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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던 그 마지막 눈빛

살아있는 자의 마지막 눈빛이란 어떤 것인가?


얼마 전 소방관이셨던 형님과 식사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형님은 소방관 일하시면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였나요?" 


나의 질문에 형님은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말이 없다가 한참 후에야 말을 하셨다.


"너 삶의 마지막 순간에 삶을 잡으려는 사람의 눈빛을 본 적이 있니?"


예상 외의 대답이라 당황했던 나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제 주위엔 그런 사람이 없어서.."


형님은 한참을 망설이시더니 말을 시작하셨다.


"몇 해전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였단다.  신고를 받고 출발한 집은 아주 오래되어 사람이 산지 오래되어 보이더구나. 집 주인이 몇달째 집에서 인기척이 없는것 같아서 신고 했다고 해서 가보았지. 잠겨진 문을 겨우 열고 들어 갔더니 집에는 곰팡이가 쓸어 있고 밥통의 밥은 언제 먹었는지 곰팡이가 쓸어 있고 설겆이도 그래도 하지도 않은채 말라 비틀어져 있더구나. 그곳에 한 노인이 누워 있더라 겨우 숨만 쉰채로..."


형님은 계속 말을 이어 가셨다.


'그 노인은 암 말기 판정을 받았지만 병원비가 모자라 결국 집에서 삶을 마감하기로 했는데 그 사람을 병원으로 옮겨야 했어. 몸은 비쩍 마를 데로 말랐고, 몸속의 창자와 내장은 이미 썩을 때로 썩어 숨을 쉴 때마다 오물 냄새가 퍼져 그를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웠었지. 아마도 암이 이미 온 몸을 감아 썩어가는 산 송장 같은 상태였던것 같아. 그런데 말야..."


나는 그 말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을 형님은 일상적으로 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형님은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신 후 입을 여셨다.


 "그런데 말야.. 그 사람의 눈빛만은 살아 있더구나. 삶을 갈구하는 그 눈빛. 어떻게든 살아 있는 동안 보이는 많은 것들을 눈에 조금이라도 담아보려는 그 강렬한 눈빛 말야. 그런 눈빛을 마주하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겠니? 나는 아직도 그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아. 혹시 네가 산 오늘이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는 말 들어 본적 있니?"


"그럼요. 오늘은 어제보다 소중하다는 말이잖아요"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아. 늦으면 그때 후회 해도 소용 없어. 후회 없는 삶이 가장 좋은 삶인것 같아"


형님과 헤어지면서 삶의 마지막 순간의 나는 어떤 눈빛을 가지고 있을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떤 마지막을 볼 것인가. 정말 잘 살았다고 후회없는 삶 속에 즐겁게 눈을 감을까?


아니면 아쉬움으로 가득한 눈빛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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