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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마디 없었다

“물건 왜 가져가는 거에요?”

버스 터미널에서 아버지는 시금치가 잔뜩 들어있는 비닐 봉지를 어깨에 짊어진 채 길을 나섰다. 시골에서 제사가 끝난 뒤 큰 아버지가 챙겨주신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중년 여자의 소리가 들렸다.

“왜 가져가시냐고요!!!”

어이 없어진 아버지는 커다란 비닐 봉지를 내려 놓은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는 막무가내 였다. 자신이 차에 실어두었던 시금치 비닐을 훔쳐가는 도둑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거 제껀데요..다시 한번 확인을 해 보세요”

아버지의 말에 여자는 미동도 없었다. 아주머니는 의심이 확신이라도 되듯. 거리에서 아버지를 몰아세웠다.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길을 걷던 이들이 놀랄 정도였다. 아버지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곧이어 그녀의 남편이 멀리서 뛰어왔다. 비슷한 시금치 봉지가 다른 주머니에 담겨 있었다. 남편이 아내가 모르는 사이 옮겨 담은 것이었다.

남편이 눈짓을 하자 머쓱해진 여자는 그냥 뒤돌아 갔다. 아버지를 도둑으로 몰았던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오해 하도록 만들어 놓고 사과 한마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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