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나무 Jan 23. 2023

비밀을 만드는 아이들 2

우빈과 우주

2. 우빈과 우주 

    

토요일 오전, 가족 모두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너희들 방학이 언제라고 했지?”

“7월 25일부터 8월 23일까지요.”

우빈이가 아빠에게 대답하더니 대뜸 우주에게 말했다.

“우주야, 너는 애들이 ‘나무막대기’라고 부르면 기분 나쁘지 않니?”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우주를 ‘나무막대기’라고 부른다는 거야?”

아빠가 궁금해해서 우빈이를 보며 물었다.   

  

“아빠, 애들이 우리가 쌍둥이 인 거는 다 알겠는데 이름이 헷갈린다는 거야. 우주, 우빈이란 이름이 둘 다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이름 같기도 하다면서. 처음엔 2반 강율이란 애가 나를 ‘여자애는 우빈이’ ‘여자 우빈’ ‘여우빈’이라고 부르더니, ‘남자는 우주’ ‘남우주’, ‘남우’ ‘남우’ 하다가 ‘나무’라고 부르고 결국 ‘나무막대기’라고 부르는 거 있지. 그러니까 딴 애들까지 ‘나무막대기’라고 하는 거야. 기가 막혀서.”     

우주는 말없이 밥숟가락을 크게 퍼서 한입 가득 넣어 씹고 있었다. 자기와는 별로 상관없기라도 한 모양으로. 그렇지만 식탁 대화는 별명 얘기로 계속 이어졌다. 

아빠는 그냥

“허헛 참.” 하고 웃었고 엄마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하여튼 애들은 신기해. 어쩜 그렇게 별명을 잘 짓나 몰라.”하고 말했다.

“아이 엄마! 나는 이제 여우가 됐단 말이야. ‘여우빈’이라고 하다가 결국 ‘여우’가 됐단 말이야. 그래서 짜증 난다고.”     


열심히 먹기만 하던 우주가 말했다.

“여자 우빈! 그래서 난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지.”

“여자 유빈? 으~유 너까지? 그게 뭔데?”

“그건 말할 수 없어.”

“뭐야? 말할 수 없는데 왜 꺼낸 거야?”

“일종의 복수라고나 할까? 흐흐흐.”

그러면서 우주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아빠는 우주 눈을 보며 고개를 옆으로 도리도리, 엄마도 

“복수라니? 나쁜 일 꾸미는 건 안 된다!”하며 엄한 표정을 지었다.

우주는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그럴 리가요? 내가 나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지. 그렇다고 당하기만 하는 사람도 아니라고요~”하고 말했다.

우빈이는 속으로 ‘분명 우주에겐 달콤하고 통쾌한 뭔가가 있을 거야.’하고 생각했다. 

    

놀이터 정글짐 위에서 우빈이가 은재에게 물었다.

“혹시 요즘도 내가 부럽니? 출생의 비밀 말고 별명 같은 건 어때?”

“헤헤..  그건 아니지. 너 애들이 여우라고 불러서 속상하지?”

“나는 딴 반 남자애들이 지나가다가 ‘쟤가 여우지?’하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는 걸 들을 땐 그냥 째려보기만 하고 넘어갔거든. 근데 이젠 우리 반 애들까지 걸핏하면 ‘여우야 밥 먹니?’ ‘여우야, 여우야 무슨 반찬?’ 이러니까 짜증 나.”

은재는 우빈이를 위로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우빈이란 이름이 얼마나 멋진데. 어떻게 그런 별명으로 변신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우주랑 쌍둥이로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 거야.”

우빈이는 이제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우빈아, 아줌마 아저씨도 잘 못은 없어.”

“나도 알지. 알아. 아~~ 은~재야! 나를 위해서, 이 지겨운 별명에서 벗어날 방법 좀 생각해 봐봐봐.”

우빈이는 괴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정글짐 틀을 양손으로 움켜  잡으며 분노를 표시했다.


은재는 우빈이의 어깨를 가만가만 토닥여 주었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월요일 오후, 우빈이가 도서관에서 사서 선생님을 도와 아이들이 작성한 활동지를 게시판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이고 있었다. 

갑자기 생긴 별명이 유행처럼 애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속상했지만, 도서관에 가면 ‘꿈다락’에서 은재와 부둥켜안고 울던 생각이 나서 혼자 슬며시 웃음이 나곤 했다. 그날 일로 은재는 스스로 5학년 언니들보다 더 어른스러워진 거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우빈이도 아이들과 사서 선생님도 모르는 비밀을 가졌다는 것이 왠지 큰 보물이라도 품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우빈아, 이거 네 동생이 쓴 건데 참 재밌어. 너도 봤니?”

사서 선생님이 우빈이에게 우주가 쓴 활동지를 내밀며 물었다.

“아뇨. 걔는 동생이 아닌데요.”

“응? 그럼 우주가 오빠니?”

“아뇨. 오빠도 아닙니다.”

“쌍둥이라고 들었는데?”

사서 선생님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우빈이는 할 수 없이 또 설명해야 했다.

“샘~  우리는 쌍둥이인 건 맞지만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우리 엄마 아빠의 철통 같은 비밀이거든요.”

그 바람에 우빈이는 엄마가 어떤 생각으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지, 애들이 이름을 변조해서 억울한 별명 만들어 낸 사연까지 줄줄 늘어놓았다.


“아하하... 별명은 좀 싫겠다. 그래도 우빈아! 너희 엄마 너무 멋있다. 쌍둥이를 같은 급으로 키우겠다는 생각.”

“샘~  나는 기분 안 좋은데, 샘은 재밌다고 웃네요.”

우빈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선생님을 외면했다.

“우빈아, 미안! 여우라고 부르는 애들 내가 혼내줄까?”

“그러면 애들이 더 고약하게 굴지도 몰라요.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거 같아요.”

우빈이가 시무룩하게 얘기하며 우주가 쓴 활동지를 읽어 보았다.    


      


<나무 그늘을 산 총각>을 읽고

                                                         - 4학년 1반 김우주 -    

    총각이 나무 그늘에서 자고 있었다. 부자 영감이 심술을 부리고 내쫓으려고 

    했다.

    그래서 총각은  돈을 주고 그늘을 샀다. 부자 영감은 좋아했다. 

    그런데 그늘이 커졌다. 

    안방까지 그늘이 됐다. 그래서 사람들이 안방까지 차지해도 됐다.

    고소하다. 총각은 화를 안 냈다. 그래도 복수를 한 거나 마찬가지다.

    나도 복수할 일이 생겼다. 

    총각처럼 화내지 않고 재미있게 복수할 방법이 생각났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나는 그런 방법을 생각해 냈다. 아자!  



        

그날 저녁 집에서 우빈이가 책가방을 메고 현관으로 들어서는 우주에게 물었다.

“요즘 너 꽤 바빠 보인다.”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왜? 방송부에서 뭐 하니?”

“거긴 누나 형들이 시키는 심부름만 쪼금 하면 돼.”

우빈이가 ‘그런데?’라는 표정으로 우주를 쳐다보자

“나 혼자 책임지고 해야 하는 일도 있거든.”

뭔가 뻐기는 모양의 몸짓을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우주는 가방에서 필통을 꺼냈다. 그리고 빈 종이를 찾아서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잊기라도 할까 봐 서둘렀다. 숙제보다 급하다는 듯이.                 


작가의 이전글 비밀을 만드는 아이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