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스튜디오가 탄생하기까지, 애플 집착의 역사
아주 예전부터, 애플은 자사 컴퓨터에 집착이라 할 만큼 일관적인 시도를 했고 거의 대부분 실패했다. 그 시도란, 고성능의 컴퓨터를 아주 작거나 얇은 폼팩터에 집어넣고 소음조차 극도로 줄이는 것이다.
이는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의 설계철학과 고집에서 유래한다. 최초로 GUI를 탑재한 소비자용 PC였던 매킨토시(1984)에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고결한 컴퓨터에 사용자들이 추가 슬롯을 달아 디자인을 해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확장 슬롯을 넣지 않았으며, 쿨링 팬에서 나는 바람 소리를 혐오하여 팬을 달지 말라고 지시했다.
1992년에 애플에 입사한 조너선 아이브는 컴퓨터 디자인에 대해 스티브 잡스와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는 소재, 형태, 생산공정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보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컴퓨터를 디자인하기 위해 연구했다. 그의 디자인적 실험은 형형 색깔의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를 적용한 것으로 유명한 아이맥 G3를 만들어냈고, 이어서 파워맥 G4 큐브라는 아주 매력적인 컴퓨터를 탄생시켰다.
파워맥 G4 큐브는 2000년 여름에 출시한 프로용 맥 컴퓨터다. 이 컴퓨터는 많은 면에서 새로웠다.
우선 한눈에 알 수 있듯, 본체의 크기가 굉장히 작다. 그리고 공중에 떠 있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커버 안에 연회색빛을 띠는, 귀여운 사이즈의 본체가 딱 맞게 결합된 채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디자인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당시 인텔 칩의 성능을 앞서는 PowePC 프로세서가 탑재되었다. 상단의 전원부는 버튼이 아니라 터치 방식으로, 스치듯 손을 갖다 대면 PC를 켜거나 슬립 모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뒤집어서 손잡이를 당기면 바로 내부 부품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 또한 놀라웠으며, 세로로 꽂히는 DVD는 파격적인 느낌을 더했다. 이 제품과 함께 출시한 애플 시네마 디스플레이와 스피커, 프로 마우스/키보드를 함께 놓으면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안에 떠 있는 듯한 기기들이 다소 아방가르드해 보이기도 하고, <스타트렉> 같은 공상과학영화에서 튀어나온 미래 제품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컴퓨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결함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뜨거웠다는 것이다. 쿨링 팬을 혐오하던 잡스의 고집은 이 제품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프로용 워크스테이션인 파워맥 G4와 성능은 같은 주제에 팬이 없는 제품이 탄생하고 말았다. 덕분에 매우 조용하긴 했지만, 그만큼 내부는 뜨거워졌다. 게다가 미니멀하고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바디에는 흔한 타공 하나 뚫려있지 않았으므로, 전후좌우가 모두 막혀 있고 공기의 순환은 상단 및 하단에서만 부분적으로 가능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내부가 너무 뜨거워져 외장에 변형이 일어날 정도였기에, 파워맥 G4 큐브는 역대급 디자인(MoMA에 영구 소장되었다)과 역대급 설계 결함을 남긴 채 약 1년 만에 단종되고 말았다.
그 후 애플은 G4 큐브처럼 작고 소음이 없는, 그러나 프로가 아닌 일반 사용자를 위한 맥 미니를 출시했다. 이후 애플이 PowerPC에서 인텔로 이주함에 따라, 맥 미니도 그에 발맞춰 갈수록 더욱 작고 가벼워져 2010년 즈음에 이미 현재 맥 미니와 동일한 폼팩터와 디자인이 완성된다. 작고 소음이 없는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애플의 염원은 이로써 어느 정도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애플은 대중적인 맥 미니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들은 작고 소음이 없는, 아름다운 고성능 워크스테이션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2013년형 맥 프로가 탄생했다.
Can't innovate anymore, My ass. (더 이상 혁신을 못하긴 개뿔.)
- 2013년형 맥 프로의 발표 당시 문구
2013년형 맥 프로는 지금 봐도 전위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구조와 디자인을 도입했다. 손바닥 한 뼘 반 정도 길이의 원통 안에 기판 3개를 삼각기둥 형태로 배치하고 모든 부품을 그 위에 집적했으며, 하단에서 빨아들인 공기가 그 삼각기둥을 식히면서 위로 올라가 상단 구멍으로 배출되는 구조였다. 또한 외장은 압출 알루미늄 원통을 절삭 가공한 후, 정밀한 아노다이징과 나노미터 단위까지 극도로 폴리싱하는 공정을 거쳐 말 그대로 번쩍거리는 모습으로 마감했다.
기획은 좋았지만 당시 프로세서와 그래픽의 발열량은 고작 높이 25cm짜리 원기둥 안에서 돌아가는 팬 하나로 식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전 세대 맥 프로는 여러 부품을 식히기 위해 8개의 팬을 사용했다. 아무리 꼼꼼하게 설계했어도 애초에 팬 하나로 원활하게 식힐 수 있는 구성이 아니었다. 심지어 애플은 맥 프로가 최고 성능을 쓰고 있을 때에도 팬 소음을 일상적인 실내 잡음인 40 데시벨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팬의 속도를 낮게 설정했다.
맥 프로가 주로 쓰이는 영상 업계에서는 최소 몇 시간, 최대 며칠까지 연속으로 렌더링을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맥 프로는 이런 장시간 작업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과열로 픽픽 꺼지기 일쑤였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데드풀’ 편집 작업 중 맥 프로 10대를 함께 사용했으나 10대 모두 과열로 고장났다는 편집자의 일화이다. 결국 애플도 이 제품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2019년에 거대한 케이스와 쿨링 시스템을 채용한 맥 프로를 새로 발표했다.
애플은 2010년부터 매년, 아이폰에 들어가는 프로세서를 자체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세서들은 PC에 비해 극도로 얇고 작으며 배터리의 한계가 있는 아이폰 안에 들어가야 하기에, 성능은 높으면서도 전력 소모와 발열이 매우 적어야만 했다. 10년 동안 프로세서를 충분히 발전시킨 애플은, 칩의 성능과 효율이 매우 우수해졌으니 크기를 키우면 맥에도 충분히 탑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폰에 넣던 칩의 크기와 성능을 2배 키웠고 데스크탑에 대응할 수 있는 몇몇 기술을 추가하면서도 저전력과 고효율이라는 특성은 유지시켰다. 그게 바로 전력 소모와 성능, 효율, 발열 등 여러 면에서 컴퓨터 업계에 큰 충격을 준 M1이다.
결국 애플은 약 10년에 걸쳐 PowerPC에서 인텔로 이주한 후, 다시 한번 약 10년에 걸친 자체 프로세서 개발을 통해 인텔 CPU와 AMD 그래픽까지 버리고 온전히 자신들이 설계하는 컴퓨터를 만들게 되었다. 애플은 현재 맥 제품군에 들어가는 프로세서를 전부 자체 설계 칩(M1 및 그 후속 시리즈)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실천하고 있으며, 이미 거대한 맥 프로를 제외한 모든 제품군에서 이주를 완료했다. 애플의 맥용 프로세서는 아이폰의 설계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아 고성능, 저전력, 저발열, 고효율 위주로 설계되었고 따라서 거대한 전원 공급 장치나 쿨링 시스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애플이 늘 만들고자 하던 컴퓨터를 구현해 주는, ‘애플의, 애플에 의한, 애플을 위한’ 칩 그 자체이다.
이러한 자체 프로세서의 힘 덕분에, 며칠 전 공개한 맥 스튜디오에서 애플은 드디어 ‘작고 소음이 없는 프로용 컴퓨터’를 만든다는 그들의 계획에 도달한 듯하다. 맥 스튜디오는 기존 맥 미니에서 높이만 2배 정도 키운 사이즈지만, 성능은 거대한 맥 프로와 비등하거나 오히려 더 우수하다. 블로워 방식 팬 2개로 전체 시스템을 식히기 때문에 소음 또한 매우 작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그토록 원하던 워크스테이션이 드디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아직 주문을 받고 있을 뿐 실물을 받은 사람이 없기에 발열 같은 문제가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발표 상의 성능이 맥 미니보다 조금 큰 폼팩터 안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이미 무척 인상적이다. 또한 2000년의 파워맥 G4 큐브, 2013년형 맥 프로처럼 상단과 하단의 공기 순환을 통해 시스템 전체를 냉각하는 설계를 채택한 점도 흥미롭다(아마 전면과 측면에 보기 흉한 타공과 팬을 넣지 않으려는 애플의 디자인적 집착 때문일 것이다). 22년 전, 그리고 9년 전에는 실패했는데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