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난중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라 Jun 28. 2017

남자는 더치페이 하는 여자를 우습게 안다?

들어가며



20대 후반 어느 날, 친구들이 이런 말을 했다.


소위 더치페이녀 개념녀로 살았더니 오히려 꼬이는 건 비겁한 거지들이고, 남자들이 김치녀라고 욕하는 애들이 돈 잘 쓰는 사람 만나서 고생 안하고 살더라고. 입만 살고 맘은 썩은 진보, 인문학, 예술 거지들이 더 좆같고 돈 잘 쓰는 마초가 낫다고(뭔 말인지 이건 이해 감) 그래서 이젠 절대 연애할 때 돈 쓰지 않겠다고


이 말을 들은 누군가는 또 말한다.

그건 걔네가 돈을 안써서 돈 잘쓰는 남자 만난 게 아니라, 돈 안써도 되게 예쁘고 잘나고 다른 것들이 훌륭해서라고!! 너네 같은 페미들은 못생겼으니 돈이라도 내라고!!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1.


이 말 자체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맞는 이유는,

대체로 사람들이 상대가 돈을 쓰기 시작하면 점점 빌어먹으려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비겁해서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당신이 '평균적 수준의 비겁함'을 지닌 범인을 만날 경우 일단 돈은 안쓰는 게 돈 아깝다는 생각 하나는 안들게 할 수 있다. 원래 비겁한 사람들은 잘해줄 수록 분수도 수치도 모르고 더 퍼가려한다.


2.


그런데 틀리기도 한 건, 당연히 예외의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연인이 돈을 쓰건 안쓰건

연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자기 형편 닿는대로 금전적으로 도우려하고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보통 우리는,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한다.


근데

이런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상대방을 향한 마음과 자신의 형편이지, 여자가 돈을 내느냐 안내느냐 문제가 아니다. 그런 사람 앞에서 되려 글로 배운 연애상식(여자는 돈 내면 무시당해!) 실천하다가는 '뭐 저런 무개념한 사람이 다 있지..'하고 차인다.



3.


"더치페이 하던 나 만날 땐 빌어먹기만 하던 놈이, 다른 여자 만나더니 명품백 사주더라"


사실 위 상황의 문제는 여자가 돈을 어느 정도로 냈냐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의 비겁함 문제이다.


이런 여자 앞에서 행동 다르고 저런 여자 앞에서 행동 다른 비겁함이 문제고, '빽 사줄 애정(또는 그들 말로는 빽 받을 만한 미모와 가치?)하나 안 생기는 여자지만 혼자이긴 싫으니 계속 만나고 심지어 그 여자가 피땀 흘려 번 돈의 수혜까지 양심 없이 받아 먹던 비겁함이 문제라는 거다.




4.


실제로 "여자가 뭐든 공정하려 하면 매력 없어" 라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런건 취향 문제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비하이고 혐오다.


묻고싶다.

스스로 불공정하고 가난하고 신세지고 연약해 보이는 연기까지 해대며 저런 혐오론자를 만나고 싶은가?



얌전한 고양이처럼 앉아 세상 돌아가는 것 모르는척 백치미 풍기며 가져다 주는 돈 쓰는 걸 행복이라 여기면 오케이, 그럼 내 돈 절대 안쓰고 모든 것을 남자에게 의지하며 살면 된다. 사실 이 세계의 시스템이 비교적 그 기반으로 만들어져서 그렇게 살면 '편하다'


하지만 위와 같이 살고 싶지 않고

당신은 '합리적'으로 사랑하고 싶었을 뿐이라면 더치페이냐 아니냐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너머의 세계를 봐야한다.


너머의 세계 1)


당신이 늘 공정하게를 외치며 연애에서 돈을 쓰는 이유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스스로에게 돈을 쓰는 이유를 물었을 때

'버림 받기 싫어서' 같이 내 마음의 가난함을 이겨낼 정신승리가 이유에 깔려 있다면, 진짜 운 좋아 성인군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음의 가난함을 가리기 위해 더치페이하고 연애에 돈을 쓰는 사람은, 서로의 마음이 동등한 상태가 아닐 때도 물질적 투자를 멈추지 못하고(오히려 더 쏟아붓고. 마음이 더 가난한 상태니까) 본인이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도 무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자체가 상처일 수밖에. 이런 사람들이 꼭 누가 봐도 명백한 피해 입고 본인도 속으론 괴로우면서 "난 그래도 사랑해서 쓴 돈이니 후회 없어" 라고 반성 없는 정신승리 또는 세상 남자 다 개새끼야라고 비관만 한다.


마음이 텅빈 당신이 돈으로 공정해보려 몸부림쳐 봤자 마음까지 채워지지 않는다. 왜 내가 돈이 없는상황에서까지도 상대방이 돈 내는 걸 보면 괴롭고 죄짓는 기분이 드는지, 돈을 내는 행위 안에서 '난 남다른 여자야' 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까지 '남다른' 여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왜 상대방을 볼 때 이 더치페이(를 진작 넘어서 퍼주기)가 끝나면 날 떠날 것 같다는 공포감만 드는지, 이 상처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에 대해 나 자신 정면승부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더치페이를 하건 안하건 당신은 불행해진다.




상대의 못남과 내 마음의 가난함 등이 뒤엉켜 사랑이 진작에 끝났는데도, 내 돈 씀은 멈추지 않고

나중에 관계가 억지로라도 끝나고나면 그제서야 "돈 썼더니 날 만만히봤어" 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나는 그럼 왜 후회 할 돈을 계속 썼는지애 대해 다방면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 문제를 분리해 생각하질 않는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더치페이냐 아니냐

거지냐 부자냐는

어디까지나 그 다음 문제이다.



너머의 세계 2)


27살의 어느날 당신 곁에 나타나 간이고 쓸개고 다 빨아 먹고서 떠나놓고는, 그 다음에 '어린년' 만나서는 명품백 사주던 그 남자는

당신은 못나고 더치페이해서 만만하게 보고

어린년은 이쁘고 김치녀니까 잘해준 게 맞다.


그런데 당신을 그런 이유로 만만하게 볼 사람이고 예쁘게 보지 않을 사람이면, 애초에 당신을 만나지도 말았어야 했다. 이게 먼저다. 심지어 별로 사랑하지 않는 당신의 쌈짓돈을 계속 줏어먹지 말았어야했다.


돈이 없으면 마음이라도 꽉 채워주기 위해 노력해야지 아무 것도 없었으면서 그냥 주머니 서럽고 거시기 서러우니 당신 곁에 아쉬운대로 붙어 있던 추잡한 놈을, 왜 그 사람의 됨됨이에서 먼저 문제 원인을 찾지 않고 당신 과오의 산물로만 결론지어 버리는가.



나오며



당신이 소위 건강한 연애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가장 합리적 데이트 비용의 분담 형태는 "사랑 안에서 형편대로"이다.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이 덜 내는. 남자가 9를 벌고 여자가 1을 버는데 우린 '개념있는' 연애를 해야 한다고 5:5 데이트 비용 하는 것도 잘못된 거고, 남자가 1을 벌고 여자가 9를 버는데 여자가 돈 쓰면 매력 없다고 남자가 다 돈을 내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각자 월급통장 까고 비율을 계산해서 토씨 하나 안틀리고 비율 나눠 낼 순 없고, 사람 형편이 왔다갔다 하기도 하니 '사랑 안에서'가 반드시 깔려 있어야 한다.



불합리와 합리, 풍족해지거나 어려워지는 모든 상황들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고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사랑이지 사랑이 별 게 아니다.


모두가 가난한 21세기 한국의 파도 안에서, 연애 돛단배라도 뒤집어 지지 않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참 진부하게도 역시 사랑인 이유가 이렇게 돈 문제에도 있는 것이다.




차가운 머리의 판단력으로 비겁함을 멀리 하고, 따뜻한 가슴의 사랑으로 진짜 아름다움을 껴안자. 사랑은 가난을 이길 수 없지만 가난을 이해할 순 있게 하고 이해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순 없지만 구원을 꿈꿀 수는 있게 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자아비판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