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하늘을 가르며 불길이 도시를 삼키고 있었다. 건물은 무너져 내리고, 거리는 뜨겁게 달궈진 채 울부짖었다. 사람들의 비명은 연기 속에 묻히고,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가는 순간이었다. 카메라는 불길 속에서 우뚝 선 한 사람을 포착한다. 그의 몸은 화염에 휩싸인 듯 흔들렸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검 대신 호스를 들고 서 있었고, 그 순간 그의 모습은 전장의 무사와도 다름없었다.
화마(火魔)는 살아있는 우주다. 스스로를 태워 빛을 내고,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팽창한다. 그 앞에 선 인간은 한낱 먼지와 같다. 사무라이가 죽음의 경계에서 길을 찾듯, 소방관은 불길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불꽃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 나는 그 위에서 춤추는 자. 매 순간이 마지막인 듯, 한 걸음 내디딜 뿐."
불길의 폭력적인 포효 속에서 모든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문명은 한 줌의 재로 변하고, 인간의 오만은 녹아내린다. 손자(孫子)는 전쟁을 '삶과 죽음의 문제요, 안전과 파멸의 길'이라 했다. 이곳은 절망적인 땅(desperate ground)이며, 모든 행위는 마지막인 것처럼 행해져야 한다. 이 찰나의 순간에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뜨거운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곳에서 나는 오직 나의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 내 본성은 모든 것을 삼키려는 불꽃에 맞서, 모든 것을 지키려는 의지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이 지옥을 견디는가? 명예도, 부도, 심지어 생존 본능마저도 이 맹렬한 열기 속에서는 무력하다.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상황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고통에 의미가 없다면, 삶에도 의미는 없다. 나는 이 잿더미 속에서 타인의 삶이라는 의미를 건져 올린다."
나의 '왜'는 바로 저 너머에 있다. 연기 속에 갇힌 누군가의 내일, 무너진 벽 뒤에 남겨진 가족의 기억. 타인을 위한 자비심과 연민(仁)은 무사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덕목이다. 가장 용감한 자가 가장 다정하며, 사랑하는 자가 가장 대담하다. 삶이 내게 던지는 이 혹독한 시련은 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의 이유는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다. 외부의 힘은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지만, 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선택하는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 나는 이 고통을 통해 타인의 삶을 구원함으로써 내 삶의 의미를 완성한다.
이 깨달음은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생각만으로는 불길을 잡을 수 없다. 노자(老子)는 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이치다.
"나는 물의 길을 따른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가장 강한 것을 이기는 도(道). 이 호스는 나의 검이요, 이 물줄기는 나의 혼이다."
무사에게 검이 혼이듯, 소방관에게 호스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의지의 연장이며, 생명을 구하는 자비의 검이다. 물줄기는 나의 기백이며, 불의 폭력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다. 행위 자체에 몰입할 때, 나와 도구와 행위는 하나가 된다.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오직 눈앞의 과업에 집중할 때, 물은 나의 일부가 되고 나는 물의 길이 된다. 가장 부드러운 힘으로 가장 파괴적인 힘을 제압하는 것, 그것이 나의 싸움 방식이며 나의 길이다. 불길이 잦아들고 연기가 걷힐 때, 남는 것은 잿더미뿐만이 아니다. 그곳에는 고통을 이겨낸 존엄과, 의미를 찾아낸 한 인간의 영혼이 서 있다.
불길은 서서히 잦아들고, 연기가 걷히자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검게 탄 뼈대와 무너진 잔해뿐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 서 있는 한 인간의 실루엣은 재와는 달리 꺼지지 않은 빛을 품고 있었다. 땀과 재, 그리고 고통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은 결코 패배의 얼굴이 아니었다.
카메라는 그의 손에 들린 호스를 비추고, 이어 그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한다. 불길은 꺼졌지만, 그 눈 속의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불이 아니었다. 타인을 지키려는 의지, 그리고 고통 속에서 발견한 의미의 불꽃이었다.
화면은 천천히 줌아웃하며 잿더미 위에 홀로 선 그의 뒷모습을 담는다.
“모든 것을 태운 불길 위에, 다시 피어나는 건 인간의 존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