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서 발견하는인생 이야기3-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 글 로버트 먼치/ 그림 안토니 루이스/ 옮김 김숙 >
‘너는 크고 나는 늙는구나’ 며칠 전, 조카며느리가 페이스북에 이런 짧은 글과 함께 4월에 태어난 둘째 사진을 몇 장 올렸다. 아기가 너~무 예뻐서 “우~~ 와앙~~” 소리가 절로 나면서도 조카며느리에 대한 애잔한 맘이 들었다. 그러면서 엄마들의 애환과 사랑을 담은 이 그림책이 떠올랐다.
아는 선배님의 외손주는 이 책을 읽어줄 때마다 늘 우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도 생각났다. 아마도 늘 내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 부분쯤이 아닐까?
이 책을 쓴 ‘로버트 먼치’는 194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는데 유아원에서 일하며 아이들에게 자신이 만든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하던 유아원에 정부 지원금이 중단되는 바람에 캐나다로 이주해 유아원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바로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이 책으로~.
이 책의 편집자는 ‘이상하게도 양로원 사회에서 이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는데 이 책을 읽어본 어른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면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 "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포근하고 부드럽게 다독거리며 자장가로 불러주는 이 노래는 아기가 자라고 자라 말썽꾸러기 아이가 되고 괴상한 10대 소년이 되고, 독립한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진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점점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노래를 부를 기운조차 없어지게 된다. 그런 어머니를 이제 아들이 두 팔로 감싸 안고 노래를 부른다.
"사랑해요 어머니 언제까지나
사랑해요 어머니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당신은 늘 나의 어머니"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막 태어난 딸을 품에 안고 어머니가 불러주던 그 노래를 아기에게 불러준다.
나도 그렇게 아이들을 키워왔고 이제는 성인이 되어 독립해서 직장 옆에 살기도 하고, 둘째는 결혼해서 소꿉장난하듯 살고 있다. 돌이켜 가만 생각해 보면 나를 엄마가 되게 해준 우리 아이들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고맙고, 고마운 면이 많았다. 마구 떼를 쓰지도 않고 아픈 것도 잘 참아주고, 부족한 내가 엄마다운 엄마로 성장하게 만들어 준 것도 우리 아이들이다.
아들이 네 살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여덟 식구 끼니 챙기기와 설거지, 빨래 같은 일만으로도 지쳐있던 내가 겨우 보행기에 앉을 정도였던 작은 애를 아들에게 놀아주라고 부탁하고 설거지를 하는데, 딸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아들이 딸의 얼굴이 꼬집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쫓아가서 아들 엉덩이부터 때렸다.
“왜 그래? 아기가 미워?” 하고 소리쳤다.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아들이 말했다. “아니에요. 머리카락이 미워요.”
그래서 보니, 딸 얼굴 왼쪽 볼에 기다란 머리카락 하나가 붙어있었다. 그날 나는 많이 많이 울었다. 아들을 안고 용서를 빌었다.
“미안해, 미안해...”
우리 아들은 천성이 착하고 남들을 잘 돕는 성향인 거 같다. 1학년 때, 같이 놀러 갔다가 잠든 이웃집 친구 동생을 땀을 뻘뻘 흘리며 업고 오는 걸 본 적도 있다. 그 아이의 형은 그냥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동생이 재수할 땐 가끔씩 맛난 별식을 만들어 식탁에 차려 놓기도 했다. 지난 주말 집에 다니러 온 아들이 가방에서 빈 대접을 꺼냈다. 가방에 왜 그런 게 들어있냐고 물었더니 길고양이한테 물을 좀 주느라고 그랬단다.
우리 아들은 나를 많이 공부시켰다.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도 만들었고, 책을 좀 더 읽게 해 주었고, 그 힘들다는 사춘기도 시절도 있는 듯 없는 듯 넘어가서 고마웠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키우는데 힘이 하나도 안 든 건 절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들처럼 밖에서 이상한 욕을 배워온 적도 있고, 친구 집에서 괴상한 동영상을 보고 온 적도 있었다. 성적이 형편없던 때도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육교 건너다가 사고가 나서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 몇 주나 입원했던 적도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어머니가 낮에는 아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다가도 잠든 아들을 보면 절로 사랑 노래가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던 날도 제법 있었다. 힘들었던 순간이 금방 사랑과 위로의 시간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그 전쟁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젊은 부모들은 지금은 깨닫기가 어려울 것 같다. 얌전히 있을 때는 세상 다시없을 것처럼 예뻤다가, 말썽을 부리거나 고민거리를 안길 때는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 여겨진다. 아이들을 쫓아다니고 보살피다 보면 몸은 고달프고, 무엇보다 나 자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허망하기 십상이다. 그 시절 이상하게도 어쩌다 친정 엄마 곁에 가면 왜 그리 잠만 쏟아지던지... 그래도 그런 시간을 갖고 나면 다시 기운을 낼 수도 있었다.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직장까지 다녀야 하는 엄마들에겐 더더욱. 그렇지만 아이들이 주는 기쁨도 말할 수 없이 많다. 그 맑은 눈빛, 밝은 웃음소리, 귀여운 손가락 발가락, 걸음마를 시작하고 엄마 아빠를 찾으며 작은 입에서 나오는 신기한 말들은 또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가!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도 내 아이에게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젊고 예쁜 우리 조카며느리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들을 보며 ‘너는 크고 나는 늙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고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아쉬움 같은 것이 생겼으리라. 육아에 모든 시간을 쏟아야 할 땐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거나 잘하는 일을 맘껏 펼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순간순간 회한이 밀려올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그런 과정들을 거쳐 오고, 중년을 넘기며 다른 젊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들을 보니 아이가 아주 어릴 땐 엄마가 나이 든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도로 젊어지기도 하고 더 일 잘하는 능력자가 되기도 한다. 어른이 된 자녀를 둔 요즘 엄마들이 누나나 언니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50 넘어 더 활기차게 사는 여성들도 많고.
지금은 지난한 시간으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지나고 나면 그게 언제였지 싶을 정도의 짧은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이런 말들이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달픈 엄마들에게 위로 아닌 잔소리가 될까?
우리 선배님의 외손주는 이 책을 읽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가 늙어서 기운이 없어질 때를 상상했을까? 그런데도 이 책을 자꾸 보는 건 아마도 엄마가 불러주는 노래, 아들이 불러주는 노래가 따뜻한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일 거다. 자기도 다르지 않은 아이이기도 하니까 엄마의 사랑을 책으로도 느끼며 언젠가는 늙은 어머니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불러주게 될 어른으로 자라려고 준비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미주지역의 양로원에서 크게 회자되고, 어른이 어른을 위해 사는 책이었다는 것은 분명 그럴만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먼치’에겐 세상의 빛을 못 보고 사산된 두 아이가 있었다. 그가 두 아이를 기리며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라는 노래를 만들었으나 정작 그는 그 노래를 자신의 아기에겐 부를 수 없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장면, 아들이 자신의 딸을 안고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이 ‘로버트 먼치’를 떠오르게 한다.
수줍은 듯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있으면서도 활짝 웃고 있는 ‘로버트 먼치’! 그도 이젠 많이 늙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