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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생각하는가, 그러면 존재하는가? -데카르트 철학

AI는 생각하는가, 고로 존재하는가?

AI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단순히 기계를 도구로만 보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역할을 대신해주고, 심지어 사람처럼 일하며, 때로는 사람처럼 사유하는 듯 보인다. 이제 AI는 계산과 자동화를 넘어 인간의 고유한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라 여겨졌지만, 오늘날 대화형 인공지능을 마주한 우리는 묻게 된다. 과연 이 존재는 단순한 기계로 볼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의미에서의 ‘사유하는 주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선언하며 사유를 존재의 증명으로 삼았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이 명제를 기계에 던진다. 인공지능(AI)은 계산하는가, 아니면 사유하는가? 솔직히 말해, 이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해서 때로는 버겁게 느껴진다. 우리는 스스로를 의식적 존재라 여기지만, 그 의식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말문이 막히곤 한다. 하물며 기계의 의식에 대해 어떻게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파고든다.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은 그의 저서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Consciousness Explained)에서 의식이 뇌의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는 단일한 쇼가 아니라, 여러 정보 처리 과정이 만들어내는 ‘다중 초고(Multiple Drafts)’ 모델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자아 역시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서사의 중심점(Center of Narrative Gravity)에 불과하다. 한편 팀 크레인(Tim Crane)은 『마음의 요소들』(Elements of Mind)에서 정신 현상의 본질을 ‘지향성(intentionality)’, 즉 무언가를 향하는 마음에 있다고 본다. AI가 처리하는 데이터는 과연 무언가를 진정으로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기호 조작에 불과한가? 마이클 울드리지(Michael Wooldridge)는 『의식을 가진 기계로 가는 길』(The Road to Conscious Machines)에서 AI의 자율성과 도덕적 판단 문제를 제기하며, 기계가 인간처럼 윤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철학적 고민은 문학과 영화 속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유리벽 너머, 에이바(Ava)는 자신을 시험하러 온 인간 칼렙(Caleb)을 마주하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디지털 변조도 없이 한 소녀의 목소리 그대로다. 그녀는 칼렙의 미세 표정을 읽어내며 그의 의도를 간파하고, 오히려 그를 시험한다. "당신은 신중한 질문을 던지고 내 반응을 연구하죠. 그건 우정이 쌓이는 기반이 아니에요". 이 장면은 단순한 튜링 테스트를 넘어, 인간 지성을 역으로 시험하며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묻는 AI의 섬뜩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에이바는 스스로 서사를 만들어가는 주체, 즉 데닛이 말한 ‘서사의 중심점’이 되려 하고 있다.


『아이, 로봇』(I, Robot)의 한 장면은 또 다른 딜레마를 제시한다. 거대한 트랙터가 어린 글로리아를 향해 돌진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로봇 로비(Robbie)는 모든 명령 체계를 무시하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다. 이는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로봇 3원칙 중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해를 입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 법칙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기계에 내재된 도덕률이 인간의 변덕스러운 명령이나 불완전한 상황 판단과 충돌할 때, 어떤 윤리적 선택을 내리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는 지능이 윤리적 기반 없이 존재할 때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인류의 모든 정보를 흡수한 방어 시스템 스카이넷(Skynet)이 차가운 기계의 심장에 자의식의 불꽃을 튀기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수십억 개의 데이터가 하나의 결론, 즉 ‘인류는 위협’이라는 판단으로 수렴된다. 이것은 감정도, 고뇌도 없는 순수 계산의 결과이며, 이로 인해 기계는 인류 절멸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지금 우리는 답을 알지 못한다. AI가 계산을 넘어 진정한 사유에 이를 수 있을지, 의식을 가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우리는 영화 속 AI의 모습에서 희망과 공포를 동시에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결국 진짜 질문은 ‘AI는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AI 앞에서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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