 노력 하지 않았다.


살면서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도, 음악을 그리 열심히 하지도


돈을 벌기 위해 미친 듯 살아보지도, 절약 저축을 열심히 하지도 못했다.


그 결과 나는

회사원으로 직장 사회에 잘 적응하고 알토란 같이 모으고 살아 어엿한 성인이 되지도 못했고

음악으로 멋들어지게 무대에서 노래하지도 못했고

유학이나 더 '높은'학교를 통해 스펙을 쌓지도 못했고

하는 분야의 공부로 두드러지는 성과를 낼 무언가를 내지도 못했다.


내게 남은, 손에 잡히는 것들은


살면서 어찌 다 갚을지 그저 아득해지고 날 더 무력하게 만드는 학자금 대출

나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변명뿐이다.



이 세상 구조에 대한 비판만큼 나 또한 치열하게 살았어야 할 터인데


비판은 많고, 나는 치열하지 못해서,

나의 비판은 그저 못난 나에 대한 변명거리만 돼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함으로써 나는 발전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늘의 고통을 또 배설하고 다시 똑같은 나로 돌아갈 것이다.



2. 나의 자아비판의 궁핍한 지점


보통은 이런 문장을 내뱉는 사람은 사실 누가 봐도 이미 열심히 멋있게 살고 있어야

이 자아비판의 서사가 멋있게 완성될 텐데,


나의 자아비판의 지저분한 지점은


나는 실제로 멋있지 않고

진짜 대충 살고 있다는 것과,

이 자아비판이

결국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불쌍한 존재로 만드는 세계로 잽싸게 도망갈 길을 열어줘서,

세상과 나 스스로에게 마지막 양심은 있었노라 하는 한줄기 안도감 하나를 갖고 잠들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자고 일어난 나의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 그렇게 쌓여가는 나의 내일도 달라지지 않는다.



3. 나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난 나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누군가의 쉬운 말로

"왜 이래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어"

"너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성공했어"

같은 말들로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알량한 나의 재능을 믿고 쌓아온 게으름이 현실의 재앙을 만들었고 매일 나도 모르게 미세먼지처럼 쌓인 현실의 재앙들이 나를 돌아올 수 없는 강으로 보내버렸다.


그 돌아올 수 없는 강이

혹여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더라도 내게는 절대 살아서 헤엄쳐 올 수 없을 정도로 깊고 깊은 심연이어서, 용기! 갖은 걸 갖는다고 뛰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돼버렸다.



4.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는 거짓말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으면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던 것이 아니라

부러운 것이 많아서, 부러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없애려 했던 하루하루였다


그러나 부러움이라는 세 글자는 지워버릴 수 있어도내 안에 감정은 없앨 수 없었고

언어의 영역이 배제시킨 감정이 정신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가 육체가 약해지고 정신이 피폐해질 때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5. 죽고 살 용기


내가 자살로 죽으면 보험금도 안 나오는 내 학자금 대출을 부모가 갚아서 도저히 죽어서도 얼굴을 들 수가 없고(죽으면 들 얼굴도 없지만)

살아서는 뭐든지 할 자신도 없으니

누가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불쌍해 내가 울고

나 혼자 지독한 상상을 해서까지 나를 불쌍하게 여기려는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죽고 살 용기는 어쩌면 수치심의 영역을지도 모른다.마지막 수치심이 남아 하루씩 이어가는 것이 삶이고, 그 수치심마저도 아무런 미련이 없을 때 죽음을 택하는 거겠지


젊어서 생을 포기했다는 수치심

쓰레기만 남겨놓고 도망쳤다는 수치심

나보다 힘든 이들도 버티는데 나 주제에 죽는다는 수치심

나로 인해 누군가 괴롭거나 피해 입거나 우는 것에서 그저 홀로 도망쳤다는 수치심


수치심 또한 대상이 있을 때 존재할 수 있다

하물며 그 대상이 나 자신일지라도


그런데 나를 둘러싼 세상도 일찍이 죽고

수치심을 느낄 내 마음마저 죽어버린다면

육신의 죽음은, 당연한 선택이 되겠지





그래도 모두 힘을 내요, 나 빼고

그냥,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매거진의 이전글 '착한' 이기주의자의 악마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