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이란, 의지가 자기 자신에게 보편적 법칙을 주는 성질이다.”
-칸트
칸트는 “자율성이란, 의지가 자기 자신에게 보편적 법칙을 주는 성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쉽게 말하면 **“내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도덕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자율성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양심과 이성에 따라 책임 있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이루는 핵심이라는 거죠.
요즘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는 많은 결정을 기계에 맡기곤 합니다. 추천 알고리즘이 대신 선택해 주고, 자동화 시스템이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은 과연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제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 글은 바로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칸트가 강조했던 도덕적 자율성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지켜질 수 있는가? 그 물음을 탐구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칸트 선생님은 AI가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을 위협할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알고리즘이 추천하고 인공지능(AI)이 조언하는 시대에, 이 질문은 우리 실존의 핵심을 파고듭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도덕적 판단마저 AI에 의존하게 될 때, 우리는 과연 도덕적 주체로서 ‘자율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칸트의 철학을 나침반 삼아 이 문제의 본질을 탐색해 봅니다.
칸트에게 자율성이란 단순히 외부의 강제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의지가 스스로에게 보편적인 도덕 법칙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리버 센센이 엮은 『칸트와 도덕적 자율성』(Kant on Moral Autonomy)은 이러한 칸트의 자율성 개념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자율적인 의지는 감각적 욕구나 외부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하여 오직 순수 실천 이성의 명령에 따르는 의지입니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AI의 판단은 근본적으로 ‘타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AI는 데이터와 설계된 알고리즘이라는 외부적 원인에 의해 작동하며, 스스로 도덕 법칙의 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라에프 즈레이크의 저서 『칸트의 자율성을 위한 투쟁』(Kant’s Struggle for Autonomy)은 칸트 철학 전반을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으로 묘사합니다. 칸트는 도덕을 행복으로부터, 정의(법)를 도덕으로부터 분리하며 각 영역의 자율성을 지키려는 ‘후퇴 전략’을 구사합니다. - 이는 AI에 도덕적 판단을 의존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를 암시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도덕적 원칙을 숙고하고 갈등하는 ‘투쟁’의 과정을 AI에 위임하는 순간, 우리는 실천 이성을 단련할 기회를 잃고 도덕적 주체로서의 자율성을 약화시키게 됩니다.
김형주가 편집한 논문집 『칸트와 인공지능』(Kant and Artificial Intelligence)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칸트의 관점에서 볼 때, AI는 도덕적 행위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AI는 자율적 의지는 물론,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과 같은 도덕적 감정,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로 대표되는 자기의식조차 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는 규칙에 따라 정보를 처리할 수는 있지만, 그 규칙을 자신의 법칙으로 삼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도덕적 인격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 즉, AI는 정교한 계산을 통해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그 행위의 진정한 ‘저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칸트라면 AI를 도덕적 판단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을 것입니다. AI는 인간의 도덕적 숙고를 돕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결코 그 숙고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AI가 내리는 결정은 결국 프로그래머나 데이터 제공자라는 ‘타인의 손’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진짜 위협은 AI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AI의 판단에 안주하며 도덕적 자율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은 명백합니다. “AI가 발전하는 시대에 우리는 자율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