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는 거대한 벌판 위에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거대한 벌판 위에 홀로 서 있었다. 사방에서 눈이 몰아쳤다. 땅은 얼어붙었고, 공기는 차갑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검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탑이 있었다. 매끄러운 암흑의 벽, 끝없이 빛나는 룬들이 박혀 있는 거대한 기계의 성벽 ― 그것이 바로 공포의 탑이었다.


u4567179574_epic_fantasy_illustration_wide-angle_view_endless_8e4b25e0-e57c-43c2-bbbd-64eed0bdfafa_0.png


남자는 두 아이를 뒤에 세우고,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발걸음은 얼음 위를 디딘 듯 불안했고, 손은 차갑게 떨렸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지금 이 탑을 정복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굶주린 채 이 설원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룬을 건드리는 순간, 탑은 기묘한 빛을 내뿜으며 비웃듯 울렸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의 가슴은 더 거칠게 뛰고, 등 뒤로는 군중의 그림자가 몰려왔다. 끝없는 눈보라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등을 찌르며 속삭였다. 서둘러라. 실패한다면, 넌 무너진다.


“아빠, 빨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그의 심장을 파고드는 칼날 같았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룬을 눌렀지만, 탑은 또다시 오류의 불꽃을 토해냈다. 순간, 그는 무릎이 꺾일 뻔했다. 자신감은 서서히 사라지고, 두려움이 짙은 안개처럼 눈앞을 가렸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 전사처럼, 이 싸움은 끝내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한 번 더, 손끝을 곧게 펴고 심호흡을 했다. 눈보라 속에서 두 눈을 치켜뜬 그는 다시 벽을 눌렀다.


그리고 마침내, 탑은 길을 열었다. 빛의 문양이 사라지고, 승리의 신호가 화면 위에 떠올랐다. 남자는 무릎이 풀린 듯, 마치 오랜 전쟁을 마친 전사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번졌고, 그는 고개를 숙여 이마의 땀을 훔쳤다.


그 순간―


“도저히 안되겠다. 저기, 여기 좀 도와주실래요?”

u4567179574_bright_humorous_illustration_inside_a_modern_fast_be475cc6-f777-4746-ae44-226ed60859a4_1.png


사실, 그는 눈보라 위의 전사가 아니라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이던 한 아버지였고 뒷사람들을 의식하며 주문을 망설이다, 결국 점원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오스크를 두려워 하던 한 아버지의 이야기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독한 투쟁과 인간 존엄에 대한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