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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민관 Jan 08. 2017

Faraday Future FF91

전기자동차 시대의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

패러데이 퓨처가 CES2016에서  선보인 FFZero1


작년 이맘때, 미국 실리콘밸리의 자동차 업체인 패러데이 퓨처가 CES2016에서 FFZero1이라는 컨셉을 발표하며 테슬라의 경쟁자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비록 설립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신생 업체였고 FFZero1도 그저 디자인뿐인 쇼카에 불과했지만, 컨셉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았다는 점, 중국의 대형 자본으로부터 투자받는다는 점, 그리고 BMW나 아우디 등 업계 최고 회사들의 인원을 데려왔다는 점 때문에 빠르게 테슬라의 경쟁자로 이름을 알리는 데에 성공했다. 또한 최고속도 320km/h, 제로백 3초, 1000마력 전기모터 등 패기 넘치는 목표를 내세우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들에게 투자하기로 되어있던 중국의 LeEco라는 기업이 무리한 확장세로 현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패러데이 퓨처의 미래도 불투명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떠올랐다. 뒤이어 패러데이 퓨처가 공장 설립과 부품 제조 회사들에게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위기감이 조성됐다. 임원들이 한둘씩 회사를 떠나고 있다는 말도 들려왔다.



이런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패러데이 퓨처는 그들의 명예를 회복할 한 방을 내놓았다. 바로 CES2017에서 공개된 FF91이다. 한눈에 봐도 FFZero1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모습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2018년까지 양산하여 고객들에게 인도할 예정이라고 한다.



외관을 둘러보면 원 박스 형태의 SUV에 가까운 크로스오버라는 점이 첫 번째로 눈에 띈다. 전기자동차이기에 기존 자동차들의 프로포션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디자인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배터리는 차체 바닥 중앙 부분에 깔려 있고, 앞뒤로 모터가 위치한다. 섀시는 패러데이 퓨처의 VPA(Variable Platform Architecture) 형식이라, 큰 변형 없이 다른 차종에 적용할 수 있다. FF91이라는 이름으로 유추해 보자면, 9는 자사의 최상위 라인업임을 의미하고(BMW의 3, 5, 7시리즈처럼), 1은 그 라인업의 첫 번째 모델임을 의미하는 듯싶다. 따라서 FF91이 성공적으로 양산된다면 뒤이어 FF51, 61, 71, 81 등의 이름을 가진 다른 라인업들이 나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VPA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얼마 전 재규어가 발표한 I-Pace 컨셉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I-Pace가 프론트 휀더를 웅장하게 키우며 얼핏 미드십 같기도 하고 스포티한 SUV 같기도 한 차체 디자인을 선보인 것에 비해, FF91은 정직한 캡포워드 디자인에 원 박스 형태를 띠고 있다. 패러데이 퓨처가 공개한 사양에 따르면 전장은 5250mm로 포르쉐 카이엔보다는 거의 400mm 길고, S클래스와 비교해도 130mm 더 긴 굉장한 크기의 자동차이다. 휠베이스는 3200mm로 S클래스보다 165mm 더 길다. 안 그래도 공간 활용성이 좋은 전기자동차 특성상 무척이나 안락하고 넓은 실내공간을 예측할 수 있는 크기다. 실제로 시트가 60도까지 기울어지며 사용자의 편안함을 극대화시킨다고 한다. 패러데이 퓨처는 이를 '제로 그래비티 시트'라고 부른다.


두 번째로는 미래지향적인 스타일링이 눈에 들어오는데, 전기자동차임에도 기존 자동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갖춘 테슬라와는 달리 한눈에 봐도 첨단 기술을 종합한 듯한 독특한 외관이다. FFZero1만큼 파격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범주 안에서 날렵하고 미래적인 디자인을 잘 혼합했다. 리드 디자이너가 i8의 디자인을 진두지휘한 리처드 김이라서 그런지 부분적으로는 i8의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우선 프론트 디자인부터 보자면, 쭉 찢어진 듯한 LED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큰 차임에도 공격적인 형상의 LED와 헤드램프 덕에 날렵한 느낌이 드는데, 그럼에도 차의 전체적 라인과 잘 융합되어 지나치게 과격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LED가 수평 방향으로 쭉 뻗어 있어 차체가 낮고 넓다고 느끼게 된다. 헤드램프 밑에는 전통적인 자동차 프론트 디자인에서 필수적인 그릴은 보이지 않고, LED 패턴으로 표현된 패러데이 퓨처의 로고가 자리 잡고 있다. 패러데이 퓨처의 발표에 따르면 이 LED는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닌, 능동적으로 차의 정보를 알려주는 시스템의 일부라고 한다. BMW나 벤츠 등 다른 회사들의 컨셉들에서도 이미 많이 나왔던 아이디어지만, 미래의 자동차는 이런 식으로 사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주는 디바이스적 역할을 같이 수행할 것이다. 이 LED 패턴의 양옆으로는 에어 커튼이 튀어나오며 거대한 차체의 육중한 느낌을 줄이면서 스포티함을 더해 주고, 어두운 컬러로 차의 시각적 무게 중심을 아래쪽으로 보내며 안정감을 준다. 에어 인테이크와 커튼의 디자인은 에어로다이내믹을 고려한 듯하다. 둥근 프론트에서 공기가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에어 인테이크 안으로 들어가면, 공기저항을 낮추고 휠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혀줄 것이다. 보닛에 있는 에어 벤트는 패널 색을 어둡게 하면서 마치 윈드실드의 일부인 듯 착시를 일으키는 디자인을 채택했다.



사이드 디자인을 보면 우선 옆에 서 있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 거대한 크기가 눈에 들어오며, 저 정도 크기에 5인승이라면 실내 공간이 얼마나 넓을지 짐작이 된다. 이 크기라면 7인승도 괜찮았을 텐데 제로 그래비티 시트에 지나친 욕심을 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바디를 둘러보면 일단 패러데이 퓨처가 'UFO 라인'이라고 부르는 캐릭터 라인을 볼 수 있다. 사이드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굴곡이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면을 보여주고, 휀더의 팽팽한 볼륨이 이 모델의 강력한 성능을 암시하는 듯하다. 면을 앞뒤로 잡아당긴 듯한 디자인으로 거대한 차체답지 않은 시각적 텐션이 느껴진다. 날렵해 보이기 힘든 프로포션이라 디자이너들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에어로다이내믹을 많이 고려한 디자인인데, 위에도 언급했던 I-Pace와 유사하게 유선형의 전면부와 날카롭게 꺾인 후면 디자인을 보여준다. 실제 공기 저항 수치도 0.25Cd 정도로 양산차 중에서는 굉장히 낮다. 또한 루프와 필러를 포함한 그린하우스 전체와 차체 밑부분에 파고든 패널 부분을 전부 검은색으로 처리하여 납작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완성했다. 도어는 롤스로이스처럼 양쪽으로 열리는 수어사이드 도어이다.



위에서 본 모습은 상당히 파격적으로, 하나의 글래스가 바디 윗부분 전체를 덮고 있어 채광성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양 옆에는 위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이 또한 공기역학적으로 설계된 파트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 바로 뒤에 위치한 리어 윙으로 공기를 몰아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리어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프론트와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비교적 부드러운 이미지의 프론트보다는 좀 더 각진 느낌이 든다. 에어로다이내믹 상 뒷부분을 날카롭게 깎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테일 램프는 프론트와 마찬가지로 차체를 반으로 가르며 수평으로 날렵하게 뻗어 있는데, 최신 디자인 트렌드에 따라 단순히 램프가 차의 표면에 달려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 자체로 차의 면적 조형 요소 중 일부를 이루는 입체적인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리어 휀더에서부터 시작된 테일 램프의 LED는 차체 뒷부분을 가로지르며 리어 윈드실드와 바디를 구분 짓는데, 이 LED 밑에서 면이 한 번 꺾이며 패러데이 퓨처의 로고가 패턴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부분 또한 기능적인 요소를 갖춘 패널이며, 심미적으로는 이 차의 뒷부분을 역동적으로 보이게 한다. 리어와 사이드의 면이 만나는 곳에서 보이는 레이어드 디자인은 i8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C필러 위를 덮고 있는 패널은 멀리서 보기엔 그저 장식적 요소로 보이지만, 사실 그린하우스와 조금 떨어져 있어 차체 끝부분의 와류 현상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기능적 디자인이다. 스타일링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FFZero1 컨셉의 리어 윙 부분에 대한 스스로의 오마주이자, 리어 부분에서 차체를 꽉 붙잡은 것처럼 보이게 해서 시각적 텐션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구조물은 얼마 전 공개된 애스턴 마틴 DB11에서도 볼 수 있는데, 에어로다이내믹이 최근 자동차 디자인의 키워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B필러에는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들어갔는데, OLED 패널과 카메라가 부착되어 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하고 문을 자동으로 열어 주며, 사용자를 반겨 준다. 이번 CES2017 행사에서 패러데이 퓨처가 강조한 Connectivity와 Seamless Personalization의 일부일 것이다.



사이드미러의 자리에는 거울 대신 카메라가 들어가 있다. 위치는 도어 패널 위로,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은 법규상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차의 실제 출시는 2018년이고 그때가 되면 이런 기술들이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있을 것이다.



후드의 검은색 패널에는 숨겨진 레이더가 있는데, 자율 운행 시 이 레이더가 튀어나오며 주변 사물을 감지한다고 한다. 마치 스타워즈의 X-Wing에 R2D2가 장착된 모습을 보는 듯한데, 기능적으로도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재미있다. 이 3D 레이더 외에도 FF91에는 총 13개의 레이더, 12개의 초음파 센서, 10개의 HD급 카메라가 있어 자율 운행과 운전자 인식 등을 돕는다고 한다.



휠 디자인도 공기역학적으로 설계되어 틈새나 굴곡 등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다. 지나치게 심심해 보이는 것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형만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다. 중앙의 패러데이 로고는 차가 달릴 때 돌아가지 않고 똑바로 서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휠의 형태는 차의 주행 상태에 따라 능동적으로 바뀐다.



이 차의 앞 뒤에 달린 전기 모터는 총합 1050마력의 힘을 내고, 배터리 용량은 130kWh로 완전 충전 시 EPA 기준 최대 608km, NEDC 기준 700km 이상을 달릴 수 있다. 한 시간 안에 방전 상태의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으며 0-100km/h 가속은 2.39초밖에 걸리지 않아 2.5초인 테슬라 Model S P100D, 2.9초인 페라리 라페라리를 뛰어넘는다. 시연회장에서의 드래그 레이싱에서는 실제로 페라리 488GTB와 테슬라 Model S P100D, 그리고 벤틀리 벤테이가를 상대로 우세를 보였다. 이대로 정말 출시가 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멀리 달리는 전기자동차이자 가장 빠른 SUV의 타이틀을 거머쥘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1000마력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이제 어느 정도 보편적인 수치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FF91은 5000달러라는 상당한 액수의 예약금과 2018년이라는 먼 출시 일자, 그리고 시연회장에서의 자율주차 기능 오류(패러데이 퓨처의 설명에 따르면 시연회장의 강한 조명들과 사방의 강철 프레임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율 주행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고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에도 불구하고 공개 후 46시간 만에 사전 예약 64000대를 돌파했다. 이 차의 공개는 패러데이 퓨처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예측과 전망을 없애고 투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패러데이 퓨처는 일단 FF91을 통해 테슬라와 차별화된 자사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상당히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함께 기존 업체들을 압도하는 성능까지 자신 있게 공개했다. 앞으로 전기차 시대에서 자동차 디자인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해 나갈지 기대된다.


만약 패러데이 퓨처가 현재 자금난 이슈를 극복하고 FF91을 시작으로 하여 엔트리 모델을 포함한 여러 차종의 양산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면, 테슬라는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력한 경쟁자와 마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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