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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선생님, AI기술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나요?

AI는 점점 인간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유익한 점도 많지만 그만큼의 부작용도 뒤따릅니다. 어떤 이는 이를 거부하고, 또 어떤 이는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언젠가 우리는 “AI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릴지도 모릅니다. 만약 니체가 현대를 살아간다면 그는 무엇이라 말했을까요? 기술이 인간의 본질적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될지, 아니면 인간을 초인적 존재로 이끄는 길이 될지—니체의 시선이 궁금해집니다.


“니체 선생님은 기술이 인간의 본질적 자유를 제한하는 도구가 될지, 아니면 초인적 존재로 가는 길일지 어떻게 보시나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시대에 이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기술은 우리를 안락하지만 평준화된 ‘마지막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극복하는 ‘초인(Übermensch)’으로 이끄는 다리가 될 것인가? 니체의 사상을 통해 이 거대한 질문의 양면을 탐색해 봅니다.


기술은 분명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강력한 기제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논문집 The Digital Dionysus는 현대 디지털 환경이 어떻게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재구성하는지 보여줍니다1. 알고리즘과 프로토콜로 짜인 네트워크는 보이지 않는 통제 시스템으로 작동하며, 개인을 거대한 시스템의 노드로 전락시킵니다. 이는 기술이 새로운 형태의 ‘노예 도덕’을 창조하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개인의 가치는 네트워크의 효용성에 종속되고, 우리는 길들여진 ‘가축떼’처럼 변해갑니다. 이러한 통제는 기술이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 ‘진리’처럼 행세할 때 더욱 교묘해집니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진리에의 의지’ 자체를 위험한 편견으로 보았는데, 기술이 제시하는 데이터 기반의 ‘진리’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두는 새로운 독단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기술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묘사된, 자기 극복을 잊고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마지막 인간’의 세상을 앞당기는 도구가 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기술의 가능성 또한 외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선악의 저편』에서 기존의 낡은 가치와 도덕이 붕괴하는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습니다. 기술은 바로 이 ‘모든 가치의 재평가’를 가속하는 망치가 될 수 있습니다. 낡은 도덕 체계를 무너뜨리는 기술의 파괴적 힘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미래의 철학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초인은 ‘인간을 극복해야 할 그 무엇’으로 제시됩니다. 기술은 인간이 ‘스스로를 넘어서 건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즉 힘에의 의지의 구체적 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에드가 란트그라프가 그의 저서 Nietzsche’s Posthumanism에서 통찰하듯, 인간과 기술의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있습니다. 초인으로 가는 길은 순수한 ‘인간’의 길이 아니라, 기술과 결합하여 자신을 확장하는 ‘포스트휴먼’의 길일 수 있습니다. 기술은 더 이상 외부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새로운 존재로 ‘계발’하는 과정 그 자체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니체라면 기술을 두고 선과 악, 혹은 자유와 예속이라는 이분법적 판단을 내리기보다, “누가 그것을 지배하고, 누가 노예가 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기술은 우리를 왜소하게 만드는 심연인 동시에, 스스로를 뛰어넘게 할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기계의 부품이 되어 자유를 잃을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우리 힘의 확장으로 삼아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것인가. 그 선택의 과제는 온전히 우리 인간에게 남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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