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회자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가.
레퍼런스
1. Upton Sinclairs The Jungle (Harold Bloom)
2. 영화 '영웅본색1,2'
일과 경영: 환상 속 균형, 현실 속 희생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회자되는 시대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개인적인 행복과 직업적인 성취 사이의 완벽한 조화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갈망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오랜 시간 비즈니스 세계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수많은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통해 얻은 결론은 다소 냉혹합니다. 바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환상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비즈니스 세계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때로는 그 대가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합니다.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The Jungle)에서 주인공 유르기스 루드커스(Jurgis Rudkus)의 이야기는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리투아니아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시카고로 이주한 유르기스는 오직 “나는 더 열심히 일할 거야(I will work harder)” 라는 신념 하나로 가족을 부양하려 합니다. 그는 정직한 노동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시카고의 거대한 육가공 산업은 그에게 약속된 기회의 땅이 아니라 ‘정글’ 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가장 적합한 자의 생존” 이라는 다윈주의적 논리가 잔혹하게 적용되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덕성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유르기스는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며, 결국 “인간의 고통을 사회주의에 대한 설교로 바꾸면서 소설이 무너진다” 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그의 경험은 성실함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냉혹한 비즈니스 환경과, 그 속에서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끔찍한 희생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일은 그의 삶을 파괴했고, 워라밸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 <영웅본색>(A Better Tomorrow)은 또 다른 차원의 희생을 이야기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누아르가 아니라 ‘의리’와 ‘형제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개인들의 고통스러운 선택과 희생 을 그립니다. 주인공 송자호는 조직의 보스로서 동생 송자걸의 안녕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하고, 그의 의형제 마크(주윤발)는 “고개를 들어 봐. 네 형이다. 형은 새 삶을 살 준비가 되었는데 넌 왜 형을 용서할 용기가 없는 거야. 형제란….” 이라는 대사를 통해 자호의 헌신을 대변합니다. 자호는 동생에게 “자걸, 넌 잘못한 게 없다. 우린 서로 가는 길이 달랐다. 네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야. 하지만 나도 이제 바른 길로 가고 싶구나.” 라고 말하며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갈망하지만, 과거의 업보는 그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가족과의 화해마저 가로막습니다. 결국 그는 의리를 지키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합니다. 비즈니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서는 개인의 명예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상상 이상의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때로는 그 희생이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죠.
이들 작품이 그려내는 ‘정글’과 ‘암흑가’는 우리 시대의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강력한 은유입니다. 우리는 유르기스처럼 “그저 평범한 호텔 포터로 남을 운명이지만, 사유의 영역에서는 끊임없는 모험을 한다” 는 허울뿐인 만족감에 갇히거나, 송자호나 마크처럼 ‘의리’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불사르는(완전연소)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 있습니다. 사업의 성공은 종종 개인의 시간, 관계, 심지어는 도덕적 원칙까지 희생하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이기심 외에는 어떤 관심도 없는 소유주들” 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승진하는 사람을 만나면 악당을 만나는 것” 이라는 냉소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워라밸은 이상적인 목표일 수 있지만, 현실의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환상’에 가깝습니다. 진정한 성취는 종종 엄청난 개인적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냉엄한 현실 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의 길은 다를 수 있지만, 비즈니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희생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가치를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선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