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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검은 봉다리

볕이 따스한 어느 겨울,


중년은 버스 정류장에 홀로 앉아 졸고 있다. 
앞은 깔끔하게 닦았지만 많이 닳은 구두의 뒷굽은 그의 깔끔한 성격과 동시에 고단한 일과를 말해주는 듯 하다. 

겨울이 지나가는지 따뜻한 볕에 그는 피곤한 몸을 잠시나마 맡기고 안식을 취하고 있다. 이때 검은 비닐봉다리가 눈에 들어 왔다. 얼핏 보니 돼지 고기와 소주 한병이 들어 있다. 



나의 오래전 기억에 아버지는 검은 비닐봉다리와 함께였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책임진 아버지는 우리가 저녁을 다 먹은 늦은시간에 술에 취해 들어 오셨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지 않았다. 그날이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손엔 검은 비닐봉다리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옛다!!"

아버지는 봉다리를 던져 놓으시고는 한쪽 방 구석에 눕자마자 곯아 떨어지셨다. 

나와 동생들은 봉다리 안에 들어있는 통닭을 먹기에 바빴다. 물론 그 안에 있는 소주병은 한쪽으로 치운 채로. 

하루하루 우리들을 어렵사리 키워온 아버지의 뒷모습이 그 중년과 참으로 닮았다. 
중년의 옆에 놓인 저 고기는 고단한 오늘을 위로하는 자신의 방법이자 그 하나만을 기다리고 있을 식구들을 위한 것일게다. 집에가면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차가 도착했다. 
중년은 곧 일어섰다. 
비닐 봉지를 든 손이 떨린다. 
차에서 누군가 내린다. 

"회장님, 여기에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감기 드세요. 전화 하시라니까.."

중년은 그렇게 벤츠를 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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