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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낯선 남자를 만나다.

1. 지하철 낯선 남자를 만나다


"뭐? 네가 그럴 수 있는거냐? 내 명의를 가지고 장난을 쳐?"


철희는 지하철에서 깜빡 졸다가 호통 소리에 잠이 깨었다. 지하철 한쪽에서 한남자가 얼굴이 상기된 채 통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명의 도용으로 피해가 발생한 것이었다.


남자는 그 목소리에 왠지 그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남자와 처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려야 할 종로3가를 지나친채, 그 남자의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남자는 몹시 화가 났는지 어쩔 줄 몰라했다.


"오늘 죽을 줄 알아! 그게 어떠한 돈인데!!"


통화가 끝난 남자는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를 되뇌인 다음, 때로는 멍하게 때로는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가 섰다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본 철희는 말을 걸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말을 걸까 말까를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잘못하면 맞을것 같았다. 하지만 철희는 꼭 물어봐야 할 이유가 있었다. 30분쯤 흘렀을까? 철희는 조용히 그 남자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저.. 저기요.."


"뭐요!!!"


그 남자가 째려봤다. 말 잘못 걸면 한대라도 맞을듯한 분위기였다. 그남자의 눈은 금방이라도 레이져를 쏠것 같이 쏘아보았다. 철희는 괜히 말을 걸었나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래도 용기를 냈다.


"저기.. 선생님, 지금 명의도용으로 사기를 당하신것 같은데...."


"그게 뭐 어떻다는 거요?"


남자는 귀찮다는 듯, 철희에게 쏘아붙이듯이 말을 하며 자리를 일어서려고 했다. 그때였다.


"저도 당해서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요.."


"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오?"


"저는 2억을 사기 당했습니다..."


"2.. 2억이요??"


순간 그 남자의 눈이 커졌다. 남자는 예상하지 못했던 철희의 말에 당황한 듯 말을 이어갔다.


"지금 2억이라 했소? 잠깐 내려서 무슨 일인지 이야기나 들어 봅시다. 잠깐 내리죠."


그렇게 철희와 남자는 지하철을 내렸다.


2. 낯선 곳 그리고 낯선 이야기

그렇게 철희와 낯선 남자는 의정부 지하철 역에 내렸다. 곧 비라도 내릴 듯 겨울의 저녁은 어둡기만 했다. 철희는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지하철이 아닌 낯선 동네로 이동한다는 것 자체는 위험 부담이 컸다. 철희는 얼마전 신문에서 보았던 납치, 장기매매 기사를 떠올리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낯선 남자는 근처의 커피숍으로 가자고 했다. 철희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으며, 낯선 이곳까지 따라왔을까? 곧 근처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커피 한잔 사죠. 제가 살게요. 나는 잡상인이오.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지금 이렇게 되었소. 지금은 물건을 끌고 다니며 집집마다 들어가서 판매하고 있죠. 당신, 도대체 무슨 일 있었던 겁니까?"


"제가 아는 지인께 사기를 당했어요. 그분이 명의를 빌려달라고 해서 제가 허락을 한 후 6개월 정도 많에 2억의 빚이 생겼어요. 지금도 후회하고 있지만 제가 소극적인 성격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제 후배가 신용불량자인데 제 핸드폰을 빌려가서는 소액대출을 받았습니다. 그 돈을 결국 갚지 못했죠. 제 명의로 개통한 핸드폰으로 대출을 받아서 못갚아서 저에게 연락이 온거에요. 제 비용은 200만원 가량 됩니다."


"아. .그렇군요.. 액수가 큰 줄 알고.."


"무슨 소리요? 20만원이든 200만원이든 나같이 하루 벌어 사는 사람에겐 큰 돈이라고요!!"


"근데 제게 왜 말을 거신거죠?"


"제가 남들에게 큰소리도 잘 못치는 스타일인데, 선생님을 뵙고 조언을 구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기꾼한테 큰소리도 못치고 하도 제가 답답하니까.."


"뭐가 무섭다고 그럽니까? 당신이 피해자 아니에요?"


"제가 그 형님과 만날때 조폭이랑 같이 있는걸 본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고소를 하면 해코지 할까봐 무서웠어요"


"허.. 참. 이런게 사람 죽이는 거지 다른게 있겠소? 그리고 그런 사기꾼들은 절대 해코지 않해요. 그들이 잘못한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철희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가 팔을 걷어 붙이며 팔의 문신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봐요 학생, 내가 폭력 전과 2범인데..."


철희는 순간 움찔했다. 폭력전과라니 내가 괜히 말을 걸었던가..


"법은 아주 무섭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필히 벌을 받아야 해요. 저도 잘못했으니까 벌 받고 있죠. 그 사기꾼 반드시 벌을 받을 거니 걱정마세요. 해코지? 절대로 못합니다. 그리고 그 사기꾼 돈도 없을 거 같은데 기다리면 다른 피해자 또 만드는 거에요"


"저는 돈을 갚을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약간 주기도 했고..."


"이봐요. 그러면 그렇게 피해자로 있을 겁니까? 본인이 방조 했다는 생각 안들어요? 그런 사람은 절대 돈 벌어서 안 갚아요. 다른 사람 사기 쳐서 돈을 갚지.. 그러면 본인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데 일조한거요. 알겠소?"


철희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였다. 


"이봐요~ 그런말 있죠? 전화위복, 본인이 착하게 살았다면 지금 이렇게 힘들어도 다시 좋은 일로 돌아올 겁니다. 그까짓거 고소하고 파산하면 되죠. 그리고 돈 열심히 벌어서 갚으면 되지 뭐가 걱정입니까? 아직 한참 돈 벌 그런 나이구만."


철희는 고개가 푹 숙여졌다. 낯선 남자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살면서 한번은 사기를 당해요. 저처럼 3번 이상 당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착하게 살았으면 다 살아날 구멍이 있는거라구요. 허허 당신 때문에 오늘 물건 팔러 다니기는 다 틀렸네 허허~"


그러다가 갑자기 남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하는 것이었다. 옆에 있는 물건을 손으로 가리키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봐요~ 학생! 당신 돈 많아요?"


철희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 상담을 빌미로 물건을 강매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돈 많냐구요?"

"네?"


"그렇게 돈이 많아서 2억 빚 생겼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겁니까? 돈 많으면 어서 빨리 잊어 버리시던가!! 아니면 빨리 처리 해야죠!! 월 이자가 얼마에요? 500? 그돈 그렇게 허망하게 갖다 바칠 작정입니까? 내 참.."


철희는 순간 그 남자를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빨리 신고하고 정리할 건 정리하세요. 그게 본인이 살 길입니다!!"


둘은 3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정부 역 앞에서 그남자는 너털 웃음을 지으며 힘내라는 당부까지 했다. 그분이 간 뒤에야 철희는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의정부 지하철 역 한 구석에서 철희는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벌겋게 변한 눈을 닦으며 하늘을 보니 어느새 어둠이 가득차 있었다.


'그래 해가 뜨기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어'


철희는 나약했던 자신을 위로하며 굳게 마음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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