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이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다음에 모실 분은 멋진 노래를 불러주실 분입니다"


사회자의 호명에도 남자 가수는 무대위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서 있었다. 누군가가 부축을 하고 나서야 그의 손에 이끌려 겨우 무대의 중앙으로 조심스레 걸어 올라갔다. 그는 시각 장애인 바리톤 이었다.


내 마술 공연은 뒷차례라 대기실에서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학교 대강당 옆 대기실은 좁은 편이지만 그래도 몇몇이 대기하기엔 아주 안성 맞춤이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공연자의 공연을 보는 순간 나는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고 말았다.






(1)

이번 공연은 장애 이해 예술 공연의 일종으로 장애인과 일반인이 함께 만들어 가는 무대 공연이었다.


학교에 찾아가서 전학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노래와 퀴즈 그리고 마술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신나는 가요와 멋진 노래와 율동을 보여주는 이는 장애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거나, 말을 할 수 없거나. 하지만 무대에서는 일반인들 보다 훨씬 멋진 퍼포먼스와 노래를 보여주었다.


그들을 보면서 장애인은 우리보다 조금 불편함을 가진평범한 사람들임을 느낄 것이다.




(2)

내 순서의 앞에는 남자 바리톤이 멋진 노래를 불러줄 차례였다.


깔끔한 검은 정장에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그는 스탭의 도움으로 무대 위에 섰다. 그는 시각 장애인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다. 곧 이어 잔잔한 전주가 깔리자 마이크 앞에 섰다. 그런데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큭큭' 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남자 가수를 보고 깔깔 대기 시작했다. 비웃음 소리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시각 장애를 가진 바리톤의 눈은 방향을 잃은 채, 여기저기 돌아가기 시작했고, 손은 갈 곳을 잃은 채 어설프게 팔을 벌린채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 앞에 있는 마이크에 입을 부딪힐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모습이 엉성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멋지고 세련된 사람이 아니라 어설퍼 보이는 동작으로 갈곳을 잃은 표정으로 노래를 시작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동물원의 원숭이를 신기하게 쳐다보듯 하는 모습이었다.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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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지킬엔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의 첫 소절이 시작이 되자 가수는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둠속에 홀로 서서 눈을 감고 전주에만 의지한 채 였다. 그의 노래를 옆에서 보고 있자니 '외로움과 고독'이 느껴졌다.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하는 그에게 지금 이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


오로지 노래에만 의지해서 무대에 서는 그는 밝은 조명을 홀로 받으면서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고 있을 거였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던진다

지금 내겐 확신만 있을뿐

남은 건 이제 승리뿐...'


그의 노래가 절정에 이르자,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온데간데 없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언제 그에게 비웃음을 던졌냐는 듯. 세상 누구보다 큰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처음에 비웃던 아이들은 온데 간데 없고 아름다운 응원을 보내고 감동하는 모습에 나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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