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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무 Jan 29. 2023

비밀을 만드는 아이들 5

아이들이 간직한 비밀

5. 아이들이 간직한 비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우빈이는 길거리에 버려진 전기난로를 우주가 요리조리 살피는 걸 봤다.

“야! 김우주, 너 뭐 하냐?” 하고 물었다.

우주는 ‘쪕!’하는 소리를 내더니, 

“이건 안 되겠다. 전기 코드를 꽂을 데가 없으니...”하고 말했다.

“뭐냐? 수상한데.”

“내 집을 갖는다는 게 쉽지 않아.”

“점점 웃기는 걸. 너도 비밀이라도 만들고 있는 거니?”

우빈이는 뭔가를 알아내려 하고, 우주는 능청스럽게 피해 갔다.

“무슨 말씀을? 나는 김우빈 씨가 숨기고 있는 비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

우빈이는 사서 선생님이 도서부 활동이 끝난 후 은밀하게 불렀던 일을 떠올리며,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두 아이가 책방 앞을 지나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곰씨 아저씨가 책방에서 나오다가 우주와 우빈이를 봤다.

“어이, 우주! 요즘 날씨가 꽤 쌀쌀한데 괜찮겠어?”

“네, 그래서 고민이에요.”

“흠. 그렇지? 이젠 책방에서 놀면 되지 않을까?”

우빈이는 우주의 비밀을 곰씨 아저씨와 관계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뭐지? 혹시 책방과 관계있는 거 같은데?”

우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실은, 아저씨가 나한테 집을 임대해 주셨어.”     

그리곤 뒤뜰에 있는 작은 집으로 안내했다.


우빈이가 우주의 집을 들여다 보고 의자에도 앉아보며 감탄했다.

“캬아~  너 어느새 이렇게 많이 꾸며둔 거야?”

“하하하... 너는 그렇게 눈치가 없냐? 지난번에 책방 뒤뜰 음악회 때 여기서 의자 꺼낼 때도 못 봤지?”

“그야 네가 아저씨랑 아줌마 돕는 아르바이트 한다고 했으니까 그런 줄만 알았지. 그런데 임대라니 웃긴다.”

“아저씨가 나한테 열쇠 주면서 나한테 임대하는 거라고 하셨거든. 잘 꾸미고 깨끗하게 잘 사용하면 내년에도 임대해 주신댔어.”

“내년엔 나한테 해주면 안 될까?”

“노, 노. 나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은재가 이 사실을 알면 참 재미있어할 텐데...”

“은재한테 말해도 돼. 강율이도 가끔 여기서 같이 놀아. 이젠 비밀도 아니니까 너랑 은재도 놀러 와도 돼. 집들이 선물도 가져오면 더 좋고.”     

그 후, 네 아이는 가끔씩 우주의 집에서 같이 놀기도 했다. 부족했던 의자는 곰씨 아저씨가 준 간이 의자로 넉넉해졌다. 우빈이와 은재만 따로 그곳에서 만날 때도 있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우주의 허락이 필요하긴 했다. 아이가 주인인 집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 ‘곰씨콩책방’에서 어린이를 위한 심야책방 행사가 열렸다. 보통 어른들을 위한 심야책방은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시작되지만, 11월 마지막 주 심야책방은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라서 6시에 시작했다.

“우리 ‘곰씨콩책방’의 심야책방 행사에 참석해 주신 어린이 여러분 반갑고 감사합니다.

책방이 좁아 뒷마당에서 함께 영화를 볼까 생각도 했는데, 춥기도 하고 신청한 어린이도 10명이 안 돼서 모임방에서 오붓하게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준비한 참치 주먹밥과 귤을 먹으며 ‘인사이드아웃’을 함께 보고 얘기 나누기로 해요. 이 영화는 여러 해 전에 개봉한 거라 미리 본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본 사람?”

콩 아줌마가 아이들을 돌아봤다. 여자 아이 두 명이 손을 들었다.

“또 봐도 괜찮겠지?”

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콩 아줌마는 플레이 버튼을 누르며 우주에게 눈짓을 보냈다. 우주가 일어나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껐다. 아줌마는 뒤쪽에 앉아 있는 아이를 안고 있는 어른 옆으로 가서 앉았다.

      

우빈, 은재, 강율이는 모두 두 번째 줄에 나란히 앉고 우주는 맡은 역할이 있어서 셋째 줄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은재는 우빈이에게 심야책방 행사 얘기를 듣고 신이 났다. 더구나 행사 끝나고 우주 집에서 더 늦게까지 놀 수 있도록 부모님 허락을 받아보자는 말에 ‘꺄~~’ 소리까지 지르며 좋아했다.

그런데 우빈이의 제안을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았다.

“우빈아! 너희들끼리 밤에 책방 뒷마당에서 지내는 건 허락할 수 없어. 곰씨 아저씨랑 콩 아줌마에게도 민폐야. 대신, 행사 끝나고 은재랑 강율이를 우리 집에 초대해서 파자마 파티 하는 걸로 하자.”     

그 소식은 은재와 강율이에게도 곧 전해졌고, 우빈이의 엄마와 통화한 은재 엄마, 강율이 엄마의 허락도 쉽게 받았다.


금요일 밤이 더디게 오는 거 같았지만, 어느새 금요일이 되었고 책방행사가 끝나도 더 신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아이들을 설레게 했다.

영화가 끝나고 각자의 마음에 살고 있는 감정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강율이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우주네 집에서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는 동안에도 머릿속으로 세 아이에게 어떻게 말할까를 생각하며 참았다.     

“밤늦게 기름진 음식은 옳지 않은 거 알지? 그래도 밤새 놀려면 배고플지도 모르니까 식탁 위에 군고구마랑 과일 꺼내 놨어. 적당히 먹으렴.”

엄마는 조금 냉정하게 말했다.

“잘 자라. 아니, 잘 놀아라~”

아빠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모습만으로도 좋은지 싱글벙글했다.

우주와 우빈이의 엄마, 아빠는 아이들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안방으로 일찍 들어갔다.

“안녕히 주무세요~~” 

손님으로서 예의를 지키며 얌전하게 조용조용 움직이던 은재와 강율이가 긴장을 풀고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 나눠서 들고 우주방으로 가자.”

우빈이가 고구마와 귤, 깎아 놓은 단감을 쟁반에 담으며 말했다. 우빈이 방은 안방과 가까웠고, 우주의 방은 거실 건너편에 있어 좀 떨어져 있었다.

“우리 집도 곰씨 아저씨네 집처럼 다락방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마당도 너무 작고 2층도 없어서 아쉬워.” 우주가 말했다.

“여기 위 3층에 있는 집은 다른 사람들이 사는 거야?” 은재가 물었다.

“응.” 우빈이가 대답하며 쟁반을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강율이가 참았던 말들을 잊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얼른 내놓기 시작했다.

“나는 말이야, 아까 영화 볼 때 자꾸 우리 아빠가 생각났어.”

“아빠가 왜?” 은재가 묻자,

“실은 엄마랑 아빠랑 이혼해서 자주 못 만나거든.”

강율이가 하는 얘기에 아이들은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내가 화나거나 슬픈 이유는 대부분 엄마, 아빠 때문인 거 같은데 우리 엄마 아빠를 화나게 만드는 게 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어. 지난번에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할머니 하고 사는데 알고 보니까 엄마는 죽었지만 아빠는 살아 있는데도 애를 보러 오지도 않아.”

“아, 그 <0에서 10까지 사랑의 편지>?”

“맞아. 주인공 이름은 에르네스트야. 걔는 비밀이 싫다고 막 그래. 왜 아빠가 자기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났는지, 할머니는 왜 그런 얘기도 안 해주는지 진실을 모르니까.”

“나도 비밀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런 비밀은 싫을 거 같다.”     

강율이는 여러 얘기를 하는 동안 응어리지고 서러운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어른스러운 말이 절로 나왔다.

“이젠 내가 아빠나 엄마를 위로해야 할지도 몰라.”

우주가 말없이 강율이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얘들아~ 비밀이란 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우빈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좋은 거도 있고, 나쁜 거도 있는 거 같아.”

“에르네스트 아빠, 할머니의 비밀은 애를 너무 힘들게 했으니까 안 좋아. 그렇지만 내가 비밀장소를 가진 건 누구를 힘들게 한 건 아니니까 나쁜 건 아니지? 지금은 비밀도 아니고.”

“어떤 비밀은 누군가를 지켜주거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려고 하는 것도 있을 거야.”     

우빈이가 또 물었다.

“지금 너희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니?”

은재가 살짝 강율이를 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나 있어. 근데 나쁜 거나 속이는 건 아니야. 좀 부끄러워서 아직 말 안 하는 거지.”

강율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우리 엄마가 이혼했다는 얘기가 왠지 부끄러웠어. 그래서 말하기 싫었던 거야. 그런데 그거 말고도 하나 더 있기는 해.”

“나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어.” 우빈이가 말하자, 우주가 뭔가를 안다는 듯이 얼른 말했다.

“으응. 그거는 너 2주 동안 설거지 벌 받은 거랑 상관있지?”

“상관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아직은 말 못 하겠어.” 우빈이는 대답하며 엄마에게 썼던 편지를 생각했다.                                                      

 


엄마!

나는 은재랑 가출할 거야.

놀랐지? 놀라게 해서 미안해.

아무도 모르게 둘이서만 학교 도서관에 숨어 있을 거야.

거긴 벌레도 없고, 깨끗하고, 낯선 곳도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학원 선생님에게 못 간다고 거짓말을 할 거야.

엄마가 벌을 주겠지?

각오는 돼있어. 1주일 동안 저녁 설거지는 내가 할게.     

*부탁인데, 우주에겐 절대절대 말하면 안 돼요. 전교에 다 소문나면 안 되니까.

 은재에게도 이 편지는 비밀로 해주세요. 

 가출 장소를 발설한 걸 알면 나를 원망할지도 몰라. 

 베프한테 그런 원망은 듣고 싶지 않아. 

 나중에, 나중에 내가 직접 얘기할게.  

                                   -기대와 걱정으로 많이 쫄리고 있는 우빈-



세 아이가 이 자리에서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있다고 말하자, 우주도 생각해 봤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비밀이 없다고 말하기도 싫었다. 비밀이 없다는 거는 좀 어린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밀이 없다는 걸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나도 비밀이 있어. 물론 나도 말 안 할 거니까 뭐냐고 묻지도 마.”     

아이들은 밤이 깊도록  마음속에 비밀 하나씩을 간직한 채 오래오래 얘기만 해도 좋았다. 다음 날 해가 높이 뜬 후 아이들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며칠 후, 은재는 세 아이에게 아기 동생이 생기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렸다. 몇 주 후엔 강율이가 조심스럽게 어쩌면 자기도 동생이 생길지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음- 우리 엄마가 재혼을 할 거 같아. 2학년 딸이 있는 아저씨랑.”

세 아이는 축하를 해주었다. 강율이가 기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12월 5주째 월요일은 방학 전 마지막 날이었다. 은재가 아이들에게 중요한 소식이 있다면서 수업 끝나고 책방에서 모이자고 말했다. 

콩 아줌마는 ‘곰씨콩책방’에 만나는 아이들이  참 예뻤다.

“얘들아~~ 삶은 땅콩 맛 좀 봐. 아주 맛있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은재야! 중요한 소식이 뭐야? 동생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게 됐어?”

“아니. 슬픈 소식이 있어.”

“뭔데?”

“나 전학 가야 해.”

우빈이와 강율이 눈이 동그래졌다.

“왜?”

“어디로?”

“토요일에 우리 엄마가 일하는 보건소 동네에 집 계약도 끝냈대. 나는 어떻게 하냐고 막 울었더니 아빠가 설명해 줬어.”

“뭐라고 하셔?”

“엄마가 이 동네까지 출퇴근하느라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어서 아기한테도 안 좋대. 그리고 나는 이만큼 컸으니 할머니 도움이 없어도 될 거 같다는 거야. 어제는 엄마 아빠랑 같이 거기 가봤어. 시골이야.”

“여기서 멀어?”

“아빠는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렸어. 아주 먼 건 아니래. 이사 갈 집은 2층 집이고 다락방도 있어. 이사 간 다음에 엄마가 너희들을 초대하겠다고 약속했어.”     

갑작스러운 이별이 슬프면서도 은재네 집에 모여 놀 수 있다는 게 기대되고, 시골 생활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학교도 가봤어?”

“응. 운동장이 넓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 합해서 57명이래. 4학년은 내가 전학 가면 딱 열 명이 된대. 너희들 꼭 우리 집에 와야 돼. 알겠지?”

은재가 아이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처음 이사 얘기를 들었을 때 은재는 많이 울었다. 일요일에 이사 갈 집과 전학 갈 학교와 마을을 둘러보고 절망적인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다. 특히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여자 아이에게 아빠가 말을 걸었을 때,

“와~  전학 오는 친구? 안녕? 나도 4학년이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며 스스럼없이 은재에게 반갑게 인사해 줘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엄마가 은재에게 말했다.

“은재야, 엄마가 일하는 보건소는 바로 옆에 있어. 우린 밖에서도 수시로 만날 수도 있을 거야. 학교 방과 후 수업도 여러 가지로 잘 갖춰 있고, 도서관도 참 좋더라.”

그때 은재는 생각했다. 

‘우빈이가 전학 와서 절친이 됐고, 우빈이 덕분에 도서관이나 책방이 즐거운 공간이 된 거처럼 나도 다른 아이들에게 우빈이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겠구나.’  

   

우빈이는 은재와의 이별이 슬프고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은재와 헤어져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떠올랐다.

“은재야! 나한테 편지해. 나도 답장할게. e메일 말고 손 편지.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그런 거 받고 싶어.”

“나한테도 편지해 줘.” 강율이도 서운한 마음을 감추며 덤덤하게 말했다.

“응. 그럴게. 보건소 옆에 우체국이 있으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우주가 한 마디 했다. 

“전교생을 다 알정도로 작은 학교에, 엄마 직장도 바로 옆이면 비밀 편지 같은 건 어렵겠네.”

“비밀 편지? 그건 또 만드는 방법이 생기겠지 뭐. 하하하”

비밀이란 말에 조금은 우울했던 분위기가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우빈이는 벌써 은재에게 편지로 할 말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엄마에게 남겼던 편지 얘기와 도서관에서 읽은 조선시대 천재 화가 김홍도가 엄청 잘 생긴 인물이었다는  얘기와 알려지지 않은 김홍도의 비밀을 알아보고 싶다는 것까지...     

아이들이 삶은 땅콩을 까먹으며 방학 때 은재네 집에 가서 하고 싶은 놀이에 대해 얘기를 계속 얘기하고 있을 때, 콩 아줌마가 모임방에 들어왔다.

“얘들아, 어제 새로 들어온 책인데 재미있어. 너희도 읽어 볼래?”

콩 아줌마가 테이블 위, 땅콩 그릇 옆에 책 한 권을 내려놓았다. 

책 제목은 <비밀을 만드는 아이들>이었다.

네 아이 모두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 같은 애들 얘기인 가봐.”

“엄마한테 사 달래야지.”

“나도, 나도.”

“콩 아줌마! 이 책 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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