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화와 엄지가 만나면...
청정 각시는 마당에 갖가지 꽃을 키우고, 울타리 너머 텃밭에는 여러 가지 채소를 키우며 씩씩하게 혼자 살고 있었어. 그러다 점점 외로운 마음이 생겼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농사의 신 ‘자청비’를 찾아가서 부탁했어.
“자청비님, 자청비님! 엄지만 한 아이라도 좋으니 제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자청비는 간절하게 아이를 원하는 청정 각시에게 작고 까만 씨앗 세 개를 주며 말했어.
“너무 깊지 않게 심어 보세요. 정성으로 기르면 꽃이 피고 거기에서 아기가 태어날 겁니다.”
청정 각시는 설레는 맘으로 집에 돌아와 씨앗 세 개를 깨끗한 물에 담근 후 심을 자리를 찾아보았어. 청정 각시의 집 한쪽은 개나리로 경계를 만들고, 또 다른 쪽은 쥐똥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어. 안쪽 마당 부엌 가까운 곳엔 매실나무와 여름 내내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를 한 그루씩 심어 두었고, 황매화와 민들레, 금낭화, 매발톱꽃, 백일홍과 패랭이를 키우려고 준비한 자리도 있었지.
청정 각시는 지난봄, 채송화가 곱게 피었던 자리가 알맞아 보여 그곳의 고운 흙을 한 줌 집어 씨앗과 섞었어. 물에 담갔던 씨를 흙과 섞어서 땅에 뿌리면 깊게 묻히지 않으니 햇빛도 더 잘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그날 밤 내린 봄비가 씨앗을 옮겨 놓았단다. 울타리 밖으로 밀려간 씨앗 중 하나는 새가 물어가고 또 하나는 두더지가 물어갔어. 다행히 한 알은 뿌리를 내리고 스물 하루가 지나자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청정 각시는 울타리 밖에서 싹이 나는 걸 보고 놀라긴 했지만 정성껏 돌보며 꽃이 피기를 기다렸어. 싹은 단비를 마시고 햇빛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자라, 잎들을 키워 여름이 되자 도라지꽃 같은 모양으로 하얀 꽃을 피웠어. 그리고 씨앗을 심은 지 100일째 되는 날, 드디어 부풀대로 부푼 꽃망울에서 마치 아기 새 노래 같은 소리가 들려왔어.
청정 각시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깊게 심호흡을 한 후, 두 눈과 두 귀를 하얀 꽃에 모아 두었어. 꽃망울은 곧 터질 듯 터질 듯 흔들리고 있었지.
청정 각시는 살며시 꽃망울에 입맞춤을 했어. 그때 ‘퐁’ 하는 소리와 함께 꽃잎이 열렸어. 그리고 그 안에서 ‘아앙~’ 울음소리를 내는 엄지만 한 아이가 보였단다.
청정 각시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억누르며 조심스레 꽃 봉오리를 통째로 따서 두 손에 받쳐 들고 집으로 들어갔어. ‘엄지’라 이름 짓고, 작은 아기에게 맞춤한 이부자리와 옷을 만들고 아기가 먹을 음식도 준비했어.
그 후 청정 각시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며 ‘엄지’를 키웠어. 처음엔 호두알 껍질을 침대로 사용하다가, 나중엔 붉은 석류껍질을 반으로 잘라 말린 것을 쓰게 될 정도로 엄지는 자랐어.
엄지가 쑥쑥 자라 보통 사람처럼 되는 건 아니지만, 청정 각시가 말을 가르치고, 세상의 이치를 가르치면 쏙쏙 배워 큰 기쁨을 주었단다.
여러 계절이 지나고 어느 해 가을, 농작물들을 거의 다 거둬들이는 즈음 엄지가 말했어.
“엄마! 나도 오늘은 엄마를 따라 텃밭에 나가고 싶어요.”
마당까지만 나가 놀고, 일하던 엄지가 이젠 텃밭에 나가도 되겠다 싶어서 청정 각시는 고개를 끄덕여주었지.
텃밭은 울타리 밖에 있었지만, 엄지에겐 아주 넓은 모험의 땅처럼 느껴졌고, 그 끝은 개울과 이어져 있었지. 개울 너머에는 커다란 연꽃 농장이 있었어. 그리고 그 너머에는 너른 들판과 우거진 숲도 있었단다.
청정 각시가 손바닥에서 엄지를 내려놓으며 얘기했어.
“엄지야, 저기 넓은 연꽃 농장이 보이지? 아직은 연잎이 남아 있지만 날씨가 더 추워지면 잎은 다 사라지고 질척 질척한 늪만 남게 된단다.”
“엄마! 나는 이 텃밭을 다 돌아보기도 힘들 거 같아요. 그래도 연꽃 농장이랑 저 먼 숲도 궁금하기는 하네요. 언젠가는 가볼 수는 있겠죠?”
엄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어.
“그래. 나중에 함께 가자꾸나. 나는 서리태를 따야 하니까 너는 여기서 호미를 가지고 놀고 있어. 멀리 가지는 말고.”
청정 각시가 엄지에게 당부하고 콩밭으로 간 후, 엄지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깨밭에서 이삭을 주워 도토리 뚜껑에도 담고 앞치마 주머니에도 담았어. 그리고 개울 가까운 곳으로 걸어가 물이 흘러가는 곳을 바라보다가 호미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웅덩이도 파며 놀았어.
그때, 겨울잠에 들기 전 먹을거리 준비를 하러 개울가로 나왔던 커다란 두꺼비가 엄지를 보게 됐어. 예쁘게 노래하는 엄지가 맘에 들어 아들의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두꺼비는 폴짝 엄지 곁으로 뛰어올랐어.
엄지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꺼비는 긴 혀를 쭈-욱 뻗어 날름 엄지를 낚아채서 폴짝, 폴짝, 폴짝, 포~올~짝 뛰어 연잎 위에 엄지를 내려놓았단다. 엄지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땐 기운을 잃어가는 해가 마지막 빛을 내며 서쪽하늘을 물들이고 있었고, 커다란 엄마 두꺼비와 아들 두꺼비가 다른 연잎 위에서 엄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지.
“엄마, 엄마, 엄마... ”
엄지는 자기가 있는 낯선 곳이 두렵고, 큰 눈알을 굴리며 자기를 보고 있는 두꺼비들이 무서워 울음이 터져 나왔어.
“엄마, 재는 왜 울어?”
“엄마를 찾고 있잖아. 엄마가 있을 줄 몰랐는데... 어쩌지?”
“엉엉~~ 우리 엄마한테 데려다주세요.”
“얘야, 이제 엄마는 잊어라. 듬직한 우리 아들이랑 놀다 보면 재미있어서 엄마 생각은 안 날 거야.”
“싫어요. 싫어. 나는 엄마한테 갈래요. 어엉어엉~”
“와~ 시끄러워~. 쟤는 너무 시끄러운 애야.”
“정말 시끄럽게 우네. 다시 데려다 놓다가 쟤 엄마에게 들키면...? 큰일을 당할지도 몰라. 그냥 우린 집에 갔다가 내일 다시 오자. 내일은 안 울겠지 뭐.”
엄지가 계속 엄마를 찾으며 큰 소리로 울자, 두꺼비 엄마와 아들은 귀를 막고 머리를 흔들며 자기 집으로 가버렸어.
대신 개울에 사는 물고기들이 엄지의 울음소리를 듣고 연꽃 농장으로 모여들었지.
“작은 아이가 울고 있어. 두꺼비에게 잡혀온 거 같아.”
“우리가 이 아이를 도와주자. 연잎 줄기를 잘라서 도망가게 하면 어떨까?”
“그래, 그러자.”
“작은 아이야, 우리가 연잎 줄기를 끊어줄게. 두꺼비가 내일 여기와도 너를 찾을 수 없을 거야.”
물고기들은 힘을 합쳐 연잎 줄기를 끊어주었지.
이제 엄지를 태운 연잎이 천천히 물길 따라 떠내려가기 시작했어.
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꼭 쥐고 있던 호미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물에 빠지지 않도록 연잎을 꼭 잡고 물고기들에게 인사했어.
“물고기님들, 고마워요! 안녕~”
얼마를 흘러갔을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땅거미도 내려앉기 시작했어.
그때, 커다란 풍뎅이 한 마리가 엄지를 발견했어. 풍뎅이는 엄지를 처음 보는 예쁘고 귀여운 벌레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두 발로 엄지를 움켜잡고 멀리 날아서 자기가 살고 있는 참나무 숲으로 날아갔어. 엄지는 풍뎅이에게 잡혀가며 소리쳤어.
“엄마, 엄마, 엄마아~~~”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어. 멀리 희미한 불빛 하나가 보였어. 어쩌면 그것은 저녁마다 부뚜막에 밥 한 그릇을 올려놓고, 문에 등불을 달아 두는 청정 각시 엄마가 켜놓은 등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엄마를 부르고, 또 불렀어.
그 시간 청정 각시는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 검정콩을 열심히 따서 소쿠리에 담다가 엄지 노랫소리도 안 들리고 어디에 숨어 있나 궁금해서,
“엄지야~”
하고 불렀는데 아무 대답이 없는 거야.
깜짝 놀라 엄지를 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녔어. 그러다 개울가에서 흙바닥에 호미로 그린 그림만 가득하고 도토리 뚜껑에 담긴 깨와 흩어진 깨알들을 보게 됐어. 청정 각시는 엄지를 목 놓아 부르며 밤늦도록 헤맸지만 엄지를 찾을 수 없었지.
청정 각시는 가슴을 치고 후회를 거듭하며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고 손과 발은 흙투성이가 되었어. 문간에 등불을 달아 놓고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엄지가 더 걱정되어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단다.
풍뎅이는 엄지를 참나무 가지 꼭대기에 올려놓고 친구들에게 가서 자랑을 했어.
“애들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벌레를 발견했는데 보여줄게.”
풍뎅이 친구들이 참나무 가지에 몰려와서 울고 있는 엄지를 보고 한 마디씩 했어.
“정말 이상하게 생겼네. 노랫소리도 이상하고.”
“너무 말랐잖아.”
“사람만큼이나 못생겼어.”
“게다가 발이 두 개 밖에 없어.”
친구들이 부러워할 줄 알았는데, 모두 엄지를 못마땅해 하자 풍뎅이는 슬며시 엄지를 다시 보며 생각했어.
‘그러고 보니 좀 그런 거 같기도 하네. 에~잇 괜히 데려왔나?’
친구들이 한두 마디씩 푸념을 하고 돌아간 뒤 풍뎅이는 엄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 놔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멀찍한 풀숲 들국화 위에 엄지를 내려놓으며 말했어.
“내가 보기엔 귀여운데, 친구들 말을 들으니 아닌가 봐. 그래도 너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용기 잃지 말고. 안녕!”
풍뎅이는 엄지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는지 자기 말만 하곤 ‘윙윙’ 거리며 사라졌어.
엄지는 어두워진 숲이 무섭기는 했지만 더 이상 울지는 않았어. 두꺼비와 풍뎅이에게서 벗어난 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거든. 달빛의 도움을 받으며 들국화에서 내려와 풀잎에 맺힌 이슬을 마시고 마른풀들을 모아 잠자리를 만들었어. 너무 고단해서 쓰러질 것 같았거든. 날이 밝으면 엄마에게 돌아가리라 마음도 먹었어.
다음 날 아침, 엄지는 집에서 쓰던 자기 밥그릇과 비슷한 졸참나무 열매 도토리 뚜껑을 발견하고 엄마 생각이 나서 울컥했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엄마를 꼭 찾아 가리라 결심했어.
그런데 어떤 방향으로 가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지. 텃밭 너머 개울과 연꽃 농장, 그리고 들판과 숲이 있던 풍경이 떠올랐어. 개울은 엄지네 집 남쪽으로 있었던 게 기억났어. 개울은 서쪽으로 휘어지다가 다시 남쪽으로 흐르고 그 왼편에 연꽃 농장이 있던 것도 기억났어. 어쩌면 연꽃 농장까지만 갈 수 있다면 집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지.
‘곧 추운 겨울이 될 텐데 그전에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엄마는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엄지의 작은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어.
엄지는 참나무 숲을 헤매며 몇 날 며칠을 보냈단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엄지는 개똥벌레들을 만났어. 추워서 그런지 뒤쪽 배에서 나오는 빛도 희미해 보였어. 엄지는 여름밤에 밝은 빛을 내며 날던 개똥벌레들을 엄마와 본 적 있어서 무척 반가웠어.
“안녕하세요, 반디님들? 저는 엄지라고 해요. 엄마와 집을 잃었어요.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저런~ 어쩌다가 그렇게 됐나요?”
“두꺼비가 납치를 했고 그다음엔 풍뎅이에게 잡혀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런데 집으로 가는 방향을 잘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도 길을 잃었어요. 여름이 끝나갈 무렵 앞장서서 날던 지도자들이 뒤쪽으로 비추던 불빛을 꺼트리는 바람에 뒤쳐진 우리 셋이 무리를 찾을 수 없게 됐거든요. 엄지 아가씨는 어떤 곳에서 살았나요?”
“우리 집은 연꽃 농장 북쪽에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지나온 곳일 거 같네요. 아침에 해가 뜨면 그림자가 가는 방향을 보고 북쪽을 찾아보세요. 더 추워지기 전에 집을 찾기 바랄게요.”
“고맙습니다. 반디님들도 얼른 가족을 만나면 좋겠어요.”
“그럼, 안녕~~”
“안녕히 가세요.”
다음 날, 엄지는 추위를 느끼며 아침을 맞았어. 하얀 눈이 내려 해님은 볼 수 없었지. 엄지는 마른 나뭇잎을 어깨에 두르고 걸었어. 얼마나 걸었을까? 몹시 춥고 배가 고팠어. 그나마 앞치마 주머니에 있던 깨알은 이제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어. 이젠 호미와 졸참나무 열매 뚜껑만 있을 뿐. 배고픈 건 그래도 참을 수 있었지만 퍼붓는 눈은 작고 여린 엄지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었단다.
햇빛이 있다면 땅에 막대기를 꽂아 그림자 방향을 보고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짐작할 수 있으련만 눈은 쉽게 그칠 거 같지 않았어.
“엄마, 엄마........”
안간힘을 쓰며 엄마를 불러보았지만, 사방은 쥐 죽은 듯 적막하기만 했어.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엄지는 마른 지푸라기가 뭉쳐져 있는 둥근 구멍에서 어떤 시선 같은 게 느껴졌어.
“거기 누구 계세요?”
힘들게 한 마디 하며 엄지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단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렴풋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엄지가 힘겹게 눈을 뜨고 보니, 지푸라기로 된 바닥에 누워 마른 나뭇잎 이불을 덮고 있었어.
“이제 깨어났나요?”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들쥐가 음식을 준비하며 말했어.
“네~ 고맙습니다. 들쥐 아주머니가 저를 구해주셨군요.”
“아직은 몸이 완전치 않을 테니 그냥 누워 있어요. 사연은 천천히 들읍시다.”
들쥐의 다정한 말에 안심이 되어 긴장이 풀어지면서 엄지는 까무룩 다시 정신을 놓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어.
그 후, 엄지는 들쥐와 살면서 배를 곯지 않았고, 따뜻한 잠자리에서 잘 수도 있었지. 엄지는 들쥐에게 감사하며 집안일을 열심히 돕고 들쥐가 못 하는 일도 척척 해내서 들쥐를 기쁘게 해 주었어.
“엄지 아가씨 덕분에 내 집이 예뻐지고, 살림도 많이 늘었어요.”
“저에게 주신 도움에 비하면 별거 아닌 걸요. 추위에 얼어 죽지 않고, 굶어 죽지 않은 건 모두 들쥐 아주머니 덕분이에요.”
“나는 엄지 아가씨가 아카시아 줄기로 뜨개질하는 걸 가르쳐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따뜻한 스웨터를 떠서 두더지 양반에게 판 덕분에 먹을 것도 이렇게 풍부해졌고.”
들쥐는 감자와 고구마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어.
엄지는 감자와 고구마를 보니 또 엄마 생각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단다.
그걸 보고 들쥐가 말했어.
“이제 엄마 생각은 그만하고, 지난번에 두더지 양반이 했던 말이나 다시 생각해봐요.”
“그럴 수 없어요. 나는 햇빛도 볼 수 없는 집에선 못 살아요. 더구나 나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을 엄마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엄마를 찾으러 갈 거예요.”
“하긴 나도 엄지 아가씨가 두더지 양반과 사는 것보단 나랑 사는 게 더 좋아요. 그렇지만 엄마를 찾아가는 건 쉽지 않을 거 같아요. 두더지 양반집으로 가는 길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제비를 봐요. 새도 제 갈 길을 못 찾는데.......”
“제비님 날개가 제법 많이 나았으니 봄이 되면 날 수 있을 거예요.”
“그건 엄지 아가씨가 치료를 해준 덕분이지.”
“아니에요. 들쥐 아주머니가 갖고 있던 병풀을 아주머니가 나눠주신 덕분이죠. 예전에 호랑이도 다치면 병풀 위에서 뒹군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들었거든요.”
들쥐는 제비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지는 자기가 먹을 음식을 조금씩 남겨 제비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말하지 않았어.
들쥐의 집에서 산지도 꽤 지나, 차츰 긴 밤이 짧아지고 피부에 닿는 공기도 매섭지 않은 게 느껴졌어. 엄지는 제비를 찾아갔어.
“제비님! 이제 봄이 오고 있어요. 날개는 좀 어떠세요?”
“엄지 아가씨 덕분에 많이 건강해졌어요. 그렇지만 겨울 내내 이 동굴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훨훨 날지는 못 할 거 같아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까요?”
“벌써 충분히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저에게 호미가 있어요. 땅을 파면 제비님에게 드릴 벌레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걸 드시면 더 힘을 낼 수 있을 거고.”
그날부터 엄지는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호미로 흙을 파곤 했어. 손이 부르트도록 일을 하는 엄지를 보고 들쥐와 두더지는 못마땅해했지. 엄지는 들쥐에게 호미로 파낸 흙구덩이에 감자 싹을 심으면 감자를 많이 키울 수 있다고 얘기했어. 그 얘기를 듣고 들쥐는 두더지 보다 큰 부자가 될 희망에 부풀었단다.
엄지가 흙구덩이를 계속 파다 보니 애벌레가 잠들어 있는 곳도 점점 많이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졸참나무 열매 뚜껑 가득 제비에게 줄 벌레를 담을 수 있었지.
제비는 엄지가 주는 벌레들을 먹고 튼튼해졌어. 동굴 밖에서 차츰 먼 거리를 나는 연습을 하다가 드디어 까맣고 반지르르한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얀 배를 드러내며 날렵하게 높이높이 날아오르게 되었어.
“엄지 아가씨! 이젠 내가 먹을 거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어요. 아가씨의 집도 찾아 줄게요.”
“아, 아 고마워요. 제비님!”
엄지는 들쥐와 두더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들쥐에겐 호미를 선물로 주었지.
엄지가 제비의 등에 올라타고 하늘을 날아오를 때, 들쥐는 아쉬움에 눈물이 찔끔 났어. 그렇지만 호미를 사용해서 감자 싹을 심을 생각으로 기쁘기도 했지. 두더지는 귀여운 친구가 떠나는 게 섭섭하긴 했지만,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엄지를 축복해 주었어. 그런데 땅 위에 있는 건 불편해서 작별 인사를 하자마자 얼른 땅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
“제비님,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건가요? 우리 엄마가 사는 집은 연꽃 농장보다 북쪽에 있어요.”
“네~ 나도 알고 있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좀 먼 거 같네요. 아직 좀 쌀쌀한 기운도 있으니 조금 쉬었다가 가야겠어요.”
“미안해요, 제비님. 제가 마음이 너무 급했나 봐요.”
엄지와 제비는 너른 들판 가운데 있는 원두막 지붕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어. 그런데 원두막 아래에서 어떤 사람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청정 각시는 어떻게 지내려나? 내가 너무 오랫동안 먼 길을 돌았는데...”
엄지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제비에게 말했어.
“제비님, 저를 원두막 아래로 내려주세요. 저분은 도랑 선비님이 분명해요.”
엄지는 제비 등을 타고 원두막으로 내려가며 소리쳤어.
“도랑 선비니 임~~~”
“누구신가, 나를 아는 분은?”
제비가 원두막 안으로 살포시 내려앉자 작은 엄지가 보였지.
그 후, 엄지는 어떻게 됐을까?
원두막에서 우연히 만난 도랑 선비는 청정 각시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던 남편이었어. 엄지가 누구인지 몰랐던 도랑 선비는 엄지에게 지난 이야기를 듣고 기뻐서 눈물이 날 정도였지.
“너와 함께 집으로 가면 청정 각시가 얼마나 좋아할까?”
엄지도 도랑 선비를 만난 게 너무 좋아 제비와 헤어지는 아쉬움은 금방 잊고 말았단다.
재잘거리는 엄지를 어깨에 앉히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랑 선비의 모습이 울타리 너머를 하염없이 보고 있던 청정 각시의 눈에 들어왔어.
그동안 몰라보게 수척해진 청정 각시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 나갔어. 도랑 선비와 함께 돌아온 엄지를 보고 더욱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어. 몇 번이나 엄지를 품에 안으며, 도랑 선비 손을 맞잡으며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끊임없이 나왔지.
세 사람은 며칠 동안 서로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래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단다.
그런데 도랑 선비는 어디서 뭘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거냐고? 그건 다른 얘기니 다음에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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