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리더십 제10화 - 십자가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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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리더십 제10화 - 십자가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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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들떠 있니?"

"오늘이 부활절이라고 계란을 나눠주잖아요. 이히히.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행복한 날인거 같아요."


"자네는 부활절에 계란을 나눠주는 이유를 알고 있니?"

"그럼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셨는데 계란을 깨고 나타나오셨다는 그런 의미로 계란을 나눠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부활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지 3일째 되는날,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기념하는 날로, 성서기록에 따르면 초대 교회에는 떡을 떼서 나누어 주었단다. 그러다 부활절 달걀과 부활절 토끼로 바뀌게 되었지. 결국 부활절을 함께 기린다는 것이네"

"떡이요? 저는 떡이 더 좋은데"


"마침 교회에서 떡도 나누어 준다고 하니. 함께 나누자구나"

"교수님도 드세요"


우리는 자리에 앉아 계란과 떡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로마는 예수를 죄인으로 심판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을 했지. 십자가형은 참수형보다 잔혹하단다. 고통을 느끼게 하니 말이지"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사람은 그런면에서 보면 참으로 잔인한 것 같습니다."


"사탄은 사람을 통해서 조롱한단다. 우리 주변을 잘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지. 사람만큼 잔인한 존재도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 자네가 생각하기에 예수께서 돌아가셨을 때 느꼈을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십자가에 못박히신 고통 아닐까요?"


"그렇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위에 올라간 예수는 고통을 그대로 받기 위해 몰약을 탄 포도주까지 마다하셨지. 그리고 십자가에 그대로 못에 박히셨지. 이것은 육체적 고통으로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말한단다. 하지만 이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 있지"

"더한 고통이요?"


"그것은 정신적 심리적 고통을 말하는데, 십자가에 매달릴때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에게 모욕을 하고 강도 둘을 함께 못박는 다는 것으로 치욕을 나타내지. 사람은 육체적 고통보다 치욕, 즉 정신적 고통을 더욱 더 힘들어 한단다. 그것을 예수께서는 그대로 받아들이셨지."

"아. 심리적 고통이로군요. 저도 기분이 나쁘면 그날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짜증나고 몇배로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육체적 고통이든 심리적 고통이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이러한 모든 고통들을 예수는 왜 당했을까?"

"인간과 같이 공감하려고요?"


"그렇지 신은 우리 인간을 신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 하셨다고 하셨잖니. 예수는 인간의 형상이 아닌 그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신 것인지도 모르지"

"그렇군요 교수님"


"육체적 고통 보다 정신적 심리적 고통이 더욱더 힘들지. 우리가 몸이 힘들면 쉬면 되지만, 모욕 치욕 조롱을 듣는다면 그것은 매우 오래 가고 힘들단다."

"맞아요 어렸을 때 제 친구가 저를 놀렸을때 상처를 받아서 지금까지도 안 만나고 있거든요"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자네에게 욕을 한다고 하면 그렇게 상처를 받지 않겠지만, 가까운 사람, 믿고 도와줬던 사람에게 모욕을 받으면 그것은 몇배의 상처를 받는단다"

"도와주고 사랑해줬던 사람은 나를 믿겠지라고 했는데 돌을 던진다면 심리적 고통이 더 클거 같아요. 예수님의 심리적 고통은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되지 않아요"


"우리의 삶에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변 사람들이 내버려 두지 않는 경우도 있단다. 질투나 등등으로 우리를 괴롭게 하는데, 그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는 일등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지 그런데 우리에게 돌을 던진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했던건 기억도 못하지."

"개구리에게 장난으로 돌을 던지는 것처럼 말이죠?"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건 장난일 수는 있어도 개구리에게는 목숨을 거는 것이라는 걸 사람들은 모를때가 더 많지. 그래서 사람의 본성은 잔인하다고 생각이 들고는 한단다"

"그래서 교수님이 처음에 사람은 잔인하다고 말씀하신거군요"


"그런 인간의 모습을 알기에 신은 예수를 우리에게 보낸 것이지. 그렇게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셨지만 십자가의 의미는 부활을 하기 전 고난의 의미라고 볼 수 있지"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이 된다는 말씀인가요?"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의 삶이 부활을 만들었기에 십자가는 부활의 필요 충분 조건이 되겠지. 십자가 없이 부활하는 방법은 없지.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조롱도 당하고 신체적 육체적 심리적으로도 힘든 상황이 반드시 있단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저로써는 그 고통이 두렵기만 하군요"


"자네도 잘나가는 잘사는 누구처럼 산다는 그들의 성과만 축복만 가지고 이야기 하면 안돼네."

"아니 그렇다면 교수님도 그러세요?"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교수님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걸 보았다.

"화려해 보이는 교수님도 고통스런 부분이 많으셨겠네요?"


"사람은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네. 누구나 십자가를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예수께서 부활 하신 것은 과거 인간의 죄와 앞으로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진 것이지. 자신을 위해 노력하며 고통을 받는 것 보다 때로는 가치가 높은 고통이 필요하네"

"말씀에 고통이 느껴지네요"


"남들을 위해 사는 힘든 사람은 결국 축복 받는다네. 나 혼자만 힘든것을 고통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그걸로 가치를 주지는 못하네. 누구를 위해서 하는 맘고생 몸고생인지 그런것은 모르고 자신만 바라보지. 하나님이 원하는 삶이 그런것일까? 누군가를 위해 고통을 받는 것. 내가 지금 고통이 누구를 위해서 하는 고통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네. 자네는 공부를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나? 하고 싶은 공부가 누구에게 필요한가?"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 합니다."


"물론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은 맞지만 더 넓은 사고가 필요하네. 조금더 전인류적인 커다란 사고와 가치를 줄 수 있어야 성공을 할 수 있지. 스스로를 위한 고통은 절대 오래 못간다네. 노력과 과정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2000년이 지난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영향력을 주는것은 지나온 과정 중에 많은 이들의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지"

"그렇죠 앞으로도 영원히 회자될 예수님의 삶이죠"


"후대에 영향력을 주려면 하는 일이 좀 더 큰 가치가 있어야 하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요?"


"인생은 누구나 억울해. 삶은 안타까움 거기서 시작되지. 그 안에서 억울함의 가치를 높이고 목적을 두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네. 그렇게 고통을 견디면 부활 하고 삶을 반전 시킬 수 있지. 인생은 어둡고 답답한 동굴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끝이 있는 터널을 지나가는 과정이네 그과정이 십자가를 메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네"


'나의 인생은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일까? 아니면 터널을 지나가는 과정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도 예수님 처럼은 아니지만 내 삶을 돌아보고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부활절 달걀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님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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