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 집… 무언가가 틀림없이 숨어 있다.”

https://brunch.co.kr/@baengjoon/1034

1~4부를 이어지는 글



� 5부: 13계단의 불안과 노파의 경고

밤이 깊어지자, 집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 쇼오지는 원고를 덮고 마치모토와 함께 거실 불을 끈 채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낮에는 그저 평범하게 보이던 계단이, 밤에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13계단은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지만, 마지막 계단은 유독 검게 보였다. 붉은 얼룩이 비친 듯한 색감이 은은하게 번져 있었다. 쇼오지는 그것이 단순한 착시인지, 아니면 오래된 피의 흔적 같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삐걱— 하고 나무가 뒤틀리는 소리가 계단 밑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선배님, 바람 때문이겠죠.” 마치모토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바람이라기엔… 너무 안쪽에서 나는 소리야.” 쇼오지는 계단을 응시한 채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집은 지나치게 깔끔했다. 먼지 하나 없이 정돈된 공간이었지만, 그 정갈함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흔적을 지우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치장한 듯한 느낌. 쇼오지는 그 깔끔함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때였다. 정적을 찢고, 창문 너머에서 삐걱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한 노파가 담장을 붙잡고 서 있었다. 머리는 흰 천처럼 흐트러져 있었고, 눈빛은 광기에 잠겨 있었다.


“이 집에서 당장 나가! 저주받은 곳이야!”


노파의 외침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뼛속 깊이 파고드는 저주 같았다.


마치모토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냥 미친 사람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쇼오지는 쉽게 넘길 수 없었다. 그 노파의 눈빛은, 단순히 광기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을 알고 있는 자의 절박한 경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노파의 울부짖음이 멎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그러나 쇼오지의 가슴속에서는 그 목소리가 여전히 메아리쳤다. 계단의 붉은 빛과 삐걱거림, 그리고 광기 어린 경고가 하나로 엮여 점점 더 큰 불안으로 번져갔다.

쇼오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집… 무언가가 틀림없이 숨어 있다.”


� 6부: 수상한 비밀

밤이 깊어갈수록 집 안은 더욱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긴장을 담고 있었다.


쇼오지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했다.


“아무 일도 아니야.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거야.”


그는 그렇게 속삭이며 계단을 올랐다. 하지만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소리는 단순한 목재의 마찰음이 아니라,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는 듯한 무게감을 품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 공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미세한 한기가 스며들어 목덜미의 털이 곤두섰다. 테이블 위에 두었던 펜이 미묘하게 다른 위치에 놓여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내가 저기 두지 않았던가?”


사소한 변화일 뿐이라고 합리화하려 했지만, 그 순간 불길한 생각이 스며들었다. “이 집은 살아 있는 게 아닐까?”


마치모토는 여전히 태연했다.


“선배님,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닐까요? 낡은 집이면 원래 삐걱거리기도 하고, 바람도 탈 수 있잖아요.”


그의 가벼운 말투는 상황을 희석시켰지만, 쇼오지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동행의 태연함이 자신을 더 고립된 듯 느끼게 했다.


그날 밤, 계단 아래에서 미묘한 움직임이 들려왔다. 발자국 같기도 하고, 시계 초침이 늘어진 듯한 메아리 같기도 했다. 쇼오지는 온몸을 굳힌 채 귀를 기울였다. 정적 → 삐걱거림 → 속삭임 같은 기운이 이어졌다.

문득 낮에 만난 노파의 외침이 떠올랐다.


“저주받은 곳이야! 당장 나가!”


그는 순간 목구멍이 메어왔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


스스로 되뇌었지만, 심장은 거짓말을 허용하지 않았다. 벽에 걸린 낡은 액자가 스스로 흔들리는 듯 보였고, 그림 속 인물의 눈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쇼오지는 알 수 없는 불안과 싸우며 결심했다.


“이 집에는 분명히 뭔가 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 비밀을 밝혀야 한다.”


� 7부: 드러나는 살인의 추억

쇼오지는 깊은 밤, 옆집 노인의 집을 찾았다. 낮에는 평범하게 보였던 집 안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바닥은 여전히 반짝이도록 깨끗했지만, 그 위에 흐르는 공기는 묵직하고 차가웠다. 습기 섞인 냄새가 코를 찌르며 오래된 혈흔처럼 진득한 불쾌함을 남겼다. 순간 쇼오지는 자신이 발을 디딘 공간이 더 이상 같은 장소가 아님을 깨달았다.


“어서 와요.”


노인은 조용히 말했다. 여전히 공손한 태도였지만,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친절을 가장한 미소 뒤에서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직감이 쇼오지의 등을 서늘하게 스쳤다.


마치모토는 긴장을 풀려는 듯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이분은 그냥 혼자 사는 노인이에요. 괜히 오해하시는 거 아닐까요?”


그러나 쇼오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식탁 위에 놓인 작은 찻잔에 꽂혀 있었다. 은은한 향이 퍼지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 몇 주 전, 마치모토가 그 집에서 얻어온 음료를 마신 뒤 갑작스러운 졸음을 호소했던 순간. 그때 이미 노인은 시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집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었을까요?” 쇼오지가 낮게 물었다.


노인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마치 들키는 것을 즐기는 사람처럼 미소 지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선택을 지켜봤을 뿐이지.”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속내는 너무나 명확했다. 쇼오지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살이라던 소문은 모두 위장된 살인이었다.


마치모토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그게 정말…”


“믿지 마.” 쇼오지는 단호히 속삭였다. “그의 말은 전부 거짓이야.”


노인은 마치 두 사람의 불안을 즐기듯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당신들도 곧 알게 될 거요. 진실을 알면… 편안히 잠들 수 있지.”


그 순간 쇼오지는 찻잔의 향 속에 스며든 기묘한 쓴맛을 느꼈다. 차가운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노인은 또다시 ‘잠의 음료’를 준비한 것이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작은 방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지만, 쇼오지의 심장은 귀 옆에서 북처럼 울려댔다. 그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 밤, 그들은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 8부: 마지막 계단

집 안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바람 한 점 없었고, 그 고요 속에서 오히려 더 크게 들려오는 심장의 두근거림이 쇼오지의 귓가를 울렸다. 노인은 여전히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손끝에서 내민 잔에는 불길한 냄새가 스며 있었다.


“이 차를 마시면 한결 편해질 겁니다.”


노인의 낮은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속에 감춰진 무언가가 있었다.


쇼오지는 순간 깨달았다. 잠이 오는 약, 아니—죽음을 불러오는 독이 섞여 있음을. 마치모토를 향해 내밀던 음료가 이제는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당신… 지금껏 모두를 이렇게 속여왔군.”


쇼오지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단호했다.


순간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래된 가면이 벗겨지듯, 부드럽던 눈빛이 날카로운 칼날로 바뀌었다. “너도 결국 알아버렸군. 하지만 늦었어. 이 집은 내 것이다. 이 계단도, 이 고요도, 전부 내가 지배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노인의 손아귀는 의외로 강했고, 순간 쇼오지는 계단 난간에 부딪히며 숨이 막혔다. 그러나 더 튼튼했던 그의 몸은 끝내 노인을 제압했다. 음료수가 바닥에 엎질러지며, 은은한 약 냄새가 섞인 차가운 기운이 방 안에 퍼졌다.


노인은 무너진 채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넌… 살아남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집은… 아직…”

그의 목소리는 허공 속으로 스러졌다. 방 안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쇼오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밑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이전과 달랐다. 두려움 대신, 해방감이 깃든 듯했다. 그러나 마지막 계단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 쇼오지는 몸을 멈췄다.


낡은 나무가 내는 삐걱거림이 또다시 귓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여전히 누군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낮고 길게 이어지는 울림이었다.


쇼오지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집 전체가 살아 있는 듯, 어딘가에서 그를 조용히 응시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 소리는… 아직도 존재한다.”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집, 그리고 13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