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졌다.
어쩌면 레오나르도가 이 그림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못할 만큼 애지중지 했던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그는 마치 애인을 데리고 다니듯이 여행을 갈 때도 이 그림을 갖고 다녔으며(차마, 그녀에게서 손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530년대의 언젠가 이 그림을 프랑수아 1세에게 팔았는데,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10만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받았다.
이후 이 초상화는 프랑스 국왕의 소유로 남아 있다가, 18세기 초부터 루브르가 소장했다. 이 그림은 새로운 전시실에서 금세 인기를 끌었으며, 세월이 흐를 수록 명성은 더욱 커져갔다.
1911년 8월 21일 아침, 루브르는 매주 월요일 마다 휴관중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오전 7시 정각에서 8시 30분 사이에 벽에 걸린 모나리자를 떼어내 갖고 사라졌다.
당시 '피카소 서클'은 완벽한 용의자였다. 그들은 1909년에 나온 필리포 마리네티의 미래파 선언의 지지자이기도 했는데 수없이 많은 박물관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는 선언문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그 덕에 피카소는 헌병대에게 심문을 받았으며, 도난당한 물품을 구입한 혐의로 법원에 출두하게 된다. 하지만 혐의 없음으로 풀려나게 된다.
범인은 누구였을까? 의외의 범인은 루브르에 작업을 하던 빈첸초 페루자였다. 그는 전시실로 들어간 다음 흰색 작업복에 <모나리자>를 둘둘 만채 유유히 사라졌던 것이다. 이후 2년 동안이나 절도범의 누추한 거실에서 고생을 했으나, 페루자는 보내줘야 할 때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이후 페루자는 자신의 무죄를 열심히 주장하면서, 자기는 이타적인 동기에서 행동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우피치 관장이 보기에, 이 그림은 결코 도난당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납치 당한 적도 없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녀는 단지 도망쳤을 뿐이고, 집으로 돌아오려 시도했을 뿐이다.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속내를 알 수 없는 귀부인이기 때문이었다. 그 교묘한 르네상스 시대의 미소가 그런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불타고 / 찢기고 / 도둑맞은 中에서
-릭 게코스키 지음
처칠의 초상화 부터 바이런의 회고록 까지 사라진 걸작들의 수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