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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사라진 뒤에야, 우리는 고요의 얼굴을 알아본다

“폭풍이 사라진 뒤에야, 우리는 고요의 얼굴을 알아본다.”


어둠이 가라앉은 방 안, 작은 등불 하나가 흔들리며 긴 그림자를 벽에 드리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뒤엉킨 숨결과 신음으로 가득했던 공간은, 이제 적막과 함께 무겁게 내려앉았다. 창문 너머로 스며든 새벽의 바람은 아직 차갑고, 그 공기 속에는 오래된 울음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카메라는 천천히 바닥을 훑으며, 마치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듯 남아 있는 자국들을 비춘다

— 흘린 눈물, 움켜쥐었던 손자국, 그리고 다시 펴진 흔적.


인간의 삶은 고통이라는 직물 위에 짜이는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같다. 어떤 고통은 너무나 생생하여 세상의 모든 빛을 삼켜버리고, 오직 그 아픔만이 유일한 현실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악몽 속에서 헤매는 듯, 우리는 그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다른 무엇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고통이 곧 세계이며, 세계가 곧 고통이다. 희망, 기쁨, 평온과 같은 단어들은 멀고 희미한 메아리처럼 들릴 뿐, 피부를 찢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아픔의 감각만이 실존의 전부가 된다.


그러나 시간은 가장 무심한 치유자다.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가장 격렬했던 감정의 소용돌이마저 잠재우고, 모든 것을 무던하게 흘려보낸다.


**“한때는 세상의 전부였던 고통이여, 이제 보니 그저 밤하늘을 스친 반딧불의 섬광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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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반딧불이 찰나의 빛을 내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듯, 우리를 잠식하던 그 극심한 고통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을 뿐이다. 그 빛이 아무리 강렬했다 한들, 영원히 타오를 수는 없는 법이다. 고통의 본질은 영속이 아니라 덧없음에 있다.


과거의 고통을 돌이켜보는 행위는 마치 낡은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보는 것과 같다.


**“깨어나려 애쓰던 악몽은 지나고 나니, 풀잎 위에 맺혔다 사라지는 이슬 한 방울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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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악몽 같은 현실도, 회복의 강을 건너고 나면 그저 희미한 자국으로 남는다. 고통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지만, 더는 우리를 잠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역사서에 기록된 전쟁처럼, 과거의 사실로 존재할 뿐 현재의 우리를 위협하지는 못한다. 이 깨달음은 고통 속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오직 인내하고 살아남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결국 고통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거창한 승리나 보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이다.


**“그 끔찍했던 흔들림이 멎자, 비로소 세상의 고요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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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처럼, 가장 큰 고통이 할퀴고 간 자리에는 역설적으로 가장 깊은 평온이 깃든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자신의 유한함을 깨닫고, 회복을 통해 삶의 강인함을 배운다. 고통은 우리를 부서뜨리지만, 그 파편 위에서 우리는 더욱 단단한 자아를 재건한다. 지나간 고통의 풍경은 더는 아프지 않다. 그것은 다만 우리가 얼마나 멀리, 그리고 굳건하게 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일 뿐이다. 그 풍경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긴 이야기를 끝낸 듯, 작은 방 안은 완전한 고요에 잠겼다. 창문 밖으로는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밤새 타올랐던 등불은 마지막 불씨를 남긴 채 잦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불빛뿐이었고, 남은 것은 고통을 지나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요한 평온이었다.


카메라는 천천히 줌아웃하며, 방 안의 인물이 창가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담는다. 더 이상 고통은 그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나간 풍경,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비추는 조용한 이정표였다.


“폭풍이 사라진 뒤에야, 우리는 고요의 얼굴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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