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극장의 낡은 영사기를 돌리는 마지막 남은 유령의 이야기
"빛은 기억을 싣고 먼지를 통과한다."
어둠이 굳어버린 극장 안, 시간은 먼지처럼 쌓여만 갔다. 붉은 벨벳 의자는 색을 잃고 해진 채 침묵했고, 무대 위에는 찢어진 막이 유령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춘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은 희미한 형체의 유령이었다. 반투명한 몸으로 뽀얀 먼지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 낡고 거대한 영사기가 잠든 영사실로 향했다.... 끼익, 하고 녹슨 문이 열리고, 유령은 차가운 기계에 손을 얹었다. 릴에 감긴 낡은 필름은 부서질 듯 위태로웠지만, 투명한 손가락은 익숙하게 필름을 기계에 걸었다. 스위치가 올라가자, 둔탁한 소음과 함께 영사기에서 한 줄기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줄기 속에서 수억 개의 먼지 입자들이 은하수처럼 춤을 추었고, 그것은 멈춰버린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불꽃이자 생명의 숨결 같았다.
"스크린 속의 너희는 말이 없지만, 나는 너희의 온기를 훔쳐 살아간다."
화면 위로 흑백의 세상이 펼쳐졌다. 낡은 필름 특유의 불규칙한 선과 점들이 비처럼 내리는 가운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유령은 텅 빈 객석 한가운데 홀로 서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유령의 유일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유령은 그들의 표정에서 기쁨을 읽었고, 그들의 어깨동무에서 우정을 느꼈다. 반투명한 손을 들어 스크린을 향해 뻗었지만, 차가운 빛의 장막에 닿을 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 필름이 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스크린의 한 부분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불꽃은 순식간에 번져나가 웃고 있던 친구들의 얼굴을 까맣게 집어삼켰다. 마지막 남은 온기마저 사라지는 절망감에 유령의 텅 빈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필름이 끊어진 순간,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재가 되고 영사기의 빛마저 꺼졌다. 그러나 유령은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다. 늘 타인의 기억, 낡은 필름 속 이야기만을 반복해왔을 뿐이었다. 그것은 끝없는 과거의 재생이었고, 자신은 없는 텅 빈 반복이었다.... 이제 모든 필름이 사라진 지금, 영사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극장 밖 세상. 밤의 장막 아래, 도시의 불빛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꺼져버린 영사기의 빛과는 다른, 살아있는 빛들이었다. 유령은 깨달았다. 자신은 버려진 극장의 마지막 유령이 아니라, 단지 극장에 머물렀던 마지막 유령일 뿐이라는 것을. 필름이 끊어진 순간, 비로소 자신만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음을. 낡은 영사기는 차갑게 식어갔지만, 극장 밖 세상의 불빛은 유령의 텅 빈 형체를 처음으로 따스하게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